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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메이커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소소의책 / 2026년 1월
평점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실제 독서 후 남기는 서평입니다
요즘 책 고르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신작 글래스메이커를 보게 되었는데, 제목부터 왠지 반짝거리는 느낌이라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습니다. 예전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믿고 집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역시나 시대와 소재 선택이 쉽지 않은데도, 작가님은 늘 그 어려운 걸 해내시는 분인 것 같아요.

이번 이야기는 베네치아 근처 무라노섬의 유리 세공사들을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유리라는 재료가 이렇게까지 감정적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묘사가 섬세했습니다.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뜨겁고 위험한 재료라는 점이 인물들의 삶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읽다 보니 유리 공방의 열기와 냄새까지 상상하게 되는 걸 보니, 확실히 작가의 필력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설정은 시간의 흐름이었습니다. 15세기 후반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데, 주인공 오르솔라는 세월에 비해 아주 천천히 늙어갑니다. 무라노의 시간은 바깥세상과 다르게 흐른다는 설정 덕분에, 역사책에서나 보던 사건들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계속 지켜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같이 그 자리에 오래 머무른 기분이 들어서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던 것 같아요.
이야기 속 무라노 사회는 여성에게 꽤나 가혹한 공간이었는데, 불 근처에 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음이 조금 무거워졌습니다. 시대와 지역이 달라도 비슷한 억압이 반복된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오르솔라가 자신의 길을 놓지 않는 모습은 조용하지만 단단해서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안토니오라는 인물도 기억에 남습니다. 유리 장인 집안 출신이 아닌 외부인이라서인지, 오히려 기존 질서에 덜 얽매이고 새로운 시선을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통과 명성에 집착하던 인물들과 대비되면서, 유리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졌던 것 같습니다.
술잔, 구슬, 돌고래라는 상징들도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특히 오르솔라가 만드는 작은 구슬들이 세계로 퍼져나가며 생계를 지탱한다는 설정은, 화려함보다 지속되는 힘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것들이 결국 오래 남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지막에 현대의 베네치아를 마주하는 장면은 읽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대량 생산과 관광 상품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의 손으로 숨을 불어넣는 예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베네치아에 가게 된다면, 무라노섬의 유리 가게를 그냥 지나치진 못할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고 나니, 그곳의 유리가 전보다 조금은 다르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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