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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제9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서철원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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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경강 노을은 붉고 선명했다. 주먹밥으로 허기를 달랜 뒤 긴 밤을 지났다. 불을 피운 자리에 새순 같은 바람이 불어 다녔고, 모두의 눈빛은 별만큼이나 또렷했다.
- 저녁은 서둘러 밀려왔다. 구름 걷힌 겨울밤 달빛은 낮고 조용했다. 존현각 뜨락을 비출 때 달빛을 머금은 보풀이 박석 위로 떠올랐다. 보풀 속에 해금 소리가 들려왔다. 장악원 담장을 넘어온 선율은 맑고 청아했다.
- 해가 기울었다. 먼 능선에서 새들이 날아올랐다. 새 울음을 깔고 세상은 어둑어둑 먹물로 채워졌다. 바람부는 대숲을 빠져나와 박해무는 오래 걸었다. 어둠이 출렁거리며 밀려왔다.
- 며칠 사이 능선은 파랗게 물들었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은 조밀하고 차분해 보였다. 산자락마다 초록 물결이 넘실거렸고, 산맥을 타고 넘어온 초여름 색채는 물빛에 가까웠다.
- 초저녁 새들이 높지 않은 곳에서 재재거렸다. 해 진 뒤 산마다 숨겨둔 늑골을 헤집고 새들은 날아올랐다. 새들이 능선에 둥근 무늬를 그려놓곤 별무리 속을 헤엄쳐갔다.
- 존현각 하늘 위로 별들이 소리 없이 지났다. 별들은 달을 중심으로 도는 듯이 보였다. 달빛 내린 앞뜰은 빛과 소리가 흔했다. 소리 속에 빛이 와글거렸고, 빛이 내린 자리마다 소리가 들끓었다.
서철원의 장편소설 <최후의 만찬>에서 시작하는 문단으로 사용된 것들 중 마치 영상처럼 확연히 보이고 잘 들리는 것을 골라봤다. 작가는 챕터의 첫 문장을 대부분 짧게 시작한다. 묘사보다는 시각과 청각적 서술이 주가 되고 동사로 술어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그림같다는 표현보다 영상같다고 한 것이다. 김훈의 단문과 서술이 얼핏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작가만의 스타일도 분명 있다.
작가는 “혼불문학상” 처음 제정된 이후로 5번이나 이 상에 응모했고 기어이 올해 <최후의 만찬>으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작가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의 글을 통해 글의 원리나 문장을 많이 배웠다고 한다. <혼불>을 아직 읽어보지 못해서 비교하지는 못하지만 서작가의 문체가 최명희 작가와 비슷한 면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혼불>을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선 대하소설이라 시작할 엄두도 못내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나는 소설을 쓰지는 않지만 작가처럼 생동감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은 있다. <혼불>을 읽고 문장공부를 해야할까...
다시 <최후의 만찬>으로 돌아가보자. 책 제목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과 같고 표지에도 그 그림을 사용했다. 역사소설이라고 했는데 다빈치의 그림이 우리나라와 어떤 시대, 어떤 사건과 연결을 지어놓았을지 궁금했다. 읽다보니 유려한 문장이 눈에 들어와서 그의 문장으로 리뷰를 시작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정조시대, 천주교가 서학이란 이름으로 민간에 널리 퍼질 때 천주교인들을 박해했던 상황들을 주로 다룬다. 처음은 신해박해로 시작한다. 조선 최초로 가톨릭을 박해한 사건으로 윤지충과 권상연이 첫 순교자가 된다. 소설에서는 그들이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모사본을 가지고 있어 처형당하게 되고 그 그림이 정조의 손에 들어간다. 정조는 김홍도에게 그 그림에 대해 알아보도록 시키고 로마에까지 다녀온 김홍도는, 그곳에서 세종시대 과학자 장영실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뒤쪽, 그러니까 중앙에 있는 예수의 뒤쪽에 보이는 산이 인왕산이라는 것이다.
앗, 잠깐 여기서 너무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진 말자!
이건 소설이잖은가...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워하자!
1400년대를 살았던 장영실이 로마까지 가서 다빈치랑 협업을 했다는 상상력!
대단하다!!
그리고 그 둘의 공통점을 연결한 것까지.
이 책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정조, 정약용을 위시하여 당시 북학파들, 화가 김홍도등 실제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이 혼재되어 스토리를 이어간다. 가상의 인물인 도향과 정약용의 러브라인은 자못 진지하여 ‘아니, 우리의 다산선생이?’이런 생각이 잠시 스쳤다.
허나 워워~~
이건 소설이잖은가...
소설적 재미라고 생각해 두자!
그래도 다산선생의 베드신은 참 거시기했다.
그보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압권이었다. 아무리 화성을 건축하신 우리의 다산선생이지만 1700년대(1800년대 다 돼가는 1700년대 후반)에 오늘날 카메라의 원형인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하시고 게다가 촬영, 인화까지 하시다니!!
넘나 놀랐지만 어쩌겠는가?
이건 소설이잖은가...
마지막엔 환타지 장면이 가미되는데, 그림 최후의 만찬과 유사한 느낌으로 인물들이 정렬해서 서게 된다. 중앙에 정조 임금, 좌측에 실학자들, 우측에 천주교 박해로 산화한 가상의 인물들이다. 그 장면을 우리의 다산선생이 찍는다.
여기까지 리뷰를 읽었다면 고개 갸웃거리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정조시대, 천주교 박해를 주 사건으로 하여 실존인물과 가상인물들이 세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가 큰 줄거리인 건 알겠는데, 이 소설의 주제는?
