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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 - 인간의 본성을 뒤집고 비틀고 꿰뚫는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은 2012년에 출간된 유광수 교수의 <가족 기담>의 개정판이다. 이번 책으로 처음 만나게 된 유광수 교수는 한국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소설가이기도 하다. 책과 작가에 대해 꽤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신인도 아닌 유광수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니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거기다 작가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반가운 마음에 왜 이제야 알게 되었나 싶고 자연스레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게 된다. 출간된 소설을 살펴보니 역사소설, 스릴러소설이 있는데 작년에 나온 <싱글몰트 사나이>(전2권)가 구미에 당겼다. 여름휴가용 소설로 딱 일것 같아 올 여름에 읽을 책 목록에 넣어두었다.
출판사의 작가소개에 의하면,
"유광수 연세대학교 교수는 고소설과 현대소설, 설화와 동화, 구비문학을 자유자재로 누비며 현대인에게 지침이 될 만한 옛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선별한 다음, 여기에 새로운 상징과 가치를 부여하여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탁월히 안내해주는 고전 큐레이팅의 대가"
라 한다.
<문제적 고전 살롱 : 가족 기담>의 뒷날개에 ‘조금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섬뜩한 가족이야기가 펼쳐진다!’고 되어있다.

조금 불편하지 않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 숨어있는 권력자(양반,남성)들의 이데올로기를 낱낱이 까발리는 내용을 읽다보면 어떤 사람은 많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불편함을 너머 흥분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린 시절 재미있게 읽었던 전래동화 속에, 학창시절 배웠던 고전소설 속에, 저런 잔혹한 내용들이 숨어있었다는 것은 몰랐기 때문이다.
9장에 걸쳐 까발리고 있는 고전 문학들중에서 그동안 읽으면서 의심하거나 고민해본 적이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아, 하나 있었다. 홍길동이 서자 출신(홍길동은 ‘얼자’라고 한다, 서얼은 서자와 얼자를 합친 말로 서자보다 낮은 게 얼자이다.)이면서도 나중에 처첩을 두어 자신의 억울함을 대물림하게 만드는 건 뭔가 싶었다. 작가 허균이 양반이라 거기까진 염두에 두지 않은 걸까?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작가는 홍길동을 이렇게 평가한다.
“길동 이놈도 역시 남자였던 것이다.”
사회적 진출만 자유로우면 된다는 생각은 궁극적으로 여자와 그 지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길동은 자기 울분과 자기 앞길만 생각한 것이다. 정말 괘씸한 녀석이다. 자기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 아닌가, 아니, 멀리 가지 않아도 자기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하긴 녀석이 어머니 춘섬의 고뇌와 깊은 한을 알 리가 있겠는가? 자식치고 부모의 마음을 아는 놈은 하나도 없으니 뭐라 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불편을 넘어 흥분하게 될 내용은 대부분 가부장적요소들이다. 유교적 이념이라는 탈을 쓴 가부장(양반 남성)들의 행태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들의 파렴치한 작태가 문학속에 스며들어 의식하지 못한 채 내재화 되었다는 것이다. 기득권 공고화를 위한 것까지는 그렇다치자. 유교라는 국가적 이념이니까. 그러나 교묘하게 숨겨진 양반남성들의 성욕구는 인식조차 못한채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로만 읽혔다는 것이다. 물론 여성은 철저하게 피해자다.
작가가 까발려 보여주는 것들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놀라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이 책을 단지 불편하라고 쓴 것만은 아닐 것이다. 몇 백년 전에 쓰여진 고전문학 속의 문제를 굳이 지금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관습, 문화, 도덕등 오랜 시간 굳어져 온 것의 기원을 밝히고 그것이 오늘날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의문이 남는다. 권선징악이라는 윤리의식의 내면화를 위해 아동에게 읽혀온 전래동화를 계속 읽혀야할지 말지다.
예컨대 흥부전과 심청전이 그러하다. 흥부처럼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형제간에 우애가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던 이야기로만 읽혔는데 그 이면에 숨은 흥부의 무능함은 어쩌란 말인가. 그동안 청이의 효심을 강조했던 심청전에서 시각장애인 심봉사는 흥부에 비하면 적극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는 또 어떤가. 장화홍련전은 더 심각하다. 아버지 배좌수의 행동을 친딸 성폭행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는 분명 자녀들에게 전래동화를 읽힐 때 고민이 될 것이다. 어른에게는 충분히 신선하고 비판적 시각이었지만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때 어느 선까지 언급해야할지 말이다. 아무래도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권선징악에 초점을 맞추되 고학년이상부터는 부모가 문제제기를 해서 비판적 사고를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을 것이다. 중고생의 경우, <구운몽>이나 <춘향전>으로는 처첩제도와 시대에 따른 여성의 시각에 대해 이야기 나눠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장 "가족의 재탄생"에서 작가는 사르트르를 인용하여 가족에게도 의미 부여를 하자고 말한다.

주욱 유지하던 스타일은 어디가고 갑자기 식상한 멘트로 교훈적인 마무리를 하니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동안 나는 기다리기만 했던건 아니었는지 반성했다. 그렇다고 먼저 손내밀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