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관계 에세이
유영만 지음 / 나무생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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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는 한양대학교 교수이자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쓴 책이다. 그는 책 본문에서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꾸미는 사람은 자기 색깔을 감출 수 있는 컬러링(coloring)을 좋아하지만 가꾸는 사람은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컬러풀(colorful)을 선호합니다. 컬러에서 나온 두 가지 형용사, 즉 자신을 위장하는 컬러링과 위대하게 만드는 컬러풀은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릅니다. 컬러풀 지식생태학자로 나만의 고유함을 드러내는 공부와 연구로 세상을 지금보다 따뜻한 세계로 가꾸고 싶습니다.”

 

지식생태학자라는 말이 낯설다. 그래서 반디앤루니스와 한 인터뷰 ‘100인의 큐레이션에서 지식생태학을 설명한 부분을 찾아 인용한다.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이유와 원리를 관찰한 후 생각하다가(고찰) 깨달음(통찰)을 얻게 되면 다시 생각(성찰)하게 된다.(관찰-고찰-통찰-성찰) 이러한 원리와 방식을 사람에게 적용해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을 지식생태학이라고 한다.

 

이렇게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학문을 하는 저자가 책 제목을 왜 부정적 뉘앙스가 풍기는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라고 했을까?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매일매일 누군가와 만난다. 그런 만남에서, 헤어지면 또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왜 생기는 건지 1년을 정리하면서 인간관계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자 했다.”

 

이렇게 그는 만났던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가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한 사람의 유형을 읽으면서 앗, 나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게 아닌가 뜨끔뜨끔했다.

 

이 책의 목차는 3부로 구성되어 있고 제목은 다음과 같다.

1부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2부 이런 사람 피하세요.

3부 뭔가 다른 이런 사람 되세요.

 

책을 읽다보니 내 경험과 유사한 상황과 사람이 제법 많았다. 저자가 말하는 사례들이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 있다. 인간관계라는 것이 누구와 누가 만나느냐에 따라 경우가 다 다르다 하겠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상황들인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 책을 읽다가 뭐야, 다 아는 얘기잖아? 이런 상황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인간관계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비슷비슷하다는 말도 되고, 누구나 유사한 경험들이 있다는 것도 된다. 나에게 해당되거나 고민하고 있던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 위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1부의 과거로 향하는 꼰대를 보자.

p.41

어떤 모임에 가면 과거 이야기로 꽃을 피웁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 매번 만날 때마다 예전에 자신들이 생각하고 행동했던 추억에 빠집니다. 물론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며 잠시 향수에 젖는 즐거움을 무조건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지금 여기서 살아가는 이야기나 미래 이야기는 없고 온통 과거 이야기로 대화가 채워집니다. 꼰대들의 향연이 따로 없습니다.

 

 

꼰대들의 향연에 완전 공감했다. 일 년에 한 두 번 가는 모임이 있는데  그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나는 저런 꼰대 아줌마는 안 돼야지!’라고 다짐한다. 그곳에 오는 사람들 모두 전문직이며 다들 입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10년 동안 계속 느끼는 거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과 똑같다. 맨 똑같은 래퍼토리다. 늘 내가 그 모임에 합류하기 전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처음엔 몰랐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다 아는 내용이 되어버렸다. 옛 영화를 그리워하거나 한 사람을 뒷담하는 내용이 자동 재생된다. 미래를 향한 이야기보다 과거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 않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 만나지 말라고 했으니 내가 그 모임에서 빠지면 된다. 헌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일년에 한 두 번인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어쩔수 없이 이어가는 중이다. 과감하게 이런 사람들 안 만나면 좋겠는데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만나지 말라고 한다.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들 꼭 있다. 밥 먹듯 약속 안 지키는 사람, 매사를 삐뚤게 보는 사람, 인간미 없는 매정한 사람, 분위기 파악 못하는 사람 등등.

 

1부의 두 번째 챕터를 읽다보니 왠지 나를 보는 느낌이었다. 늘 그런 건 아니어도 다들 저런 짓 할 때가 있지 않나? 나만 그런가? 상대의 행동에 부정적 피드백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좋게 말하면 비판적 시각이고 사사건건 그러는 건 꼬투리 잡기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 다 저래!”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만날 사람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생각할 만한 언행을 한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남들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신경 쓴다면 저자의 지식생태학 수업을 들은 것이나 진배없다.

 

2만나면 위기가 오는 사람들을 읽다보니 주위에 이런 사람들 꽤 있다. 도전하지 않고, 만나면 남 뒷담화만 하고, 자기 반성보다 타인을 질책하는 사람, 경험보다 욕망을 자극하는 물건을 사는 사람 등등. 이 파트도 1부와 마찬가지로 나는 이러고 사는게 아닌가 돌아보았다.

 

도전을 하기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챕터에서 소개한 마지막 어휘를 보자.

p.109~110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이라는 책에서 마지막 어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어휘는 자신의 행동과 신념, 그리고 삶을 정당화하는 데 필요한 단어입니다. 개인 혹은 집단이 딜레마에 빠지거나 결연한 결단을 내릴 때 의사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는 데 최후까지 의지하는 신념을 말합니다. 마지막 어휘는 보통 의식 아래 있다가 삶이 흔들릴 때 표면 위로 솟아오릅니다.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결연한 어휘입니다.

