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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노토피아 - 엘리베이터 속의 아이
조영주 지음 / 요다 / 2023년 12월
평점 :

<크로노토피아:엘리버에터 속의 아이>는 <붉은 소파>로 제12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조영주 작가의 신작으로 요다 출판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제목 ‘크로노토피아’라는 단어가 낯선데 ‘자유로운 시공간’을 뜻으로 시간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용도도 바뀔 수 있다. 이 소설은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바탕으로 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사실은 거대한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실제가 아니라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는 생을 한 번밖에 살지 못한다. 그런데 시뮬레이션 우주 안에 있다면 여러 번 살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큰 실수를 했다면 다시 되돌려 잘 해보고 싶고, 여자가 아닌 남자로도 살아보고 싶어진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돌릴 수 없다 해도 모험이라 여기며 살 수 있을까? 정말이지 딱 좋은 생을 살게 되었는데 지속할 수 없다면? 그 역시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만다.
책 소개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았지만 책을 펼친 이후에는 주인공 소원에게 빨려들어갔다. 아홉 살 소원이 사는 곳은 진정아파트, 엄마는 소원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 소원이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손님이 집에 오는 날이면 소원은 집밖으로 나간다. 그날도 새로 이사 온 현우를 만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세계로 가는 실험을 하는 중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과거로 가는 법을 듣고 소원은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정말 다른 세계로 간다. 진정아파트는 그대로지만 엄마눈 없는 세계. 방치와 학대만 일삼던 엄마는 없는 게 더 나을지도. 그러다 아파트가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나는데 소원은 그저 엄마가 안전하길, 행복하기만을 바랐다. 정신을 차렸을 땐 엄마 얼굴을 한 이신애라는 이름의 여자를 만나게 된다.
소원은 여러 번의 삶을 살게 되지만 이신애가 엄마이고 정지훈이 아빠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 그들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한다. 아파트의 붕괴를 막기 위해 건축가가 되었다가, 아예 아파트 전체를 사들이기도 하면서 애를 쓴다. 그렇게 동일한 시기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면서도 소원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행복한 가정이었다. 엄마 이신애와 아빠 정지훈과 함께 살고 싶었다. 그러나 소원은 자신이 왜 이런 도돌이표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게 대체 무슨 의미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조영주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소원은 삶과 싸우고, 타협하고, 포기하고, 좌절하면서도 결국 어떻게든 그저 살아내는 게 삶이란 너무나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요. 저는 그가 삶 속에서 느끼는 성찰이 소설을 쓰는 과정과 닮지 않았는가, 그래서 문학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결국 구원은 셀프다,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고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워 실천해야 한다는 자기계발서식 논리에 너무 경도되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계획대로 되던가. 그랬다면 모두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졌겠지. 물론 계획대로 실천하지 않기도 했거나와 그 와중에 나타나는 변수는 계획안에 없었고 그로 인해 틀어져 애초에 목표했던 고지에 도달하지 못하는 수가 허다하다.
이 책에서 소원이 깨달은 ‘삶은 그냥 사는 거’라는 말은 덤덤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남과 비교를 많이 하면서 살았다. 애쓴 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아 안달복달했고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며 자학했다. 그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제대로 잘 할 것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이번 생은 한 번뿐이고 지금의 선택과 행동을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제 이만큼 살아왔으니 그냥 살아보자. 애면글면하지 말고 무덤덤하게. 작가처럼 소설을 쓰며 셀프구원할 깜냥은 안 되지만 나를 구원할 방안을 찾아봐야겠다. 앗, 또 비교했다. 턱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