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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커 ㅣ 래빗홀 YA
이희영 지음 / 래빗홀 / 2024년 5월
평점 :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들이 오늘의 나’ 라는 말이 있다. 현재의 나를 만든 건 과거에 내가 했던 선택의 결과이다. 그런데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와 함께 만약 다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현재의 우리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타임슬립 소설 속 주인공에게 온 기회를 보며 독자는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본다. 과거로 돌아가서 주인공이 하는 선택에 동의하며 감정이입할 수도 있고, 다른 선택이 바꿀 미래를 적극적으로 그려볼 수도 있다. 그러다 내가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과거의 시점은 언제일지 톺아보다 어느새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에 흐뭇해할 수도 있다. 바로 타임슬립물의 재미다.
<페인트>의 이희영 작가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특한 소재로 독자들을 상상의 세계로 이끄는데, 이번 신작 <셰이커>는 처음으로 타임슬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서른 두 살의 ‘나우’는 오랜 친구였던 ‘하제’에게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다. 그런데 하제는 고3때 죽은 절친 ‘이내’의 여친이었다. 만약 이내가 그 때 죽지 않았다면?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죽은 놈만 불쌍하지, 네가 어떻게 하제와 결혼할 수 있냐는 타박을 들은 나우 역시 ‘이내가 살아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하며 가슴이 옥죄어오는 것을 느꼈다.
모임이 끝난 후 하제가 돌보던 고양이와 아주 닮은 검은 고양이에게 이끌려 도착한 바에서 칵테일을 마신 후 이내는 열아홉 그 때로 돌아가게 된다. 이제 나우의 목표는 이내의 사고를 막는 것이다. 가장 친했던 친구 이내를 살리고 싶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고통 속에 지냈던 하제에게 아예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고 싶다. 독자가 ‘만약 나라면 이내를 살리고 싶을까?’라는 잠시의 망설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작가는 그 시절 나우와 이내, 하제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결국은 몇 번의 칵테일을 마시고야마는 나우의 혼란스런 감정 속에 홀딱 빠져들게 만든다.
돌아간 과거에서 주인공은 보통 누군가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한다. 자신이 되돌려 놓으면 분명 모두가 행복할 거라 예상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자신이 바꾼 과거 때문에 발생할 변수는 예상치 못하고 또 다른 국면에 당황스러워한다. 이것이 바로 타임슬립물의 묘미다.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학창시절로 돌아간 주인공을 통해 청소년 독자들을 위로한다. 현재의 네 삶이 몹시 힘들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겠지만 괜찮다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도 결과가 내 맘대로 안 되니 맥빠지더라도 버텨보라고. 나우의 독백 속에서 만나는 문장들은 어른이 되어 십대의 자신에게 보내는 격려처럼 들린다.
"세상은 내 의견과는 상관없는 일들이 너무 많이,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그 억울한 시간을 묵묵히 견디는 게 삶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장을 누빈 장수의 몸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수많은 상흔이 생긴다. 이런 깨달음이 하나둘 늘어가면 세상은 비로소 그를 어른이라고 부를까."
나우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 독자 입장에서 나는 나우가 대견한 한편 안쓰러웠다. 나우는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어른처럼 보이지만 여리고 섬세한 내면을 지닌 사람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그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시간여행을 통해 깨달은 생각의 편린들을 쫓다보면 이만큼 나이 먹는 동안 나는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나 싶다.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사느라 앞뒤 돌아볼 겨를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조용히 나를 지켜볼 여유는 가지지 못했다. 서른둘 나우가 ‘좋지 않은 자유와 쾌락을 절제할 수 있는 게 진짜 어른’ 이란 사실을 깨달으며 자신에게 하던 말,
“진짜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나는? 진짜 어른인가? 누구의 간섭도 강요도 받지 않는 나이다. 자유로운가? 떳떳한가? 그리고 넉넉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어른이라면...
아, 소감 하나 덧붙이자면, 마지막 나우의 선택과 하제의 대사는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가가 그려낸 그들의 성격상 그런 결론이 맞겠지만 그래도... 마음의 빚을 털어낸 그들의 미래를 독자에게 맞기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