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황주리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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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만난 적 없으면서 편지만 주고받았는데 사랑에 빠진다? 웬 펜팔시절 이야기인가 할 것이다. 보고 싶으면 바로 만나면 될 터이다. 만약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1분, 아니 수초 안에 문자로 소통 가능한 세상이다. 얼굴이 보고 싶으면 영상통화를 하면 된다. 이런 시대에 편지로 사랑하는 서간소설이라니! 소설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은 오히려 그래서 관심이 갔다.​​

이야기는 오래전 뉴욕의 한 화랑에서 스쳐 지났던 두 사람이 SNS에서 다시 만나 대화를 이어가며 전개된다. 화가와 의사라는 이질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서로를 신뢰하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촉매가 되었던 건 영화 〈바그다드 카페〉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게 되지만, 단 한 번의 만남도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위 출판사 책 소개를 보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급하게 만나고, 즉각적 소통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듯 치부하는 시대에 이런 소설을 쓴 이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작가는 화가이면서 소설을 쓰는 황주리씨이고 소설 속에 실린 그림 몇몇은 소설 장면이 바로 연상되었다. 이런 소재의 소설이 요즘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조금은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꾸며낸 그 가상의 세계가 마음에 들었고, 두 주인공의 편지를 인상 깊게 읽었다.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외과 의사가 뉴욕 소호의 어느 화랑에서 인사만 나누었던 한국인 여성 화가의 그림을 사게 된다. 그 뒤로 몇 번 화랑을 찾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날 순 없었고, 그 즈음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다가 그녀가 생각났다. 영화 속 여성 주인공과는 어떤 접점도 없는데 왜 어눌한 영어로 인사 몇 마디 나눈 한국 여성을 떠올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페이스북에서 본 박경아가 그때 그녀임을 확인하고 긴 편지를 보낸다. 그 남자 A는 당시의 상황과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연결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현재는 테러가 일상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편지에 박경아도 답장을 보냈고 이제 그들의 편지왕래가 시작된다.

나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본 적도 없으면서 각종 미디어에서 소개하거나 인용한 것만을 보고 듣고선 마치 본 것마냥 느끼고 있었다. 주제음악도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 주인공 남녀가 영화 내용을 언급할 때마다 고개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나 한편 그들의 심정이 다 공감되지 않는 미진함은 두 주인공과의 거리감을 만들었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한층 몰입감을 느낄 것이다. 책을 다 읽은 후 꼭 영화를 보고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건만 주말 이틀간 지방에 다녀오느라 영화를 못 봤고 결국은 그냥 리뷰를 쓰게 되었다.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한번 나눠본 적 없는 남녀가 어떤 말을 주고 받으면 감정의 교류가 일어날까. ‘그들은 이러이러하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었답니다’ 라고는 쓰지 못하겠다. 내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여기까지의 소개로도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대면한 적 없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설정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소설 속 남녀의 감정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할 독자들도 있겠으나 나는 납득이 되었다. 예전에 지인에게서 목소리(전화 통화)만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을 들을 당시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여성은 자신이 그에게 반응한 것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그들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놀라운 건 그들의 첫 통화는 일 때문에 연결된 것이었고 전혀 낯모르는 사이였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예전에 들었던 그 이야기가 오버랩 되었고, 그들과 소설 속 편지를 주고 받는 남녀 모두 이해가 되었다. 소설 속 남녀가 쓰는 편지 내용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 이야기와 자신의 생활, 전배우자, 그리고 테러(혹은 전쟁 같은 일상)에 대한 것들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이야기와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테러, 책이나 작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자연스레 연결되니 말이다. 그리고 같은 사안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나누며 책의 문구나 유명인의 말을 빌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것은 고도의 은유다. 남자가 자신의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남자가 만약 소호거리에서 다시 만났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의 뒤에 소세키의 소설 <마음>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보고 죽고 싶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 돼줄 수 있습니까?’

