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수업 -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
문광훈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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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북대 독문학과 문광훈 교수의 새 책 <미학 수업>이 흐름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부제 "품격있는 삶을 위한 예술 강의"라는 문구처럼 이 책은 다양한 예술 작품을 소재로 강의하듯 쓰여 있다. 총 46강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미술, 음악, 문학, 철학작품을 매개로 저자의 예술론과 삶에 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졸업한 지 오래 되어 더 이상 가볼 수 없는 그 곳, 대학 강의실에 앉아 교수님의 미학 강의를 듣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예술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반가운 마음으로 선뜻 집어들 만한 책이다. 46강 중에 미술 작품을 가장 많이 다루었다. 그래서 미술, 그 중 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길만하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은 프리드리히의 <바닷가의 수도사>이다. 제목과 부제가 씌어진 겉표지 안쪽으로 보여지는 그림은 신비로운 푸른빛으로 액자에 걸린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표지 맨 위엔 사선으로 된 띠지까지 둘러서 고급스러워 보이기는한데 액자의 역할을 하는 겉표지가 찢어질 수가 있어 조금 아쉽다. 책을 아껴보는 독자라면 띠지와 겉표지를 분리해 두고 읽기를 권유한다.

저자의 예술에 대한 사상을 맛볼 수 있는 본문 내용을 몇 가지 인용해 본다.

 

p.98 예술은 어떤 공간을 드러내 보인다. 그것은 드러난 것이면서 드러나지 않으며,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암시한다.

p.184 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기존과는 다른 세계와 만난다는 것이고, 이 세계의 다른 인물과 생애를 일정한 거리 속에서 전체적으로 대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전망 좋은 방에 들어서는 일과 같다. 이 방에서 우리는 더 많은 자유와 열정과 개방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p.206 음악의 즐거움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관심과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의외로 시작은 쉽다. 하루를 마감할 무렵, 쇼팽의 <야상곡>을 듣거나,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 앉을 때 바흐의 <인벤션과 신포니아>를 들어보자. 누구의, 어떤 단체의 연주라도 좋다. 살아 있는 오늘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p.282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처럼 예술의 방식은 작고 미세하지만 강력한 대응방법이다. 감각과 경험의 바닥에서 일어나는 미시적 반성 활동이다.

p.302 그건 내 스스로 결정하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며, 이 행동에의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행위다. 즐거움은 이런 자발적 여지에서 온다. 이 여지가 얼마나 큰가에 따라 행복의 밀도도 결정될 것이다.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유와 책임만큼 유쾌하고도 진지한 일은 달리 없을 것이다. 인문학은 자기형성의 진지한 놀이다.

 

 

 예술을 향유한다는 것은 기실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며 그것은 누군가의 지시나 해야할 숙제가 아닌 자율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런 자유로움이 예술의 정신과 맞닿아있다 할 것이다.

책에서 다룬 미술 작품과 그 설명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보았다.

LESSON 7에서 발둥의 <삶의 세 시기와 죽음>을 소개하고 있다.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이 그림의 1896년 목록에는 '노파는 악덕이고, 처녀는 허영심이며, 아이는 사랑이다'라고 되어 있고, 1938년 목록에는 '덧없음의 알레고리'라고 적혀 있으며, 그 뒤 20년 후의 목록에는 '여자의 세 삶의 시기와 죽음, 모든 지상적인 것의 헛됨에 대한 알레고리' 라고 되어있다고 한다. 이 한 폭의 그림 안에 사람의 생애 변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은 인간의 현재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자신의 지금 모습만을 탐닉하고 있는 젊은 여성을 보면 한치 앞으로 다가온 죽음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귀족 신사가 1년 동안 튼튼하게 신을 구두를 주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맞닥뜨릴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지 못했듯이.

 

LESSON 10에서 소개한 '마네'의 <폴리-베르제르>는 1860년대 파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집 안의 풍경이다.

 

북적이는 술집에는 흥겨움이 있지만 화면 중앙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서있는 여자의 표정에는 고단함이 묻어난다. 배경의 화려함과는 달리 그녀는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사는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도심속 화려함을 누리며 허무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그 속에서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이도 있다. 마네의 생애와 작품 설명, 그리고 현재에도 유효한 인간의 삶과 연결한 부분이 좋았다. 이 작품은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단조로운 배경 속이지만 익명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고독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LESSON 40에서는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로 의심과 믿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3일 만에 부활하여 나타났을 때의 장면이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는 직접 만져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본 후 의심을 버리라고 말했다 한다. 카라바조는 그 장면을 저렇게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신성모독과도 같은 저 행위는 인간의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인간은 의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의심하는 정신과 더불어 의심 자체를 의심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 정확히 알기 위해 의심하는 정신이 있어야 하고, 참으로 믿기 위해 이 의심을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우리는 의심 많은 도마처럼 되거나 그 뒤에 선 사람들이 되거나, 아니면 지식/이성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처럼 여기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의심하는 정신은 비판적 사고라 할 수 있다. 미디어의 홍수속에 빠져 익사하지 않으려면 비판적 사고는 필수일 것이다.

그림 설명에 본문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놓은 무성의한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은 각 그림 아래 설명이 본문 내용과 중복되지 않아서 좋았다.

처음에도 언급했다시피 예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좋아라 할 만한 책이기는 하지만 별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서문을 꼼꼼히 읽으면 좋겠다. 미학을 왜 공부하는지에 대한 다섯가지 답을 읽으며 숨어있는 자신의 미적 감각을 일깨울 수 있을지도 모르니...

이런 책은 한 번에, 단숨에 읽지 않아도 된다. 목차를 보고 꽂히는 제목의 페이지를 펼치거나 스르륵 넘기다 눈에 띄는 그림이 있으면 그 페이지에 머물러도 좋다. 꼭 설명을 읽지 않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시도해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방에 앉아 이 책을 펼쳤는데 대학강의실로~ 미술관으로~ 공간이동 시켜줄 것이다. 마치 교양강의 한 강 듣듯, 미술관에 걸린 그림 한 점 감상하듯이.

마지막으로 저자가 말한 교양에 대한 내용에 동감하여 인용해 본다.

교양은 손쉽게 그리고 단시간에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요약판을 암기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수련과 훈련속에 쌓이고 획득된다. 그리하여 형성 과정이 곧 교양 과정이고, 삶의 과정이 된다.

......

단순히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영화를 보는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묻고 보고 답변하며 또다시 탐구하는 절차 속에서 조금씩 체화된다. 교양은 수동적 주입이 아니라 적극적 형성의 과정인 것이다.

 

교양이란 것, 예술을 즐긴다는 것!

그리 어렵지 않다!!

관심있는 분야의 작품을 스스로 찾아보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속에 이 책이 있다면 더욱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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