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뇌과학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어왔다. 그렇다고 읽은 책의 내용들을 다 기억한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에 몰두하여 재미를 발견하고 어떤 성취를 이루어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일반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뇌과학 책에 흥미를 놓지 않는 이유는 인간의 성장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자녀를 양육했고, 교육관련 직종에 있다 보니 학습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해 알고 싶었고, 나도 나이가 드니 뇌의 노화와 치매에 대해서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는 스탠퍼드 대학의 교수이자 뇌과학자인 데이비드 이글먼의 신작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생후배선’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뇌의 무한가능성을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생후배선이란, 우리의 뇌는 미완성인 상태로 태어나 상황에 알맞게 스스로 모습을 바꾸고 서로 연결되고 발전하며 성장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가장 놀라운 두 가지 사례는 뇌의 절반을 절제한 아이와 뇌의 한쪽이 없이 태어난 아이다. 여섯 살에 뇌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한 매슈는 오른손을 잘 쓰지 못하고 다리를 살짝 절지만 평범한 성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앨리스는 태어날 때부터 뇌의 좌반구밖에 없었는데, 왼손을 섬세하게 쓰지 못하는 것 외에 시력도 정상이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 뇌가 절반만 있더라도 스스로 부족한 기능을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외에도 이 책에서 다루는 뇌의 놀라운 능력은 많다. 독자의 관심사에 따라 집중해서 읽을 부분은 다를 것이다. 분량은 많지만 대부분 사례 위주이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을 만나고 있어서 그런지 6장을 흥미롭게 읽었다. 세 자매를 체스 챔피언으로 키운 부모의 교육철학은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였다. 이 사례는 내가 늘 천착해온 화두 ‘인간의 재능은 태어나는가, 길러지는가’에 다시금 의문을 제기하게 했다. 같은 교육을 받아도 왜 어떤 아이는 성적이 좋고 어떤 아이는 그렇지 않은가. 아이들을 만날수록 점점 재능은 선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반대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작가는 고강도의 훈련이 낳은 결과의 사례로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과 테니스 선수 윌리엄스 자매를 들었다. 이 부분에선 반사적으로 강요에 의한 교육이 모두 좋은 결과를 낳는 건 아니라는 반론을 하고 싶었다. 아무리 좋은 교육을 해도 스스로의 의지가 없다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내 반론을 꺾었다. 스스로 하겠다는 욕망과 재미를 얻는 쾌감, 그리고 보상이 이어졌을 때 가능하다고 했다. 이것도 그간 얼마나 많이 듣던 소리인가. 어떤 일이건 제가 좋아서 해야 능률이 오른다는 말! 맞다. 작동방식은 같지만 작가는 뇌과학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뇌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뇌는 우리가 시간을 쏟는 일이 보상이나 목표와 관련되어 있기만 하다면 그 일에 맞춰 스스로를 조정한다는 사실!
부모나 교육자들이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의 뇌에서 신경조절물질이 방출되도록 교육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강조한다. 우리가 무엇에 시간을 쏟느냐에 따라 뇌가 달라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