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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쳐도 괜찮아 -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전하는 '우울 졸업'과 행복한 은둔 생활
가토 다카히로 지음, 최태영 옮김 / 군자출판사(교재) / 2025년 6월
평점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실제 독서 후 남기는 서평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는 유독 ‘삶이 버겁다’는 목소리가 자주 들려옵니다. OECD 통계를 들여다보면 자살률은 상위권, 국민 행복지수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어디나 사는 게 힘들지"라며 넘기려 하지만, 수치가 말해주는 현실은 꽤 냉혹합니다. 그렇다면 왜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버티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지고, 무너지면 나약한 것으로 간주되는 걸까요?
심리학, 사회학, 정신의학 관련 도서를 꾸준히 접해온 가운데, 최근 읽은 가토 다카히로의 『도망쳐도 괜찮아』는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준 작품이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도망치는 행위’에 대해 지금껏 우리가 가져온 부정적인 시선을 근본부터 재고하게 만듭니다. 단지 회피나 무기력함이 아닌, 본능적인 자기보호의 반응으로서 ‘도망’을 바라봐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유독 ‘참고 견디는 것’이 미덕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 사회 전반에 걸쳐 인내, 성실, 책임감을 강조하는 문화적 프레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도망치는 선택을 약함이나 패배로 치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고스란히 조직문화에 반영되어, 부당한 권위 앞에서도 침묵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다 끝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이런 현상은 반복되고 있으며, 저자는 이를 하나의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진단합니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자가 도망을 ‘심리적 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생존 반응’이라고 규정한 점입니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랍스터의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랍스터는 위협을 감지하면 그대로 죽음을 맞기보다는 몸을 숨기고 빠져나가려는 반응을 보이는데, 이는 본능적으로 ‘살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인간에게도 이러한 본능은 존재하지만, 사회적 가치관이 이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죠.
가토 다카히로는 “왜 우리는 도망치면 안 된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답을 교육방식, 사회 구조, 주변의 시선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분석합니다. 특히 타인의 평가를 과도하게 의식하도록 길들여진 우리가 ‘참아야 한다’, ‘다들 견디는데 나만 힘든가’라는 메시지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꼬집습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자신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마침내 붕괴 직전까지 몰리는 현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정신적 회복력과 감정 관리 능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 역량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새 ‘버티기’라는 말 아래에서 자신을 소모하고, 미래의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고통을 당연시하고 있진 않은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이 책은 단지 ‘도망쳐도 괜찮다’는 위로를 넘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도망, 그 ‘용기 있는 선택’을 정당화해줍니다.
『도망쳐도 괜찮아』는 단순한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무너진 사람을 위한 응급 처방서이며, ‘살아남기 위해선 버틸 필요가 없다’는 근본적 시각 전환을 요구하는 사회심리학적 텍스트입니다. 삶의 한복판에서 방향을 잃은 이들, 견디는 데 지친 이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가능성과 회복의 언어를 건넵니다. 마음이 지쳐있는 분이라면, 이 책에서 작지만 깊은 위로와 실천적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권유를 드립니다. 지금의 나를 위해, 한 번쯤은 읽어보셔야 할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