예를 들어 간디에게 마지막 어휘는 비폭력이고 부처에게는 자비’, 공자에게는 ()’입니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혁신이고 리처드 브랜슨에게는 상상입니다. 플라톤에게는 이데아’, 사르트르에게는 실존’, 스피노자에게는 코나투스’, 니체에게는 아모르파티’, 라캉에게는 욕망’,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언어가 마지막 어휘입니다.

저마다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한 가지 단어,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을 만큼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견인차 같은 단어가 있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어휘가 지금 여기서의 삶에 머무르지 않고 보다 소중하고 숭고한 삶, 자기를 넘어 타자와 공동체로 연결되는 삶을 꿈꾸게 만듭니다.

 

나에게 마지막 어휘는 무엇일까? 인생 책, 인생 영화도 단박에 대답하지 못해 어물어물하는데 마지막 어휘가 바로 떠올랐을 리가 없지... ‘자기를 넘어 타자와 공동체로 연결되는 삶을 꿈꾸게 만드는마지막 어휘! 너무 거창해서 부담스럽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의 종착역이 마지막 어휘 찾기가 아닌가 싶다.

 

작년 초, 100일 글쓰기를 시작해서 1000일 글쓰기로 가는 동안 직진만 했다. 700일을 향해 달려가는 요즘, 브레이크가 걸렸다. ‘나는 지금 뭘 위해 이러고 있나?’ 하면서 뒷머리를 긁적여봐도 답을 모르겠다. 이것이 슬럼프일까. 그제부터는 다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확 들었는데 이 리뷰도 써야하고 읽어야 할 책들이 순번대로 주르르 줄을 서있는 걸 보니 그럴 수도 없다. 하고 있던 고민과 저자가 언급한 마지막 어휘찾기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수확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의 마지막 어휘를 찾아다니는 것이라 생각해야겠다. 타자와 공동체로 연결되는? 거창한 정도는 아니어도 분명 내 인생관에 부합하는 단어를 찾으면 흔들리는 마음을 고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 저자가 말하는 뭔가 다른 이런 사람은 이렇다. 겸손하고,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하고, 지적보다 지지해주고, 적게 말하고 많이 들으며, 말한 대로 살아가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다.

진정한 인간관계란 기쁨을 주는 관계라고 하며 엄기호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를 인용한다.

p. 223

재미는 사람을 웃게 한다는 점에서 기쁨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재미는 현존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그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나는 기쁠 수 있다.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웃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나를 기쁘게 하는 그의 현존에 대해 나는 감사할 수 있다. 나를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그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의 현존에 감사할 수 있다. 그 감사로 인해 삶은 살아갈 만한 것이 된다.

 

요즘은 뭐든지 재미있어야 한다. 책도 영상도 재미있어야 본다이상형의 조건 상위에 유머러스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인간관계에서 재미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나 상대를 재미있게 하려면 이전보다는 더 재미있는 무언가를 해야 하므로 그렇지 않게 되면 그 인간관계는 끊어진다. 기쁜 인간관계는 존재 자체의 소중함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상대가 있는 그대로이기보다 자꾸 무언가를 요구하고 기대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존재만으로도 기쁜가?? 떠올려봤는데 없...... 그냥 당연히 떠오르는 가족?정도...

, 있다! 그런데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다...

얘들은 그냥 존재자체가 기쁨, 맞다!!

 

... 내가 인간관계를 잘 못해온건가??

내가 이렇듯 다른 사람도 나를 존재자체로 기쁘다고 여기지 않을 수도 있다.

일방이 아닌, 서로가 기쁜 관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행복한 관계는 함께 만들어가는 연대라고 말한다.

 

p.229

오늘의 나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내가 전경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수많은 은인들 덕분입니다. 인간관계는 전경과 배경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관계입니다. 어두운 배경이 밝은 전경을 낳고, 걸림돌이라는 배경이 디딤돌이라는 전경을 낳으며, 밑바닥 좌절이라는 배경이 정상에서 느끼는 기쁨이라는 전경을 낳습니다. 화려한 스타 플레이어가 돋보이도록 도움을 주는 어시스트의 존재가 인간관계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힘들게 키워놨더니 저 혼자 큰 줄 안다!”고 푸념하곤 한다. 우리는 모두 저 잘나서 큰 줄 안다. 부모님에게는 물론 주위 사람, 이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이만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매초마다 그것을 기억하고 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주인공, 전경이 될 수는 없다. 배경의 존재가 있기에 전경이 아름다운 것처럼 서로의 어시스트가 되어주는 인간관계를 추구해야 한다.

 

이 책은 별 도움이 안 되는 사람과는 관계를 정리하라는 것처럼 읽힌다. 그런 사람들과 모두 안 만나면 홀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의 주장은 그게 아니다. 인간관계를 다 정리하고 고립되면 무슨 소용인가. 자신은 남이 관계를 끊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지를 돌아보고 서로에게 배경이 되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자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은 나를 성찰하는데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막혀있던 생각의 물꼬를 터주는 기회를 주어 기분 좋은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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