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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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에는 단편 소설 여덟 편이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이 소설집의 느낌은 밝지 않으며 뿌옇고 모호하다. 등장인물들은 불안해 보이고 안쓰럽고 애처로웠다. 밝고 행복한 등장인물이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였다면 뒷맛이 씁쓸할 수 있다. 우리 삶이 늘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주인공이 즐겁고 행복한 소설을 읽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비슷한 등장인물이 나오는 소설을 읽어야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사실 알고 있지 않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성공은커녕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고, 가족만큼 내 맘대로 안 되는 사람도 없으며, 그들이 가장 내 발목을 잡는 존재라는 것을. 이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삶을 보며 답답하고 한숨 나지만 나의 어떤 부분과 닮은꼴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의무감이나 죄책감에 짓눌린 등장인물의 손등을 토닥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마 자신을 다독여주고 싶은 마음의 발로일 것이다.


여덟 편의 소설 중에서 나는 <미래의 끝>이 가장 인상 깊었다. 동방생명 아줌마는 요즘 말로 하자면 보험 설계사다. 열 살짜리 여자아이가 한 나절동안 아줌마와 같이 다니며 그녀가 하는 일을 보게 된다. 부모는 일상에 치여 바빠 아이는 혼자 있는 때가 많았다. 동방생명 아줌마는 아이에게 다정했고 고객들에게는 늘 예의를 지켰다. 제 엄마의 삶만 팍팍한 줄 알았던 아이는 아줌마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 역시 만만치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모에게 큰 일이 생겨 결국 엄마는 보험을 해약했다. 아줌마와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던 아줌마의 말을 떠올리며 어떤 더한 일이 생겨야 엄마가 아줌마를 찾을지 궁금했고 더 이상 아무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랐다.


아이는 보호자인 제 부모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아야 좋다. 그러면 아줌마를 볼 일이 없으니 아쉽다. 아줌마에게 연락할 일이 생겨 다시 만나면 좋지만 그것은 부모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사소한 행동에 죄의식을 느끼게 만든 엄마의 가시 같은 말은 아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검열하게 했다. 아이의 죄책감은 아줌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차단한 것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시련이 닥치면 아무도 찾을 수 없다. 도움이 필요치 않아서가 아니라 그럴 만한 시간이 없어서 말이다.’라는 문장은 뼈아팠다. 닥친 위기를 맨몸으로 쳐내야 하는 사람들은 누굴 찾을 만한 시간이 없다는 말은 정말이지 맞다. 시간이 없으니 주위를 살필 여력이 없다. 시야가 좁아진다. 가난한 이들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나 또한 어린 시절 내 부모를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을 읽으며 마음이 편지만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힘겨워 소파에 드러눕거나 우두망찰 서있고, 조용히 입을 닫더라도 이후의 삶은 이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살아가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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