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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헌터 - 백터와 배키의 오싹한 바이러스 일지
분홍돌고래 지음, 윤영철 그림, 이재갑 감수 / 토리아트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실제 독서 후 남기는 서평입니다
요즘 아이 키우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손 씻어라, 양치해라, 얼굴 좀 닦아라 같은 말들이 거의 배경음악처럼 집 안에 흐르는데요.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말만 해서 과연 바뀌긴 할까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습니다. 잔소리를 하고 나면 저도 지치고, 아이 표정도 점점 굳어가는 걸 보면서 이게 맞는 방법인가 싶은 현타가 오더라고요.
그러다 제제의 숲에서 나온 「바이러스 헌터」라는 책을 보게 됐는데, 처음엔 그냥 또 하나의 어린이 과학책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생각보다 느낌이 많이 달랐습니다. 이 책이야말로 위생 습관 때문에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하나의 힌트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내거나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이유를 이해하게 만드는 쪽에 더 가까운 책인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면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아야 움직인다는 걸 요즘 들어 더 실감합니다. 이유 없이 시키면 반발부터 하는데, 이 책은 그 ‘왜’를 차분하게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바이러스를 무조건 무섭게만 설명하지 않고, 마치 관찰 대상처럼 하나하나 소개해 주니까 아이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건드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아이도 책을 펼치자마자 꽤 집중해서 보더라고요.
구성도 꽤 흥미로운 편이었습니다. 바이러스마다 이름의 뜻, 생김새, 특징이 정리돼 있어서 도감이나 카드 모으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글만 가득한 책이 아니라 그림과 설명이 함께 있어서 부담 없이 넘길 수 있었던 점도 좋았습니다. 감염 경로나 증상을 설명할 때도 “이 바이러스가 몸에서 이런 장난을 친다”는 식으로 표현해서 아이가 이해하기 쉬워 보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감기의 원인이 되는 리노바이러스 이야기였습니다. 리노가 코를 뜻한다는 설명을 보면서, 왜 손을 통해 코로 바이러스가 들어오는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더라고요. 그걸 본 아이가 “그래서 손 씻는 거구나”라고 말하는 순간, 잔소리보다 설명이 훨씬 강력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래서 책 한 권이 말 백 마디를 이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도 아이 눈높이에 맞게 잘 풀어낸 느낌이었습니다. 저희 아이도 어린 시절 마스크 쓰고 지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지, 그림을 보며 이것저것 묻더라고요. 왜 마스크를 써야 했는지, 왜 기침 예절이 중요한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노로바이러스나 홍역 이야기를 통해 음식 위생이나 백신의 의미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점도 좋았습니다. 주사가 무서운 아이들에게 백신을 몸속 군대 훈련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은 저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렇게 설명해 주면 병원이 덜 무서워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놀라웠던 건 아이의 변화였습니다. 시키지 않아도 화장실 다녀오면 손부터 씻고, 양치도 전보다 꼼꼼히 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완벽하다고 하긴 어렵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시작점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이러스 헌터」는 무서움을 주는 책이라기보다 이해를 돕는 책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위생 습관 때문에 매일 전쟁을 치르는 집이라면, 한 번쯤 조용히 아이 손에 쥐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잔소리 대신 이야기로 설득하고 싶은 부모님들께 꽤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