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출판사 책 소개를 보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급하게 만나고, 즉각적 소통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듯 치부하는 시대에 이런 소설을 쓴 이가 누구일지 궁금했다. 작가는 화가이면서 소설을 쓰는 황주리씨이고 소설 속에 실린 그림 몇몇은 소설 장면이 바로 연상되었다. 이런 소재의 소설이 요즘 독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조금은 우려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작가가 꾸며낸 그 가상의 세계가 마음에 들었고, 두 주인공의 편지를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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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외과 의사가 뉴욕 소호의 어느 화랑에서 인사만 나누었던 한국인 여성 화가의 그림을 사게 된다. 그 뒤로 몇 번 화랑을 찾았지만 그녀를 다시 만날 순 없었고, 그 즈음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보다가 그녀가 생각났다. 영화 속 여성 주인공과는 어떤 접점도 없는데 왜 어눌한 영어로 인사 몇 마디 나눈 한국 여성을 떠올렸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페이스북에서 본 박경아가 그때 그녀임을 확인하고 긴 편지를 보낸다. 그 남자 A는 당시의 상황과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연결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현재는 테러가 일상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편지에 박경아도 답장을 보냈고 이제 그들의 편지왕래가 시작된다.
나는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본 적도 없으면서 각종 미디어에서 소개하거나 인용한 것만을 보고 듣고선 마치 본 것마냥 느끼고 있었다. 주제음악도 익히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 주인공 남녀가 영화 내용을 언급할 때마다 고개 끄덕이며 동조했다. 그러나 한편 그들의 심정이 다 공감되지 않는 미진함은 두 주인공과의 거리감을 만들었다.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한층 몰입감을 느낄 것이다. 책을 다 읽은 후 꼭 영화를 보고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건만 주말 이틀간 지방에 다녀오느라 영화를 못 봤고 결국은 그냥 리뷰를 쓰게 되었다.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한번 나눠본 적 없는 남녀가 어떤 말을 주고 받으면 감정의 교류가 일어날까. ‘그들은 이러이러하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었답니다’ 라고는 쓰지 못하겠다. 내가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니 여기까지의 소개로도 책 내용이 궁금하다면 읽어보길 추천한다. 대면한 적 없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설정이 억지스럽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읽어보길 권한다.
이 소설 속 남녀의 감정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할 독자들도 있겠으나 나는 납득이 되었다. 예전에 지인에게서 목소리(전화 통화)만으로 사랑에 빠진 사람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을 들을 당시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 남자의 목소리를 들은 여성은 자신이 그에게 반응한 것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그들은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놀라운 건 그들의 첫 통화는 일 때문에 연결된 것이었고 전혀 낯모르는 사이였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예전에 들었던 그 이야기가 오버랩 되었고, 그들과 소설 속 편지를 주고 받는 남녀 모두 이해가 되었다. 소설 속 남녀가 쓰는 편지 내용은 영화 <바그다드 카페> 이야기와 자신의 생활, 전배우자, 그리고 테러(혹은 전쟁 같은 일상)에 대한 것들이다. 이 소설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이야기와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테러, 책이나 작가의 이야기가 이렇게 자연스레 연결되니 말이다. 그리고 같은 사안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나누며 책의 문구나 유명인의 말을 빌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것은 고도의 은유다. 남자가 자신의 감정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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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만약 소호거리에서 다시 만났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의 뒤에 소세키의 소설 <마음>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믿어보고 죽고 싶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 돼줄 수 있습니까?’
이 편지에 대한 답으로 여자는 이렇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