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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평점 :

‘일제강점기’와 ‘어린이’라는 두 낱말을 나란히 놓았을 때 자동으로 떠오르는 인물은 방정환이다. 17세기부터 ‘어리니’라는 말이 있었으나 방정환이 ‘어린이’로 널리 불리게 했으며 동명의 잡지도 창간했고 ‘어린이 날’도 제정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어린이들>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자연스레 방정환이 소환되었고, 어린이들의 글에 그의 활약이 있었을지 궁금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때 어린이들이 쓴 글 모음이라고 하니 당시 그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거라 기대되었고 실력도 보고 싶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저자의 자료 조사에 혀를 내둘렀고, 이토록 소중한 저작을 내주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저자가 당시 어린이의 글로만 구성했다면 이 책은 평범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해제 같은 설명은 ‘일제 강점기 어린이 글로 읽는 미시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저자 이영은은 일본 니혼대학에서 예술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일제 강점기 여배우 역사를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수업료”라는 아동 영화의 원작 작문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는 한국에 소개된 적 없는 일제 강점기 어린이들의 작문을 소개하며 그 시대를 더욱 선명하게 되살리려 노력했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는 과정을 사건별로 배웠던 역사 과목을 떠올리면 그저 정보 입력과 시험을 위한 활동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저자가 소개하는 어린이 글과 설명을 읽으면 시대의 모습이 훅 다가오면서 일제가 그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확인하게 된다.
목차를 크게 ‘비전쟁’과 ‘전쟁’으로 나누었고, ‘비전쟁’안에 글의 소재를 자연, 가족, 동물, 놀이, 일상, 학교 이렇게 구분했다. 조선 어린이뿐 아니라 일본 어린이의 글을 같이 실었기 때문에 비교하며 읽을 수 있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저자가 짚어주는 부분도 있어서 유념하며 읽으면 좋다. 예컨대 동물을 소재로 한 글을 보면 일본 어린이는 애완동물로, 조선 어린이는 길러서 상품화할 대상으로 썼다는 차이다.


이 책에 실린 조선 어린이의 글을 통해 일본인과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신문이나 대회에 입선한 글을 쓴 조선 어린이들 역시 어느 정도 능력이 되는 집의 아이들이었다. 물론 조손 가정이거나 가난한 집 아이가 쓴 글도 있지만 학교 문턱에 닿지도 못한 아이들이 많았다. 글을 배우지 못하고 제도 교육에 있지 않다면 작문을 할 수가 없지 않나. 또 일본어를 국어로 지정한 후 모국어로 글을 쓴 일본 어린이와 외국어를 국어로 배운 조선 어린이의 작문 실력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맨 앞에 ‘조선어 작문’이라고 표기한 두 글 외에는 모두 일본어로 쓴 글이다.
목차의 소제목(소재별)에 해당하는 글들 앞에 저자의 설명을 배치하여 당시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을 먼저 쌓도록 한 것도 장점이다. 저자의 연구 성과와 출판사의 편집 방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제국의 어린이들>은 전공이나 나이에 구분 없이 추천하고 싶다. 살아있는 문장을 통해 일제 강점기 어린이들의 꾸밈없는 모습과 역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화 되었고 극찬을 받았다는 글 ‘수업료’도 좋지만 나는 부산의 5학년 박수진이 쓴 ‘추운 날에’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들 딸 모두 집안 일손을 도운 내용의 글이 많았지만, 이 글에는 한겨울에 자매가 맨손으로 빨래를 하고 쌀을 씻은 후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모습이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엄마가 시키니 툴툴대면서도 곧잘 하는 태도와 언니를 생각하는 동생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글이었다. 11살 어린 막냇동생을 돌봐야해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 하러 못가 심통부리던 내 어릴 적이 오버랩 되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