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위한 인문학 -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은주.임형남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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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즈음,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EBS에서 눈길을 사로잡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건축탐구-집”이었다. 지리산에서 혼자 나무를 심고 가꾸며 살고 있는 한 여성의 집을 소개하고 있었고 그 집을 방문한 이들은 노은주, 임형남 건축가였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집을 지은 사람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었고 방문자 둘은 부부사이였다. 그러다 출판사 연재 이벤트에서 낯설지 않은 이름을 발견했는데, 그들이 책을 낸 것이었다. 제목은 <집을 위한 인문학>

EBS 프로그램도 흥미롭게 보고 있고, 집 짓기에 관심이 많아서 신청해서 받게 되었다. 저자 소개를 보니 이미 책을 많이 낸 사람들이었다. 이번 책에서는 제목처럼 집과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부제는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이다.

집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집이라는 거주 공간의 대표 어휘 대신, 우리는 보통 집이라고 하면 아파트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집, 즉 아파트를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본다. 내가 산 아파트 가격상승에 따라 재테크를 잘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현실이다. 집은 가족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정의가 우선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2순위로 밀려난 상황이라 하겠다.

이 부부 건축가는 책에서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탐구를 해 나간다. 그동안 그들이 만났던, 좋아하는, 함께 지었던 집에 대한 이야기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4장으로 구성된 목차는 각각 가족, 사람, 자연, 이야기를 품은 집으로 구분해 두었다. 그러나 구분의 의미가 무색하게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다. 그것이 읽기에 거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부부 중 누구의 과거사에 대한 기술인지를 밝히지 않아 알 수가 없지만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므로 따지는 것도 그리 의미없어 보인다.

 

 

자신들이 지은 집이나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집 위주로 소개할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의외로 문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왔다. 시와 시인, 소설과 소설가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것을 또 건축이야기로 끌어간다. 그래서 제목을 '집을 위한 인문학'으로 지은 모양이다.

고등학교때 개선문을 1년동안 읽었고, 박완서 작가를 좋아해서 그 분의 책을 많이 읽었으며 앙드레 지드, 카프카, 사르트르까지 읽었다는 내용을 보며 '건축가는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하나?' 싶었는데, 저자는 그들의 소설을 읽으며 ‘뭔지 모를 삶의 실체와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를 보라'는 것으로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소설속에 들어가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넓은 소설을 좋아했다고 한다.

 

p. 227~229

인간이 곧 이야기이며 그 안에서 사는 삶이 다시 이야기가 된다. 다만 시, 음악, 미술 심지어 건축 역시 삶을 이야기하는 데 추상화하고 상징화해서 표현하는 데 반해, 소설은 삶을 더욱 구체화해서 자근자근 펴서 보여준다. 해석의 여지가 있기는 하지만 소설이 갖고 있는 구체성 혹은 사실성이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건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건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건축에 구체적이고 진정성이 있는 삶의 모습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개념이라는 분칠을 하지 않고 조형적 아름다움이라고 우기지 않는 진정한 삶을 담은 건축은 과연 어떤 것일까? 많은 사람을 위해 낮은 곳으로 펼쳐지는 건축은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프랑스 건축가 ‘폴 앙드뢰’가 쓴 소설 <내 마음의 집>에서 이런 문장을 찾아낸다.

“나를 품어주었던 집, 내가 자라났던 집은 그 후 내 속에 있고 나와 더불어 세월의 지평선으로 사라진다.” 이 말과 함께 저자는 집이란 개인이나 집단이 담고 공유한 특정한 기억이나 정서를 뛰어넘는 한 개인의 우주이며 그 자체로 이야기를 하는 소설과도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2주 전 tvN 프로그램 “shift”에서는, 공간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김정운씨가

"공간은 나다!"

 

라고 정의내렸다.

그가 말한 공간은 집이라 할 수 있다. 집, 즉 자기가 살고 있는 공간이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는 그 정의와 저자의 말이 곧 같은 의미로 보인다. 한 개인의 우주를 나타내는 공간이 집인데 우리는 아파트라는 똑같이 생긴 네모난 공간 속에 살면서 내부 인테리어를 바꾸는 정도로 개성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김정운씨와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개성이나 우주는 그런 것이 아닐터이다.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라고 표현되는 집이라는 것은 주거하는 건물 뿐아니라 마당과 울타리까지 포함되며 그 전체가 집 주인을 표현하는 것이다.

최근 아파트 살이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방송에서 개인 주택을 짓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고, 프로그램을 만들만큼 그 대상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남성들에게 인기를 끈 장수프로램인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면 산골에서 집짓고 두문불출 사는 사람도 있지만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서 직접 건축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도 그러하다. 기억에 남는 집은, 남편과 아내가 원하는 공간을 명확하게 요청했다는데 남편이 원한 것은 수영장이었다. 평창동 언덕배기에 지은 집에 떡하니 수영장이 있는 걸 보니 그 집 남편은 소원성취했구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저 수영장 청소는 어떻게 하나?하는 오지랖 넘치는 걱정이 들었다.

 

포항의 어느 신혼부부는 부모님이 쓰던 창고를 개조해서 주택으로 만들었다. 그 돈이면 아파트를 사겠다는 주위의 퉁박에 그들은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shift” 공간편에서도 유사한 신혼부부가 있었다. 남해 어딘가의 시골집을 구해 둘이서 열심히 고치고 다듬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참으로 신통방통한 젊은이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고가구를 고쳐서 세상에 하나뿐인 싱크대를 아내에게 만들어주고 그 싱크대에서 음식을 만드는 게 너무나 행복하다고 아내는 환하게 웃었다. 그들은 도시에서는 꿈도 못꿀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의미를 찾는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똑같이 살아야 불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 것은 남들과 똑같아서는 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직접 건축한 사례 외에 한옥과 고택, 궁궐을 많이 다루었다. 학창시절 하릴없이 동네를 걷다 당시에는 꽤 한적했던 궁궐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던 경험이 많아서인 듯하다. 한옥에 대한 애정과 그 공간에서 한국적인 것, 정체성등을 생각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외국 사례로 해비타트 운동과 칠레 도시재건 프로젝트를 다루면서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p.255

현실이 녹록했던 적은 세상이 만들어진 후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희망이라는 고갈되지 않는 막대한 에너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우리를 웃게 만들고 우리를 일으켜 세운다. 인생도 건축도 우리의 모든 생활은 희망을 통해 영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는 사이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의 희망과 그 이야기를 담는 공간들이 자라나고 있다.

저자는 “어떤 집이 좋은 집인가요?” 라는 질문에 서슴없이 이렇게 답한다고 한다.

“좋은 집은 가족의 생활이 담기는 집, 일상복처럼 편안한 집”이라고.

이 대답은 부제에서 했던 질문의 답과도 같은 것이다. 집은 나 자신을 표현하는 개성있는 공간이면서 가족들과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집을 재산증식의 수단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의미있는 공간으로 사고의 틀을 바꿔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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