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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구보타 유키 지음, 강수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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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선인장이다. 그것도 가시가 아주 큼직큼직하니 찔리기라도 하면 엄청 아플 것만 같다. 그런데 책 제목에 친절이란 말이 들어간다. <나는 나에게만 친절합니다> 응? 그럼 이 책의 저자는 남에겐 까칠하고 자신에게만 친절하단 말인가?
저자는 일본인 ‘구보타 유키’씨이고 편집일을 한 적이 있고 출간한 책도 여러권 있다. 표지의 부제를 보니 이렇게 쓰여있다.
‘독일인에게 배운 까칠 퉁명 삶의 기술’
‘철학의 나라 독일에서 찾은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
‘으흠... 그러면 일본인이 독일에 가서 살면서 독일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고 느낀 것을 책으로 쓴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책을 구매할 때는 본인이 좋아하는 장르나 작가를 선택하고, 그러면서 책 내용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RHK 서평단으로 받았기 때문에 책을 받고 표지와 제목 책 날개의 작가설명으로 유추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전혀 모르는 작가의 모르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책을 받아서 읽는 것이 바로 서평단의 매력이다. 물론 선택권 없이 도착한 책이 다 내 마음에 들거나 재미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번 책처럼 정보없이 받아서 어떤 내용일까 예상하면서 책장을 넘기는 맛이 좋다.
아아니~~
이 무슨 우연인가?
내가 유럽에 가서 한 달 간 살아본다면?? 1순위로 '베를린'을 뽑아두었는데, 저자는 베를린 이야기를 하겠단다. 나아가 독일 이야기도!! 괜히 나혼자 반가워서 형체 없는 저자와 하이파이브를 할 뻔 했다.
그는 어느날 출근하던 신주쿠역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면서 솟구쳐 오른 짜증에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스스로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떠오른 것은 바로 어릴 때 살았던 ‘독일’! 그래서 그는 베를린으로 떠났다. 이 책은 베를린에 살면서 독일 생활의 이모저모를 전달하려고 썼다고 한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밝힌다.
제가 독일에서 경험한 것,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느새 편안한 마음으로 살게 된 과정, 그리고 독일에 살지 않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솔직히 저는 베를린이 좋아서 살고 있지만, 독일이라는 나라가 뭐든 근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은 게 이상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딱히 독일을 그대로 모방하자는 건 아님을 알아주세요. 다만 다른 가치관을 앎으로써 시야를 넓히고 지금까지 받아온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데 이 책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양한 사고 방식을 알면 그만큼 넓은 시야로 자기 기준을 정할 수 있어요. 내 기준이 있으면 내 행동을 수긍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디서든 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어요. 저는 그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저도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고 하루하루 알차게 보낼 수 있기를, 그런 삶을 살아가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다른 점이 아주 많아 보이는 일본이지만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하자면 우리는 독일보다는 일본과 비슷한 면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인의 사고와 문화로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려운 독일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해서 차이를 비교하며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시작할 때의 에피소드는 황당하게 당했던 택배 기사 이야기 였는데 일본문화와 너무나 달라서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것들이 계속되는가 싶었는데 어느 순간 독일인 라이프 스타일의 장점으로 슬그머니 넘어가고 있었다. 읽다보니 무뚝뚝하지만 심플하고 합리적인 독일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괜찮게 느껴졌다. 작가에게 스르르 동화되어가는...ㅎ
편집자로 일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책의 구성이 읽기 편하게 되어 있다. 한 꼭지가 그리 길지 않아서 읽는데 부담이 없고 중간중간 사진도 적절하게 배치해서 텍스트만으로 부족한 독일의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자신이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은 마음에 들었다. 오래된 것의 진진함을 보여주었다. 저자가 사는 집은 100년된 공동주택 ‘알트바우’이다. 건물 자체는 오래 되었지만 실내는 현대에 맞게 리모델링 되어있다. 신축 건물보다 이렇게 오래된 건물을 더 가치있다고 여긴다하니 뭐든 부수고 새것을 지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일본도 비슷한 사고가 있는 모양이다. 우리와는 결이 조금 다르긴 해도...
