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의 일 년
이창래 지음, 강동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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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래 작가는 1995년에 <영원한 이방인>으로 미국의 주요 문학상 6개를 수상했다. 이어 낸 소설들도 여러 상들을 받으며 미국 문단에서 끊임없이 진화하는 작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6년부터 현재까지 스탠퍼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1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타국에서의 일년>은 그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이번에 RHK 출판사에서 가제본 서평단에 뽑혀 읽게 되었다. 이번에는 그간 소설에서 선보인 주인공들과는 달리 스무살 청년 틸러 바드먼이다. 그는 남부 던바라는 도시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았지만 그의 심연에는 채워지지 않는 큰 구멍이 있다.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엄마의 가출 이유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나 엄마의 부재는 그에게 큰 결핍을 심어주었다. 아버지 클라크는 틸러를 부족함 없이 키웠으나 아들과 그리 돈독한 관계는 아니다. 시시껄렁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을 정도이긴 하나 틸러가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문자로 알릴 정도다.


틸러는 캐디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우연히 만난 퐁 로우라는 중국인을 따라 아시아 여러 곳을 다니게 되는데 일반적인 시각으로 보면 지극히 무모한 결정이다. 그러나 틸러에게 한국인의 피가 12.5% 섞여있다는 설정이 퐁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것을 어색하지 않도록 해준다. 또한 틸러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퐁에게 매력을 느끼고 중국인의 가치관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퐁은 자신의 사업에 틸러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아시아행을 제안했고 틸러는 퐁과 함께 일 년여의 시간동안 그와 함께 하게 된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틸러는 일 년 간 타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공항에서 밸이라는 연상의 여인과 그의 아들 빅터 주니어를 만나 그들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밸과 만나는 장면으로 소설이 시작되나 밸과 지내는 시간과 아시아에서 보낸 시간들이 틸러의 일인칭 시점으로 교차 서술된다. 스무살 청년이 일 년 간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생활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아들이 있는 연상의 여성과 동거를 하는 것도 그 나이대의 사람이 하기 힘든 경험이다. 작가는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경험을 스무살 청년이 하게 함으로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성장소설로 읽었다면 틸러가 한 경험들이 분명 그에게 변화와 성장을 가져왔으리라고 해석할 것이다. 소설의 말미에 나오는 아래 문장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나는 핀으로 꽂힌 귀뚜라미였다. 당연히 비즈는 그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최소한 의식적으로는 말이다. 나는 반박했다. “늘 노력은 했지.” 내 노력으로 뭐가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여기서든 해외에서든 모든 일이 잦아든 지금은 내가 좀 괜찮아졌는지 모르겠다. 나는 과거의 자동 구동 모드로 전환되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그 디폴트 상태의 소년, 그 디폴트 상태의 영혼이 되지 않을 것이다. 피도, 사랑도 묽어진 녀석. 자기의 머릿속에서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녀석.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저 선언, 스스로 이제는 좀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자평은 성장이라는 단어에 부합한다. 그리하여 소설의 가장 끝에 온 문장, ‘그런데도 계속 나아간다. 눈을 뜨고, 입을 크게 벌리고, 준비된 채로.’는 어른으로서의 삶의 자세가 명확히 드러난다.


틸러가 아버지 클라크와는 결이 다른 어른 남자 롤모델을 퐁에게서 찾으려했다면 밸과의 관계는 엄마의 부재를 메우고 싶어했다는 것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녀와 관계하는 모습들은 이중적이다. 밸 모자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밸의 안전한 우산 아래에 있고 싶은 두 마음이 공존한다. 그러나 틸러가 정말 밸을 보호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틸러는 밸에게 빌붙어 사는 형국인데 밸이 엄마처럼 자신을 버릴까봐 전전긍긍하는 면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밸 모자와의 동거가 틸러를 변화시켰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성인 남성으로 성장했다고까지 할 수는 없으나 역시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이 문장은 그의 심적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는 역으로 작용하는 연금술이라도 된 것처럼 사라진다. 그 모든 생명의 황금이 흩어져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더라도 나는 이 세상에 맞게 나 자신을 만들고 싶다. 이 세상이야말로 나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세상이다.’


세상을 겉도는 치기어린 청년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잘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름처럼 그는 이제 인생의 키(tiller)를 스스로 핸들링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단순화하면 특이한 경험을 한 어떤 청년의 이야기정도가 될 것이다. 이 소개에 흥미가 일었다가 분량을 확인하고 뜨악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700쪽에 육박하는 길이에 시도할 엄두가 안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긴 글 읽기에 부담감이 없는 사람, 이름만 들어본 이창래 작가의 스타일을 직접 만나고 싶은 사람, 소설 속에서 좋은 문장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한다.


나는 작가의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을 읽었고, 이 책은 두 번째로 만났다. 주인공부터 분위기까지 느낌이 아주 달랐다. 이번 소설을 읽으며 나는, 작가가 틸러의 경험 속에 켜켜이 숨겨둔 문장들을 발견해 길어 올리는 재미를 만끽했다. 그 문장은 틸러가 처한 상황에만 해당하는 한정적인 표현처럼 보이나 그것을 들어내 단독으로 읽어보면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것에 놀랐다. 특수성을 내포한 보편적 문장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그것을 찾아내는 재미를 느껴 보고 싶은 독자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


@ 내가 고른 문장들


나는 우리가 각자의 연옥을 짓는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뿌리를 내렸다는 기분이 들면 무엇도 나의 뿌리를 뽑을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내가 아무리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이 나를 사랑하더라도, 상황의 힘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것.


모든 커플은 아무리 가깝든, 아무리 오래 함께했든, 진짜 중요한 개념은 말하지 않은 채로, 해결되지 않은 무언가를 놔둔 채로 살아간다.


쪼개는 행위 자체가 벌어진 틈을 다시 여무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을 절대 혼자 두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말해 주는 걸까?


어느 장소를 떠올리면 반드시 그곳의 향기를 함께 떠올린다.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삶으로부터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삶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버틸 수 있어. 우리는 견뎌내고 계속해서 움직이지.


이 세상은 위대한 학교다. 이 세상은 너의 말 없는 스승이다.


우리는 그저 빗속의 눈물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이 치료제라 생각하는 질병이야.


우리 인생에 대한 사랑이 너무 소중해서 깨어 있는 매 순간 애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 삶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말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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