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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간주나무
김해솔 지음 / 북다 / 2025년 6월
평점 :

**이 리뷰는 네이버 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나를 죽이려고 했던 내 엄마가 이제 내 아들을 죽이려 한다.”
책 <노간주 나무>를 소개하는 이 문장이 시선을 확 끌었다. 친정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말은 살인 미수에 그쳤다는 뜻인데 그런 엄마와 계속 같이 살 수 있나? 아들까지 죽이려고 하다니, 왜? 딸이 오해한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해보았는데 책을 읽을수록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싱글맘으로 아등바등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주인공 영주의 일상이 너무 위태위태했다. 산부인과에서 3교대로 근무하는 간호사 영주는 계속 수면부족 상태다. 야간 근무 후에는 잠을 자야하는데 집에 오면 아들 선호를 보살펴야 한다. 그런데 선호가 이상하다. 유치원에서 쫓겨나고 돌봐주던 아주머니도 아이가 이상하다며 관뒀다. 보건교사로 이직하기 위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결국 영주는 20년간 연을 끊었던 친정 엄마를 찾기에 이른다.
옛날에 영주네 가족이 살던 노간주 나무가 있던 집으로 다시 이사 갔다. 친정엄마와 영주, 선호가 함께 살게 되면서 그녀는 오랜만에 일상의 편안함을 느꼈다. 친정 엄마 덕분에 아무 걱정 없이 집안일과 육아를 맡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불안했던 영주가 드디어 안정을 찾은 것 같아 안심이 되는 한편 이렇게 편하기만 할 리 없다는 의심이 슬금슬금 일었다. 영주는 육아와 가사를 엄마에게 맡겼으면서도 연신 엄마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때문에 독자에게도 그 감정이 전이되었다. 선호의 이상 행동으로 인해 엄마의 태도가 돌변하자 친절한 친정엄마 모드에서 예전에 자신을 계단에서 밀어 죽이려했던 엄마로 변해버렸고 영주의 불안감은 극으로 치닫는다. 아들을 지켜야 하니까.
사실 나는 아들 선호가 가장 꺼림칙했다. 쟤가 무슨 귀신에 씐 건가? 영주의 친아들이 아닌 것 같은데, 별별 가정을 하면서 선호를 뾰족한 눈으로 봤다. 좀 미안한 것이 아직 일곱 살밖에 안 된 어린이잖아 싶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또 선호의 행동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 선호와 친정 엄마의 이상한 행동들과 옛날에 노간주 나무와 연결되는 에피소드들은 그림 형제의 동명 잔혹 동화와 비슷해 섬칫했다. 끝날 때까지 이렇게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소설은 오랜만에 만났다. 투 트랙으로 진행되던 서형사와 영주가 접점을 이루고, 영주와 친정엄마와의 비밀이 드러났지만 나는 카타르시스에 도달하지 못했다. 지독한 현실이 소설 속에서도 펼쳐졌기 때문이다.
자녀가 있는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려면 누군가의 노동력이 필요하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노동력이 결국 친정 엄마이어야 하다니, 여성은 돌봄 노동을 천형처럼 타고 났단 말인가. 여성의 돌봄 노동은 여전히 폄하되고 폄훼되고 있다. 친정엄마니까 당연히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여자가 남자보다 집안일을 더 잘한다, 집에서 애 보는 게 뭐가 힘들다고 등등...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은 부모로서 분담해야할 양육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로서의 의무와 책임도 다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가해자였다. ‘소설이니까 극적으로 표현했겠지.’ 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현실에서 이보다 더한 사건들을 숱하게 목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회 활동을 많이 하게 되면서 돌봄 노동은 여성에게 더욱 가중되고 있다.
또 남성에 비해 여성이 끔찍한 경험을 월등히 많이 겪는다. 엄마는 영주가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었다. 내내 수면 부족과 양육 스트레스로 인해 선잠을 자고 악몽을 꾸는 영주를 보며 안타까웠다. 엄마를 미워하고 부정했지만 영주는 엄마의 사랑이 고팠고 자신은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선호를 지키려고 발버둥 쳤던 것이다. 꿈에서도 현실에서도.
작가는 이 소설이 ‘경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독자도 영주의 꿈과 현실의 경계 사이에서 어떤 게 진실인지 헷갈렸고, 모성애는 어디까지 작동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말미에 선호의 입장을 서술한 부분을 읽으며 나는, 제발 선호만이라도 제대로 된 남자로 자라났으면 하고 바라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