오래된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건 서양적인 사고방식인 듯해요. 일본의 신사에는 센구라는 행사가 있어서 정기적으로 신전을 지어 옮겨요. 신을 모시는 장소는 늘 새롭고 맑아야 한다는 사상은 서양의 사고방식과는 정반대일 수 있죠. 어쩌면 나무 문화와 돌 문화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어떤 집에 산다는 게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냐고요? 우선 베를린에 살기 시작하면서 시간에 대한 감각이 바뀌었어요. 알트바우에 살고 있다는 게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일본에 있을 때는 10년 전은 옛날 일, 1세기 전은 저와는 관계없는 역사 교과서 속 세계였어요. 그런데 베를린에서 1세기 전에 지어진 집에 살게 되자, 역사의 세계와 제가 지금 살고 있는 현실이 이어져 있다는 걸 느껴요.
이 책을 읽으며 독일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기실 독일에 대해 내가 아는게 대체 뭐 하나라도 있나? 기억을 더듬어보니, 영화 속 배경으로 나온 베를린에 반했고, 저주받은 건축프로젝트에서 함부르크의 랜드마크가 된 앨프 필하모니 홀 건축 다큐를 보며 독일인의 옹고집을 확인했다. 수순대로 하자면 그곳에 꼭 한번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데 아직 독일은커녕 유럽 근처에 발 한번 디뎌보지 못했으니 로망만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이다.
앗차차... 독일인에 대해 알게 된 것!
그들은 의식주 중에 주에 가장 관심이 많다고 한다. 베를린 여성들의 옷차림은 티셔츠에 청바지로 그렇게 단촐할 수가 없는데 집에 대해선 소중하게 여긴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각방의 용도를 명확하게 한다. 특히 조명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데 약간 어두운 조명으로 안정감을 가지게 한다. 간접 조명 여러 개가 방 이곳저곳을 비추거나 양초의 촛불이 하늘하늘 흔들리면 독일식 휘게인 ‘게뮈트리히’해진다. 독일어 게뮈트리히는 ‘안락하고 편하다’, ‘느긋하게 쉰다’라는 뜻이다.
독일에서는 손님을 초대하면 집 구석구석을 다 보여주는데 대체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하다고 한다. 독일인들은 정리정돈에 능숙하고 깔끔한걸 좋아한다. 그렇게 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청소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집안 정리에서도 중요한 것은 역시 버리기다. 그들은 아무리 넓은 집에 살아도 불필요한 물건은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처분한다. 필요한 물건만 남기면 정리정돈하기도 편해진다. 불필요한 것들을 내보내면 공간도 마음도 상쾌해지게 된다.
이 책에서 내가 관심있게 본 것은 주생활이지만 그 외의 생활, 그리고 일과 휴가에 대한 것들도 있어서 독일인의 삶에 대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들의 라이프스타일 중 가장 부러웠던 건 휴가였다. 연초에 휴가 계획을 세우고 회사에도 미리 알려 일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조율한다. 유급휴가로 30일을 쓸 수 있다는 것에는 더 놀랐다. 그러니 휴가 떠날 생각에 평소 더 열심히 일하는게 아닐까. 심지어 유급인데 말이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독자들의 마음이 가벼워졌길, 뭔가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고 했다. (독일에서 살아본 적 없는)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며 독일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한 일본인의 시각으로 만난 독일인이기에 긍정할 내용도, 의심이 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독일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어느 정도 벗을 수 있는 기회였다. 딱딱하고 냉정하고 재미없는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었는데, 그들의 자유로움 안에 들어있는 합리적인 사고를 보았다. 제목에서 언급한 나에게만 친절한 태도가 까칠한 것이 아님을 알겠다.
아~~ 언젠가 베를린에 가서 살아볼 날이 온다면!! 나도 저자처럼 베를린 통신원이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