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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
김재진 지음 / 김영사 / 2020년 11월
평점 :

1998년에 발행된 김재진 시인의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를 가지고 있다. 평생 외로움을 친구라 여기며 살아왔다. 20여 년전에도 혼자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시를 그리 즐겨읽지 않음에도 시집을 샀던 걸 보니 말이다. 20년도 넘은 시집을 오랜만에 펼쳐보니 종이 색이 많이 바랬다. 무심코 펼친 면에 제목이 "너를 만나고 싶다"였고, 쳣 행에 연필로 줄을 그어 놓았다.
' 나를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표제시를 찾아봤다. 많이 펼쳐본 모양이다. 지문의 흔적이 아래쪽에 둥그러니 남아있다.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첫 4행에 줄을 그어 놓았다. 그리고 11행에는 네모로 둘러놓았다.
'완전한 반려(伴侶)란 없다.'

98년을 톺아보았다. 기억이 희미하다. 아픈 일이 있었거나 외로움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20년 동안 시인은 시와 에세이를 계속 썼고 첼로를 연주했고 그림을 그렸고 지금은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시인은 쉼없이 무언가를 했는데, 자신을 공감해주는 시라며 밑줄까지 그었던 독자는 20년간 무얼 했나? 생각해본다.
하... 이렇게 쓰고 보니 너무 나이든 것 같다.
무슨 확인 사살도 아니고...
시작을 이렇게 올드하게 했나 싶어 다 지워버릴까? 하다가, 한 때 김재진 시인의 시를 읽었고 감동 먹었던 독자라는 걸 강조하고픈 마음에 그대로 진행해보기로 했다. 물론 시인은 모를테고 알아도 무슨 소용이랴.
아, 신간에세이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의 서평단에 이 시집 사진 찍어 응모해서 당첨되었으니 서두에 화제로 쓸만 했다고 우겨본다.

신간의 정체성은 산문집이라고 했지만 목차에서 시의 한 소절 같은 문구들을 발견했다. 마음에 드는 제목부터 먼저 읽어보았다. 신기하게도 ‘혼자’가 돋을새김으로 내 망막에 꽂혔다. "반짝이는 것은 다 혼자다"를 펼쳤다.
p. 22
비어있는 공간에 음악이 잘 울리듯 혼자라는 공간 속에서 고독은 저만의 깊이를 갖는다. 아무도 없는 밤을 지새우며 장미는 저 혼자 향기를 품고, 길 위에서 방랑자는 외로움과 맞서는 것이다. 그러나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은 그 모든 것에 반응하지 않고 묵연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외로움 또한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 이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으니 그럴 때의 외로움이야말로 텅 비어 가득한 충만함이다.
텅 비어 가득한 충만함이란다. 외로워 울며 밤을 지샐 때는 몰랐다. 비어 있음이 가득참이 된다는 것을. 시나브로 외로움이 늘 옆에 있어주는 친구 같아졌다. 이 상태를 충만함이라 불러도 되겠다. 내 상태를 싯구처럼 표현해 주었으니까. 물론 시인은 모를테고.
"삶은 모두 불꽃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나! 길고양이에게 한 말이다. 고양이와 선문답이 아닌가. 검은 고양이였지만 털은 빠지고 때가 묻어 병든 게 역력한 고양이에게 시인 자신의 심정을 투사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던 때에 신산했던 자신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는 길고양이를 붙잡고...
고양이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
"지금 상처받아 고통 속에 있다 해도 삶은 저마다 불꽃을 가지고 있다. 아직 그 순간이 오지 않았거나 설령 그 순간이 지났다 해도 삶이 가지고 있는 불꽃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는다."
자신에게 하는 말!
"누군가에 의지해 구차한 목숨 이어가지 말고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단숨에 꺼져버리는 인생이라면 좋겠다. 복받쳐 오르는 날이야 어쩔 수 없다 해도 흐르는 것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둔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무심히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
책 제목으로 쓰인 문장은 독자마다 다르게 읽히겠지만, 시인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
늦기 전에!
늦더라도 꼭 하자!
제목과 같은 꼭지의 내용은 3년 전 소천하신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본 적 없었던 모자지간이었다. 사랑한다는 그 한 마디를 하지 못해 오래 후회했다는 시인은 독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p. 69
사람이 떠난 자리엔 후회만 남는 법, 아끼지 않아도 되는 말을 아꼈다는 자책으로 나는 어둠 속에 탄식 하나 토해놓는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언제라도 사랑한다는 말은 늦지가 않다.

이 책은 산문집이라고 하지만 한편 한편이 산문시 같았다. 나는, 아포리즘 같은 문장을 발견하면 성우인양 소리 내어 낭송해보고, 시인이 맘을 드러내면 내 맘과 꼭 같다며 손뼉을 치다가, 넷! 선배님! 하며 거수를 붙이기도 했다. 시인의 문장으로 모노드라마 한 편 찍었다. 관객은 없다. 혼자 연기하고 혼자 감탄하고 혼자 박수친다. 이것이 충만함?ㅎㅎ

이상하게도 영화 만추에서 현빈의 펄럭이던 코트자락이 떠올랐다. 이 책과 이 계절이 어울린다는 생각에 리뷰가 감정과잉이 되어버렸다. 살짝 부끄럽지만 이제 끝내야하는 이 마당에 다시 쓸 순 없다...
김재진 시인을 몰라도, 베스트셀러 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를 들어본 적 없는 독자라도, 이번 책 <사랑한다는 말은 언제라도 늦지 않다>를 읽으면 시인의 감성이 깃든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나는 길고양이를 대하는 시인에게 홀딱 넘어갔다. 물론 시인은 모를테지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