이 리뷰만으론 당최 알 수가 없는데??라고 생각할 줄 안다.
나도 그랬다. 책을 다 읽었는데 주제를 잘 모르겠는 거다. 이것이 주제를 암시하는 문장인가?싶은 것들을 찾느라 책갈피 표시해둔 것들을 다시 훑었다. 그래서 나온 성과가 이 글의 모두에 나온 인용문장들이다.
그렇다. 그것은 수확이고, 주제는 못 찾은거다.ㅠㅠ
나 독해력 딸리냐? 나 그렇게 바보는 아닌데...
그래서 심사평을 읽었다.
얏호~~~했다.
심사위원도 나랑 비슷했다는 거!!
특이하게도 리뷰에 심사평을 인용하며 나를 쉴드치려 한다.
도대체 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신해박해라는 천주교의 순교......? 변화하는 시대, 지나간 시간 속에 잃어버렸던 대동 사회의 꿈......? 정약용과 도향 두 천재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달콤한 로맨스......? 아니면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발생하는 실존적인 갈등......? 어쩌면 그 모든 것이거나 그 모두가 아니거나 일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말하고 독자가 대답해야 할 문제로서 심사위원들 영역이 아니다. 다만 우리 문학에서 오래간만에 만나는 품격 높은 새로운 역사소설이 탄생했다는 사실에 모두 주목했다. 이 작가가 오랜 절차탁마를 거친, 깊은 내공의 소유자라는 것은 이런 고도로 절제된 시적 문장에서도 잘 드러난다.
(중략) 이 작가의 감성은 무지갯살처럼 아름답다. 난해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문장은 시적이고 환상적이다. 같은 작가로서 시샘이 날 정도이다.
휴... 얼마나 다행이게요~~^^ 그 짱짱한 심사위원들도 잘 모르겠다는 주제의식을 일개 독자인 내가 아는게 더 이상한 거~~
단, 좀 걸리는 것은 위에 줄친 부분!
흠... 이거 너무 책임 회피인 듯... 주제파악은 심사위원이 할 일이 아니고, 품격높은 역사소설의 탄생은 알렸으니 나머지는 알아서들 하세요! 라니...
그래서 나는 또 작가의 뉴스 기사를 검색했다.(아, 저 꽤 집요하다고요? 꼭 그렇진 않아요~~ 단지 리뷰를 쓰는데 주제를 언급하지 못하고 글을 마무리한다는 건 마치 변을 보고 뒤를 처리하지 않아 변이 발생할 수 있으니 그걸 막으려는 것일뿐~)
오호~ 찾았다.
뉴스원 10월 8일자 기사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시대의 자유, 평등이 이 시대에도 유효한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후의 만찬>의 배경인 예수의 시대와 조선에서 천주교가 탄압된 시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 말했다. 작가는 지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며,
“정치적 내용을 떠나 소설을 쓰며 든 마음이 국민 대다수가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었다. 이 소설에 울분이 많이 들어있고, 소설 속 억압받는 인물들의 삶이 저와 다르지 않다.”
고 했다.
흠...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던 조선후기 민중들과 민본사상으로 통치하겠다던 정조와 그 주역이라할 수 있는 정약용을 포함한 기득권 집단간의 괴리감. 이 구도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한다. 그 갈등을 대화로 풀어내기에는 그 시대가, 당시의 통치세력의 역량이 부족했다. 종교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기보다 당시 민중들이 꿈꾸던 자유와 평등사상에 더 방점을 두고 읽으면 조금은 쉽게 다가올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은 읽기가 그리 녹록치 않다. 나 같은 경우, 앞에도 밝혔지만 너무 잘 아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간의 지어낸 이야기에 몰입이 잘 안되었다. 왜냐하면 역사적 인물이다보니 내가 아는 지식한도 내에서 자꾸 비교 검증하려는 심리가 불뚝불뚝 솟아나서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반부 즈음부터는 해탈해지기로 꿋꿋이 마음을 먹고 작전을 바꿨다. 아름다운 문장 찾기에 몰두하면 방해공작에서 좀 벗어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많이 건져서 글 서두에 써먹었다!! 심사평에서 심사위원이 고른 문장은 옮겨적지 않았다. 내가 고른 문장(마치 동영상 같은)이 따로 있어서 그 문장을 끝으로 이 리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부디 이 책이 난해하다고 중도포기하지 말길 바란다. 끝까지 읽어내면 분명 어떤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퀘스트를 깼을 때 레벨업 되거나 양질의 아이템을 득템하게 될 것임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변음이 울릴 때 도몽의 칼은 하얀 꽃잎이 되는 것 같았다. 김순의 칼에서 젖은 물기가 보였다. 김혁수의 칼 속으로 마른 바람이 불어갔다. 배손학의 칼에서 『시경』은 보이지 않았다. 이하임의 칼에서 살수는 사라져 있었다. 박해무의 비선무 위로 세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자의 눈과 임금의 눈은 몹시 닮아 있었다. 저마다 칼은 다른 세계에 갓 피어난 꽃잎 같았다. 시간이 멎어 있었고, 오래전 세자 이선이 꾸었던 꿈속 같았다. 칼날 위에 꽃잎이 내렸다. 곷잎 위로 칼이 지나갔다. 꽃잎은 칼에 닿으면서 형체를 지웠다. 찡- 변음과 함께 수천수만 마리 검은 나비 떼가 카메라 옵스큐라 안으로 날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