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수미의 시방상담소 - 뭣 같은 세상, 대신 욕해드립니다
김수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2월
평점 :
<김수미의 시방상담소>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서 작년에 방송되었던 내용을 추려 책으로 엮은 것이다. 김수미씨야 국민 욕쟁이 할매로 전국민이 다 아는 사람이라 그 유명세는 두 말할 필요도 없는데 일상 상담까지 한 줄은 이 책을 RHK 서평단으로 받고 처음 알았다. 31세에 드라마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를 시작으로 무수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약했고, <수미네 반찬>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프로그램으로는 요리로도 유명해졌다.
그런데 내가 너무 나이든 건지, 요리 프로그램은 안 봐서 그런건지 “김수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용엄니다. 책의 상담 답변을 눈으로 읽는데 일용엄니의 목소리가 내 귀에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이게 또 신기한 것이, 예전 일용엄니로 분했을 때 그의 실제 나이가 만 31세였으니 아무리 할머니 분장을 하고 걸걸한 목소리를 냈다 하더라도 젊은 목소리였을 테다. 이 책 때문에 알게 된 오디오 클립 “시방상담소”를 직접 들어봤더니 내 귀에 자동 재생된 목소리보다 너무 나이 든 목소리로 들렸다는 거다. 그래서 나 혼자 신기해했다. 내 귀에 저장된 김수미의 목소리는 젊은? 일용엄니 목소리였다는거~~

이제 책으로 들어가보자. 나, 일, 가족, 인간관계, 돈, 남과 여의 주제로 모두 6장으로 구성되었어 있다. 국민 욕쟁이 할머니에게 상담을 요청한 사람들 대부분은 20~30대였다. 물론 그 나이에는 고민도 많고 미래도 불안하니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에게 당한, 예컨대 친구나 부모에게 서운했던 일이나 직장상사의 갑질때문에 힘든 점 등을 포함하여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해 답답한 심정등을 호소는 내용이다. 그들이 원하는 공통된 답변은 욕좀 션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고, 이에 김수미는 통쾌하게 욕을 난사해 준다.
이 책의 장점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보통 심리 상담 서적이나 팟캐스트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같은 데에서는, 욕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에선 대놓고 쌍욕을 걸게 해주니 고민 상담자도 후련했을 것이고, 불특정 다수인 나같은 독자가 읽어도 기분 좋게 웃을 수 있다. 각 꼭지마다 상담 내용을 짧게 간추리고 그에 대한 답변도 시원하게 혹은 진지하고 따뜻하게 해준다. 책의 구성도 재미있게 편집되었다. 중요 내용은 글자 크기를 크게 하여 강조하고 일러스트 이시우씨의 그림도 적재적소에 재미나게 표현되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김수미씨의 인생역정도 알게 된다. 평생을 연예계에 몸담으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을 것이고 70세가 넘는 지금까지 다양한 캐릭터에 요리까지 보여주며 얼마나 희안한 일을 겪었을지 감히 예상된다. 우리는 보통 연예인의 성공한, 화려한 겉모습만 보지 가려진 곳에서의 실패와 어려움, 실생활에서의 고충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김수미씨는 자신도 상담자들과 같은 나이대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얘기하다보니 그의 사생활이 자연스레 드러나게 되었다. 나에겐 상담자들 각각의 고민보다 답변 속에서 김수미씨의 삶을 보게 되어 좋았다. 연예인으로 바쁘게 살면서도 집안일을 하고, 반려동물을 챙겼으며, 젊어선 남편의 외도를 감내하며 살았고, 나이 들어선 남편의 당뇨병 케어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어제 일기를 쓴다고 했다. 배우로서 다양한 인물들을 연기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고민을 십분 이해하고 적절한 상담을 할 수 있었을테지만, 그보다는 70평생을 그토록 옹골차게 살아왔기에 화통한 답변이 가능했다고 본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여러 질문들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 혹은 유사한 것을 읽으며 고민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김수미씨의 생활에서 묻어나는 진심어린 답변으로 위로도 받게 될 것이다. 시중에는 저명한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프로이트나 융같은 외국 학자들의 이론을 해설서처럼 덧붙여 출간된 책들이 많다. 이 책에는 그런 유명 학자들의 이론 같은 것은 없다. 먹먹한 가슴을 뻥 뚤어줄 핵사이다같은 욕쟁이 할매의 욕 한 방이면 고민 클리어다! 지금 뒤엉킨 머릿속 고민과 가슴 팡팡 두드릴 화딱지 날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과 상담보다 저렴한, 14,800원짜리 처방전을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시원한 욕 답변 몇 개를 소개한다.
