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 수상한 서재 3
하승민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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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콘크리트>는 황금가지 출판사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책이다. 소설 소개에서 여자변호사가 주인공이고 이혼 후 아들과 귀향해서 범죄사건에 휘말리게 된다는 내용을 읽고 구미가 당겼다. 여자가 주인공이라는게 맘에 들었고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증이 일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거기에 반전까지 있다니!!

500쪽에 달하는 길이지만 흡입력이 강하다면 하루만에 읽어낼거라 장담하며 책을 펼쳤다. 첫 장면부터 사건현장이었다. 불에 탄 길림마트에서 발견된 엄지 손가락은 앞으로 벌어질 암울한 사건들의 서곡이었다. 배경이 되는 '안덕'이라는 도시의 분위기부터가 음울하다. 쇠락해가는 도농복합도시이며 안덕은 그곳의 질서로 움직이는 곳이었다. 물론 그 질서를 핸들링하는 자는 주인공과 관련이 있다.

도시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드는데 큰 몫을 담당하는 것은 낮은 회색빛 하늘이다. 햇빛 쨍한, 화사한 날은 묘사되지 않는다. 늘 흐리거나 춥다. 여름이 오면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지 않을까? 아니다. 여름엔 장마와 태풍이 해를 가린다. 날씨 때문에 흐리고 우울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만은 아니다.

냄새때문이다. 범죄소설이니 피비린내가 아닐까? 예측되겠지만 그것보다 역한 냄새는 비릿한 바다냄새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바다 냄새는 독자들이 범인으로 의심할 여지를 물씬 주는 인숙에게서 풍기는 역한 바다냄새다. 흔히 시나 소설에서 묘사되는 바다 비린내의 느낌은 긍정적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인숙이 바닷물을 온몸으로 뚝뚝 흘릴 때 그의 혐오스런 외모와 거구의 몸에서 역함이 같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처음 마트가 불탄 이후 횟집, 골프연습장, 인력사무소까지 불이 나고 실종된 그 업체의 주인들은 모두 안덕의 실세이자 주인공 세휘의 당숙인 장정호의 후배들이었다. 장정호는 세휘에게 이곳에서 자리를 잡게 도와주겠다며 경찰보다 빠르게 정보를 캐든 범인을 잡든 해보라고 한다.

변호사 세휘는 이혼 후 아들과 고향에 내려와 사무실을 냈지만 이방인에 가까운 신세로 수임을 맡게될리 만무했다. 당숙이 약속한 지원은 너무나 유혹적이었고 한편 허황돼 보였다. 정계진출이라니? 당장 아들과 치매인 친정엄마를 부양하는 것도 버거운데 어불성설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집안을 보살펴 준 사람은 당숙뿐이었다며 고마워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칭송하는 엄마의 말에 못이기는 척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늪인 줄 모르고 발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아름다운 꽃을 꺾으려 들어갔으나 되돌아 나오려고 몸을 움직일수록 들어온 지점에서 멀어지는 꼴이 되었다.

두번째로 횟집이 불타고 거구의 범인이벌이는 행각과 소설의 분위는 잠시 책을 덮게 만들었다. 너무 음울해서 내 기분마저 한없이 지하로 꺼져들어가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이었다. 뭔가 밝은 걸 보고 듣고 싶었다. 말랑하고 달콤한 이야기가 없을까 하며 책장을 훑어보았다. 시집을 꺼내 읽다가 타샤튜터의 정원 그림을 보다가 프리드리히 굴다가 연주하는 바흐 프렐류드를 듣다가 드라마 부부의 세계 막방을 봤다. 아후!! 사이다 한 캔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책을 다시 폈지만 얼마 읽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오늘 다 읽게 되었다. 이틀 걸렸다.

이 소설은 방화 발생 때마다 현장에 남겨진 손가락으로 다음 사건의 희생자를 추리하게 하는 큰 얼개를 두고 사이사이에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집어넣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전체적 분위기는 위에서 설명한 대로이다.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갈수록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진범이 나올 때가 됐는데, 과연 내 예상이 맞을까? 범인의 의도도 내가 예측한대로일까? 궁금했다. 몇장 남겨두지 않고 드러난 범인의 정체는 반전이었고 깜짝 놀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점은 범인에 대한 서술의 부족이었고 범죄의 당위성에 대한 설득력도 좀 부족했다. 물론 그 인물이 갑자기 짜잔하고 나타난 건 아니다. 초반부터 등장했고 존재감은 미미했기에 범인의 후보에 들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진범의 각본과 연출대로 세휘가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세휘가 처음부터 알콜 중독으로 휘청거리던 것은 복선이었다. 술에 조종당하던 세휘는 이제 또다른 존재의 힘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당숙은 사라졌지만 세휘는 당숙이 했던 약속대로 살 수 있게 된 셈이다. 이것은 그에게 해피엔딩인가, 아닌가. 제목처럼 단단한 콘크리트 세계에 갇혀버린걸까?

이 소설을 쓴 하승민씨의 이력은 작가와는 가까워 보이지 않는다. 이번이 그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촘촘한 구성과 영화장면을 보는 듯한 서술,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심리 묘사 등은 첫 작품이라하기엔 감탄스럽다. 차기작을 준비중이라는데 어떤 내용일지 기다려진다. 이번보다는 조금 밝은 스릴러였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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