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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 도스토옙스키부터 하루키까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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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는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소설과 인문학 서적 간 교차읽기다. 그동안 박균호 저자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어왔기에 이번 책도 읽어보고 싶었다. 저자는 어떤 소재를 선택하면 한 권의 책으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신토피컬 독서의 달인답게 그가 소개하는 다양한 다른 서적들은 믿고 찾아 읽게 만든다. 그래서 산 책들도 꽤 된다. 그의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자신의 에피소드를 집어넣기 때문이다. 자신이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도 유머러스하게 삽입하여 재미를 배가 시킨다. 그저 자신의 독서 이력을 시전하며 이 책은 이래서 좋더라 정도였다면 기존 독서관련 책들과 차별화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몇 년 간 그의 책을 읽다보니 얼마나 경처가인지부터 딸이 자라 대학생이 되었다는 개인사까지 꿰게 되었다.
이번 책은 제목을 보며 나이 오십이 되면, 이제 다르게 읽어야 하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목차를 주욱 훑어보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20개의 소제목 아래 40권이 넘는 책들의 제목을 보니 읽은 책이 몇 권 안 되었다. 그동안 책 좀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안 읽은 책이 많다고? 인문서적은 그렇다쳐도 소설마저? 머리말을 읽어보았다. 더 당황하고 말았다.
“오십이라는 나이는 급하게 삼켰던 청춘의 독서를 되새김질하기에 좋은 시절이다. 새로운 소설을 만나는 것도 즐겁지만, 빛바래고 홑이불처럼 사각거리는 옛 책을 꺼내놓고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설렘과 감동을 추억하는 일은 더욱 행복하다. 그리고 줄거리를 따라가기 급급해 미처 살피지 못한 소설에 얽힌 뒷이야기, 배경 이야기를 파헤치고 찾아보는 시간은 또 얼마나 즐거운가.”
‘멀리서 벗이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自 遠方來 不亦樂乎)’가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저자는 옛친구와 같은 소설을 다시 꺼내 읽어 보기를 권하고 있다. 반갑고 설레는 마음에 젊어서는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젠 향유할 시기가 되지 않았느냐고. 그런데 나는 옛 친구같은 책이 없다는 말... 서평단 활동을 시작한 후, 무수히 출간되는 새 책들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과 흐름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강박적으로 신간 서평단 신청을 해댔다. 그러다보니 고전이나 명저라 불리는 예전 책들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여기까지는 변명 아닌 변명! 당황은 잠시 접어두고 저자가 다시 읽었다는 책의 세계로 들어가 보았다.
다 읽고 보니 우려스러운 점이 하나 있다. 제목 때문에 젊은이들이 고르지 않을까봐 걱정된다. 요즘은 유명한 젊은 소설가들의 책이 유혹적인 표지를 하고 나오는데 제목에 오십이라는 말을 떡하니 내놓고 있으니 관심없어 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이 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추천하고 싶다. <죄와 벌>이나 <마담 보바리> <춘향전> 같은 소설은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늘 들어있지 않은가. 그런데 저자는 이런 책과 함께 당시의 시대상과 문화를 엮어서 읽어보면 좋을 책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확장적 독서를 하기에 적합하다.
이를테면 <죄와 벌> <까라마조프씨네 형제들>로는 시베리아 유형의 역사를, <마담 보바리>는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에 대해, <춘향전>으로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알 수 있다. 특히 춘향전은 우리가 학창시절 요약본으로만 읽었기 때문에 놓쳤던 것들을 짚어주고 있다. <한국의 과거제도>와 <조선 시대 과거제도 사전>을 인용하여, 이몽룡이 빠르게 과거에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에 다시 돌아오기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까닭을 알려준다.
나이가 나를 부른다며 이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놀라움도 잠시 지적 충만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책들을 거의 읽지 않은 나 같은 사람들은 고마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 권의 책으로 40여권이 넘는 책을 읽었다는 만족감을 얻게 될 것이므로. 물론 완독이 아니라 소개지만 저자가 엑기스와 주제만 쏙쏙 뽑아서 떠먹여 주므로 고맙다는 뜻이다. 그 많은 책들 중 몇 권만이라도 완독하게 된다면 이 책을 고른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나이와 상관없이 책 소개를 받고 싶거나 시간 부족으로 빠르게 내용파악해야 할 책이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필독각이다. 능력만 되면 여기서 소개한 책을 읽은 척 포장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소설 속 역사와 문화, 소설에서 다룬 소재나 작가에 대한 뒷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장점이다.
내가 흥미롭게 읽은 파트를 소개한다. 2부의 첫 번째 챕터 제목은 ‘예술의 불멸하는 재료, 질투’인데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와 피터 투이의 <질투>를 연결해 인간 본연의 감정인 질투를 다룬다. 나는 <레베카>하면 뮤지컬 제목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소개하는 책의 줄거리를 보니 대부분의 드라마나 소설에서 변주되는 내용이었고 역시 재미있었다.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불끈 솟았다. 그런데 <레베카>보다 더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였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 이런 벽돌책은 읽은 사람은 거의 없고 제목만 유명한 책이라며 굳이 시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안심했었다. 질투를 소재로 하는 이 챕터에서 제임스 조이스가 질투라는 감정의 권위자라며 <율리시스>를 언급했다. 간명하게 줄거리를 정리해주었는데 마치 1000쪽이 넘는 책을 다 읽은 듯 착각하게 만들었다. 어찌나 고맙고 뿌듯하던지!ㅎㅎ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으로는 금서의 역사를 연결했다. 그런데 이 챕터에서 <장미의 이름>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카프카에 대한 내용이었다. 카프카는 죽기 전 친구에게 자신의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친구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는 <소송> <아메리카> <성>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나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뒤에 나오는 내용은 몹시 놀라웠다. 어찌어찌해서 카프카의 두 딸에게 유작이 가게 되었고 그녀들은 독일의 현대문학박물관에 팔았다. 그런데 2009년 느닷없이 이스라엘에서 카프카의 유작원고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카프카가 죽고 25년이 지난 후에 생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억지스런 주장의 논리는 이러했다. 카프카는 유대인이니 카프카의 원고는 유대인의 소유여야 하며 유대인의 나라가 유대인을 대표해서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 읽고 설마 이런 황당한 주장이 먹힐 리가 있겠어 했는데, 2019년 스위스 법원은 이스라엘국립도서관의 손을 들어주었고 카프카의 친필원고는 결국 이스라엘에 넘어갔다.
저자는 카프카와 정반대로 행동했던 작가들도 알려주는데 역시 처음 듣는 내용이었다. 찰스 디킨스는 자신의 원고와 편지를 부지런히 불태웠고, 괴테도 자신의 기록물과 원고를 대부분 태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원고를 태웠던 이유는 달랐다. 디킨스는 평소 외도가 잦았기에 사후에 자신의 편지가 공개되어 명성이 훼손되거나 자식들이 출판사에 팔아치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불태웠다. 괴테는 친구가 유언을 지키리라고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았고 수시로 원고와 편지, 서류들을 불태웠다. 인생에 새로운 획을 그을 때 과거를 청산하는 습관도 있었는데, 가령 바이마르에서 공직자로 나설 때 작가로만 활동했던 시절에 썼던 상당수의 기록을 모두 폐기했다는 것이다. 지독한 자기검열이다.
이처럼 이 책은 소설 소개와 더불어 그 작품의 주제나 작가와 연결하여 인문학적 지식으로 확장을 돕는다. 소개하는 소설을 읽은 독자에게는 간과한 부분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안 읽은 사람들은 읽어보고 싶게 만들어 줄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즐기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