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개좋음
서민 지음 / 골든타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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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TV 동물농장에서 기막힌 영상을 봤다. 어떤 남자가 개를 산책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슬쩍 줄을 놓더니 개를 버리고 도망가 버리는 영상이었다. 아파트 지상주차장 CCTV에 고스란히 찍혔는데 뻔뻔하고도 계획적인 그 남자의 행동에 치가 떨렸다. 그 개는 하루 종일 발을 동동 굴리며 주인을 찾아 주차장을 빙빙 돌아다녔다. 어떤 맘씨 좋은 사람이 추석에 그 아이를 데려가 임시보호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 개는 귀와 발에 염증이 심각했고 배쪽에 악성종양이 여러 개가 발견되었다. 아마 주인은 치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안 되서 버린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해해주기는 어렵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사랑한다면, 무한책임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 상황은, 반려동물 관련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너무나 쉽게 돈 주고 살 수 있는 반려동물 시장, 무책임한 인간의 태도, 동물 유기 관련 미흡한 처벌 규정, 펫보험의 필요성등등이 그것이다. 책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에서도 확인했는데 어찌된 게 늘 버리는 인간, 수습하는 인간은 따로 있는 건지... 작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실제 현장의 리얼한 상황을 다루어 읽기가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와 비슷한 느낌의 책 <서민의 개좋음>을 읽었다. 이 책은 페키니즈를 여섯 마리나 키우는 자칭 대한민국 1% 개아빠라는 기생충 박사 서민교수의 책이다. 페키니즈의 이름은 팬더, 미니미, 흑곰, 황곰, 오리, 은곰이다. 종은 같아도 당연히 외모와 성격은 제각각인 아이들이다.

 

 

서민 교수는 이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한다.

 

“제발 개 좀 버리지 맙시다!”

“아무나 개 키우면 안 됩니다!”

 

좀 강한 어투로 보이는 이 구호는 그의 유머러스한 문체 덕분에 그리 과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도 지극히 동의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개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책 제목을 보고 바로 사볼 것 같다. 유사 경험들을 읽으며 격하게 공감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즉 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안 읽을 책이다. 서민 교수는 이 책에서 자신이 기고한 칼럼에 달린 극혐 댓글들을 조목조목 반박하는데 나는 꽤 재미있게 고개 끄덕였지만 그가 지칭한 개혐들은 읽지 않을 것이므로 아쉽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서민과 여섯 마리의 일상 에서는 여섯 마리 페키니즈 자랑이다. 각 아이들의 장점과 단점 소개, 한 두 마리가 아닌 여섯 마리씩이나 키우게 된 이유와 아이들이 있어 행복한 일상을 소개한다.

2장 개 입양, 한 번 더 생각해 주시길 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를 너무 쉽게 데려와서 쉽게 버린다며 개를 키울 자격에 대해 말한다. 단호하게 돈 없으면 키우지 말라며!!

3장 개주인으로 산다는 것 에서는 개공원의 필요성 주장부터 개 관련 사고, 이웃들과의 관계, 알레르기 질환, 펫로스 증후군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4장 개 아픔, 그들만의 것일까? 에서는 우리나라 동물 보호법과 개공장의 실태, 품종견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다.

5장 개답게 사람답게! 의 부제는 사람과 개, 함께 살아가기이다. 중성화 수술과 펫보험, 개식용, 반려동물 등록제와 반려동물 관련 법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각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자신의 사례를 연결해서 이야기를 끌어내니 공감 백배였다. 특히 개를 밖에서 묶어두고 키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내 말이 그 말이라니까요!!”라고 외칠 뻔 했다.

 

나는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는 집사다. 6년 전, 반려동물 입양을 생각했을 때 고심 끝에 개보다는 고양이로 결정했다. 내가 집을 자주 비우는데 데려온 개를 하루 종일 집에 두고 산책도 자주 못시킨다면 개한테 못할 짓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다가 작년 봄, 주택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20년을 넘게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남편과 나는 당연히 마당에 개를 풀어서 키울거라고 생각했다. 이사온 후 이웃집들을 보니 집안에서 소형견을 키우는 집도 있고, 리트리버나 삽사리 종류를 마당에 두고 키우는 집도 있었다. 그런데 마당에서 줄에 묶인 채 지나가는 나를 보며 컹컹 짖는 개를 보니 무섭다기보다 가여웠다. 내가 너무 과한 생각인가 싶기도 했지만 여름엔 더위에, 겨울엔 추위에 노출되는 밖에 묶어두고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개를 데려오는 건 포기했다. 이사올 때 고양이 식구는 둘이었는데 올 6월에 한 마리를 더 데려와 세 마리가 되었다.