이 편지에 대한 답으로 여자는 이렇게 시작한다. ​​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내내 이 구절이 마음속에 맴돌았어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보고 싶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할 만큼 과연 운이 나빴던 걸까?


과연 우리는 믿어보고 싶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걸까? 여기서 믿어보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며 읽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자의 편지 내용은 너무나 흔해서 당연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믿는다는 건 나에 대한 그 사람의 정절, 혹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같이 공유하는 그 많은 믿음에 관한 수많은 정의겠지요.

(……)

사랑이란 믿음이라기보다는 그냥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감기 걸리면 감기약을, 따뜻한 이부자리와 먹음직한 빵과 고기를. 이 유물론의 한 가운데서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음을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 인간의 사랑입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사랑하면 뭐든 주려고 한다. 마음보다는 물건을 줄 때 더 뿌듯함을 느끼고, 명품백이나 보석을 받으면 그만큼 사랑받는다고 여긴다. 헌데 이들의 사랑은 어떤가? 아무 것도 주고 받을 수 없는 관계인 이 남녀의 사랑은 어쩜 무의미 그 자체다. 여자가 쓴 저 문장이 품은 역설은 편지로만 사랑을 나누는 둘이 지독한 모순 속에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니 사랑하면 무엇이든 주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속물적이니 뭐니 해도 말이다.

소설 말미에는 페소아의 <불안의 책>이 여러 번 인용되고 있다. 남자는 이 책을 여자의 편지를 읽듯 아껴서 읽고 있다고 말한다. ​​

<불안의 책>을 펼치니 밑줄을 쳐 놓은 구절 중에 이런 구절이 눈에 띕니다. “나는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치는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깃발도 없이 참전한 군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내가 지금 딱 그런 기분이네요. 이길 수 없는 전쟁에 깃발도 없이 참전한 군대 속의 탈영병, 이제 나는 군복을 벗고 모하비사막으로 달려가 당신과 함께 ‘바그다드 카페’를 운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득 이 행복한 꿈이 진짜 현실로 바뀔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저녁입니다.


테러가 만연한 곳에서 탈영병이 된 것만 같은 심정이 든 어느 날, 남자는 그녀와 카페를 함께 하는 꿈으로 현실을 잊는다. 남자는 여자의 손을 꼭 잡아보는 상상을 하고, 그녀를 만나러 한국에 가볼까 마음을 먹기도 하면서 그녀와 함께 하는 일상을 꿈꾼다. 남자는 편지 말미마다 희망을 드러내지만 실천은 한 번도 하지 못한다. 서로의 목소리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둘의 편지는 종료된다. 100세까지 편지를 쓰며 살 수 있을까 예상해본 여자의 기대가 무색하게...



남자는 마지막 편지에서 <불안의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마무리한다.​​

“더 좋은 시절의 왕자여. 나는 한때 당신의 공주였고, 우리는 다른 종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그 기억은 지금도 나를 아프게 한다.”

그 길고 지루하고 끝이 없는 우리들 인생의 불안을 묘사한 ‘불안의 책’ 속에서 나는 많은 위안을 느꼈다는 걸 고백합니다.

(……)

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아니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한순간도 신을 믿지 않았던 나는 이제야 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합니다. 어쩌면 정말 신은 나를 위한 당신의 기도로 인해 존재할지도 모르니까요.



무신론자인 나도 기도를 할 때가 있다. 특정한 어떤 신에게 빌지는 않지만 누군가를 위하는 심정이 클 때는 기도라는 형식을 쓴다. 남자는 신을 믿지 않았으나 마지막 문장에서, ‘나를 위한 당신의 기도로 인해’ 신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당신의 기도’에 방점을 둔 문장이 신의 존재보다 더 중요한 의미인 셈이다.

편지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힘들다고 본다. 그러나 이 소설 <바그다드 카페에서 우리가 만난다면>에서는 가능했다. 문학, 영화, 음악 등으로 표현하는 사랑의 은유를 읽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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