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인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의점 인간>을 쓴 작가 ‘무라타 사야카’의 신작 장편소설 <지구별 인간>이 김영사에서 출간되었다. 18년째 편의점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한 이력을 <편의점 인간>에 녹여내 단숨에 아쿠타가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정상의 삶이 무엇인가 질문했다. 성인이 되면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직원이 되어 회사를 다녀야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인간은 하자있는 인간이다. <편의점 인간> 속 세계관이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른가?


내가 만나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대화를 할 때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상적으로 살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이 강요나 협박성일 경우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강도는 어떨까? 무라타 사야카의 책에서 만난 세계가 아이들이 압박받는 정신 세계와 유사한 경우를 목격했다. 공부, 꿈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3학년 남자 아이가 공부를 못하면 취직도 못하고 평생 편의점에서 알바만 하게 될 거라면서 걱정을 했는데 눈물을 글썽였다. 난 잠시 말문이 막혔다. 부모가 자식에게 얼마나 겁을 준걸까. 뭐라고 말 해줘야 할까 망설이다가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넌 공부 잘 할거고, 앞으로 네가 하고 싶은 일도 다 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아이는 “정말 그럴까요?” 라며 간절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봤고 나는 “물론!”이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며 겁박하고, 정작 그 아이의 마음은 들여다 보지 않는 부모들이 많다. <지구별 인간>의 주인공 나쓰키의 부모가 그러하다. 나쓰키는 특별한 사유 없이 언니와 차별대우를 받고, 학원선생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한다. 어린 나쓰키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마법소녀라고 믿는다. 지구별 인간이 아니라 포하피핀포보피아 별에서 온 마법소녀라는 비밀을 사촌 유우에게 말했고, 유우도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했다. 가족이나 친구, 그 누구에게서도 정서적 공감을 받지 못한 나쓰키는 사촌 유우와는 마음을 나눌 수 있게 된다. 둘은 어릴 때부터 나가노의 할아버지 댁에서 1년에 한 번씩 하는 가족행사에서 만났고 연인이 되기로 한다. 지구별에서 외계인인 그들의 행동 지침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이다. 


5학년 성교육울 받을 때 나쓰키는 확인했다. 지구별에서 자신의 역할을.


"내 자궁은 이 공장의 부품이며, 마찬가지로 부품은 누군가의 정소와 연결되어 아이를 제조할 것이다. 암컷과 수컷은 공장의 부품을 몸 안에 감춘 채 너 나 할 것 없이 둥지에서 꿈틀거린다."


작가는 <편의점 인간> 출간 후 일 년만에 <지구별 인간>을 완성했는데 이번 소설은 전작에 비해 강렬하다. <편의점 인간>에서 게이코는 편의점에 계속 있으려면 점원이 될 수밖에 없고 보통사람이라는 거죽을 쓰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면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구별 인간>에서 나쓰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이 공장의 정상적인 부품이 될 수 없으리라 예감했다. 자신은 자궁이 있으니 누군가의 정소와 연결되어 아이를 제조하는 것이 역할이라는 것을 5학년 성교육을 받을 때 알게 되었지만 그 역할을 해내기 불가능할 것임을. 성인이 되어 ‘탈출닷컴’이라는 싸이트를 통해 ‘성행위는 없음’이라는 조건 하에 계약 결혼을 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편의점 인간>과는 달리 판타지적 요소가 더해졌고, 더 황당한 설정에 당황스러웠는 한편 이런 식으로 해서 어떤 결말을 끌어낼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나쓰키와 남편 도모오미와 유우, 세 명은 동거를 시작하고 셋의 생활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소위 폴리아모리를 연상할 법한데 그건 아니다. 그들은 문명을 배제한 생활을 시작한다. 외부와 접촉하는 문명의 이기를 끊고 생식을 한다. 수입이 없으므로 먹을 것을 훔쳐온다. 자신들은 외계인이기 때문에 지구별이 요구하는 정상 인간의 행동을 하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행동들이 다른 인물들 눈에는 지극히 비정상적이다. 그건 독자가 보기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소설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너무 큰 스포일러가 되므로 리뷰에 쓸 수가 없다.


작가가 두 편의 소설을 통해 천착해 온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원하지 않았으나 이 세상에 던져지듯 태어났고, 지구의 질서가 요구하는 트랙에 올라 경주하게 되었다. 제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와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되기 위해서. 달리고 있는 이 레이스가 내가 원했던 것인지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이 오면 여기서 내려와야 할지 계속 달려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허나 고민한다고 해서 섣불리 내려오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트랙 위를 달리는 인간이 대부분이다. 계속 달리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며 자위한다. 이 안에서 행복을 찾으면 된다고. 너무 힘들면 좀 천천히 걷자며, 나름의 조절 방안을 찾는다.


<지구별 인간>에서 작가가 선택한 결말은 작가다운 발상인 것 같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면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다들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정상적이라 불리는 삶을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어슷비슷한 모습을 갖추려 노력하고 어느 정도 유사하게 되면 자족한다. 이 소설의 결말에서 작가는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럴 수도 있지 않냐는, 몸부림으로 읽힌다. 독자로서 뒷맛이 깔끔하진 않았지만 작가의 상상력엔 박수 쳐주고 싶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