 

개를 키우려면 각오해야 할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서민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경제적 여력이다. 나는 경제력보다는 개를 외롭게 하는 것, 케어를 제대로 해주지 못했을 때 개가 받을 스트레스를 먼저 걱정했다. 그 부분 역시 자세히 나와 있는데 처음부터 아예 두 마리를 데려오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한다. 하나보다는 둘이 덜 외롭다는 것이다. 2장 “외롭냐, 개도 외롭다”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왕 개를 기르겠다면 두 마리로 시작하자. 개가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 다른 개를 데려오면 질투심 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사정상 두 마리가 안 된다면, 집에 있는 동안 개한테 최선을 다하자. 특히 나가기 전이나 귀가 후 산책을 시켜주는 게 도움이 된다. 개는 산책하면서 그간 느꼈던 스트레스를 확 풀고 주인에게 더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 산책이 힘들다면 진이 빠질 정도로 놀아주시라. 물론 시간이 없다고 하겠지만, 이 정도도 하지 않는다면 개를 키울 자격이 없다.‘혼자 둬서 미안해’라는 말만 하는 대신, 그 미안함을 상쇄할 행동을 하시라. 평소 우리는 세상의 여러 가지에 관심을 둔다. TV, 스마트폰, 인터넷 등등. 하지만 개의 관심은 오직 하나, 자기를 돌봐주는 주인이다. 마루에 개 여섯 마리가 있을 때 개들은 늘 아내나 내 쪽을 향해 있다. 둘 중 하나가 움직이면 개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따라간다. 오직 주인밖에 모르는 바보, 그게 바로 개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울 순 있어도, 이왕 기르기로 했다면 개들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하진 말아야지 않겠는가?”p.85

 

 

위 내용 다음 꼭지의 제목은 “개는 부자가 키워야 한다”로, 대놓고 말한다. 돈 없으면 개 키울 엄두를 내지 말라고! 개를 키우는데 드는 기본적 비용이 1044만원이 든다는 한겨레 신문의 보도를 인용했다. 이것은 병원비는 포함 안 된 금액으로 개 한 마리를 20년간 키웠을 때의 비용이라고 한다. 개공원 출입이나 여행비용도 미포함이다. 실제 사례로 중성화 수술 비용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았다가 20마리로 늘어나서 감당불능이 된 경우, 기백만원하는 수술비가 없어서 살아있는 개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린 경우도 있다. 서민교수 아내도 개 수술비용 때문에 결혼반지를 판 경험이 있다고 하니 생명에 대한 무한책임은 어쩌면 돈이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도 고양이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동물을 키우는데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지. 그나마 단모종 고양이라서 미용은 하지 않지만 사건사고가 꽤 많았다. 암컷은 중성화 수술후에도 발정이 나서 그 힘든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첫 수술후 이틀만에 배에 가스가 차서 죽는 줄 알았는데 일주일 입원시켜서 겨우 살렸다. 수술 및 치료비용은 따로였고 다른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치료입원비는 백만원이 훌쩍 넘었다. 이 아이는 또 폐가 약해서 폐렴에 한 번 걸린 후로 기침을 자주해서 뻑하면 병원행이다. 수컷은 아파트 10층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철심박는 수술을 했다. 고양이 키우면서 사료 먹이고 똥 치워주면 될 줄 알았는데 병원비 지출이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또 새로운 식구를 데려온 이유는 서민교수가 하나씩 식구를 늘여가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물론 남편은 세 마리로 충분하다고 하고 있지만...

 

개엄빠들이 팽팽 돌아가는 개의 꼬리를 보며 엔돌핀이 생성되듯, 냥집사들은 고양이의 골골송을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여기며 꼭 껴안고 감상한다. 그럴 땐 평화모드 그 자체이다.

 

이렇게 병원비가 너무 부담스러우니 서민교수는 펫보험 의무화를 주장하며 정부가 할 일을 이야기한다. 모든 견주가 개를 위해 최소한 하나 이상의 펫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제도를 시행하자는 것이다. 강제적으로라도 보험에 들었다면 치료비의 30%정도만 내면 될테니 아프다고 유기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란 말이다. 펫보험 의무화는 개를 키우려는 이들에게 진입장벽이 되는 또다른 장점이 있다. 사람 건강보험료 내기도 바쁜데 개를 위한 의료보험을 들기 힘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개를 키우기 어렵게 된다. 이것은 자격있는 사람만 개를 키우도록 하자는 것인데 사실상 그의 희망사항이다.

 

외국에서도 모든 반려동물이 다 가입하는 의무보험은 없다. 가장 높다고 하는 스웨덴도 40%에 불과하고 영국이 20%, 독일이 15%정도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가입률 0.02%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높다. 이 수치만 봐도 우리나라의 펫보험 의무화는 꿈같은 얘기다. 

 

 

앞에서 소개한 내용 외에도 이 책에는 개를 키우며 겪는 애환과 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등도 실려 있는데 리뷰에서 모두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깝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의 일부를 인용하며 마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개들에게 잘하려 하는 건, 팬더를 위시해서 내 곁에 있는 개들이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날 때 적어도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면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기꺼이 이런 일을 감당하는 것은 개에 대한 어마어마한 사랑이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를 키우는 이들이 다 나만큼 개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이들은 시련이 다가오면 기꺼이 개를 버린다. 서론에서 <서민의 개좋음>을 쓴 이유가 개를 진정으로 좋아하고 끝까지 책임질 사람만 개를 키우게 하자는 데 있다고 했다. 이 책을 읽고 개를 입양하려던 생각을 포기하는 이가 몇 분이라도 있다면 책을 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나만 안 키우면 돼’라고 생각하지 말고, 주위에서 개를 충동적으로 입양하려는 이가 있다면 좀 말려주시면 고맙겠다. 말로 설득이 안 된다면 이 책을 읽혀 주시라. 개를 사랑하는 이들만 개를 키우고, 버려지는 개가 한 마리도 없으며, 개를 먹는 것이 야만으로 인식되는 좋은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말이다.“p32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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