p. 81~81
Q. 직장 상사가 제가 좋대요. 싫다는 데도 ‘공주님~ ’ 이러면서 계속 이상한 갠톡을 보내요. 너무 소름끼치는데 어떻게 하죠?
A. 내가 찾아갈게. 이 새끼 진짜 가만 안 둬. 진짜 또라이야 이거. 이런 새끼는 신고해야 돼. 신고했다고 괴롭히면 얘기해. 반 죽이고 뭐 그런 거 없어. 다 죽여야 돼 나 아니더라도 주변에 이렇게 얘기해줄 언니나 동생 많을 거야. 그런 사람 붙들고 얘기를 해. 그리고 들어. 그놈이 얼마나 이상한 짓을 하는지. 지금 네가 불편하고 소름 끼치는 게 얼마나 당연한 일인지 자꾸자꾸 들어야 용기를 낼 수 있어. 당당하게 화내. 절대 움츠러들지 마.
p.273~274
Q. 오늘도 마흔 번째 텀블러를 샀습니다. 흥청망청 카드 긁는 저 좀 욕해주세요.
A. 자. 시작할게요. 너는 미친년이야. 정신머리 썩은 년이야. 정신 똑바로 차려 이년아. 머리채를 잡아 가지고 그냥 양쪽으로 쌍갈래를 해가지고 불에 확 꼬질러버릴까. 대가리를 뽑아서 찬물에 헹궈야 정신 차릴래. 염병할 주둥이는 살아서 마흔 번째 뭐를 사? 씨부랄 너 혼자 돈 십 원도 없이 이백 살까지 살 거야? 흥청망청하다가 마흔도 못 넘기고 거지될래! 니미럴 늙어서 손가락 빨고 다니면 볼만 하겠다. 육십 넘어서 밍크 두르고 고급지게 살고 싶어? 품위 그거 다 돈 지랄이야. 우아하게 친구들하고 유럽 여행도 가고 해야지.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는 못해도 시벌 비즈니스 정도는 타야지 이코노미 낑겨 타가지고 유럽까지 실려 갈래? 이 미친녀나. 따라해. 내 손모가지를 자르든, 카드를 자르든 둘 중에 하나를 자른다!
오케이 여기까지. 그럼 굿나잇.
p.285~286
Q. 저한테는 만 원짜리 장미꽃 한 번 안 사주는 남편이 여자 BJ한테는 별풍선을 20만 원어치 쏩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요? 참다가 참다가 너무 과하다고, 2만 원정도만 하라고 얘기했더니 그렇게 조금하면 BJ가 실망해서 안 된대요. 정신 못 차리는 남편 어떡하죠?
A. 미친놈이다. 또라이네. 너도 참 너다. 뭘 참다가 참다가 2만원만 하라고 했대. 줘 패도 모자랄 판에. 아니 마당에서 석유가 나와요? 전 재산이 한 50억원 넘어요? 그럼 20만 원 쏘세요. 심심하면 나한테도 쏘세요. 근데 전세 월세 살면서 사방이 돈 나갈 구멍인데 우리 집 여자도 아니고 남의 집 여자한테 20만 원씩 막 쏘는 건 진짜 정신병 아니냐? 타일러도 보고 윽박도 질렀는데 말을 안 들으니까 나한테 도움을 요청한 거 아니야. 그러면 방법은 있어. 너도 다른 남자 BJ한테 한 40만 원 쏴. 그리고 ‘여보 나 40만 원 쐈는데 BJ가 너무 좋아한다! 해. 그래도 정신 못 차리면 한 400만 원 쏴. 어디 누가 먼저 집안 말아먹나 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