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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의 거리 - 세계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뉴욕 억만장자 거리에 숨겨진 이야기
캐서린 클라크 지음, 이윤정 옮김 / 잇담북스 / 2025년 6월
평점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아 독서 후 남기는 리얼 서평입니다
부동산은 결코 고정된 자산이 아닙니다. 한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적 흐름에 따라 그 가치와 역할이 끊임없이 재편되며, 때론 도시의 성장 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론 몰락의 상징이 되기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세계 최강국으로 손꼽히는 미국, 그리고 그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의 부동산 역사를 따라가 본다는 것은 단순한 지역의 스토리를 넘어서, 세계 자본주의의 흐름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됩니다. 저는 바로 이 관점에서 *《억만장자의 거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도시의 진화'와 '자본의 세계화'라는 두 축을 바탕으로, 맨해튼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어떻게 전 세계 초부유층의 자산 도피처로 변모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단순히 스카이라인을 가득 채운 고층빌딩의 연대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깔린 인간의 탐욕, 정책의 방향성, 그리고 도시 구조의 변화 과정을 입체적으로 해석해 줍니다. 읽는 내내 저는 서울이라는 또 하나의 과밀화된 도시의 미래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었고, 도시가 수용 가능한 부의 밀도란 과연 어디까지일까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뉴욕 중심가 57번가와 5번 애비뉴가 만나는 '궁전의 모퉁이'에서 시작되는 초고가 주거지 탄생의 서사였습니다. 올림픽 타워라는 상징적 프로젝트가 첫 신호탄이 되었고, 이 건축물을 주도한 이는 다름 아닌 그리스의 해운 재벌,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였습니다. 그는 이 고급 콘도를 통해 외국인 자본을 뉴욕 부동산 시장에 대거 유입시켰으며, 이는 훗날 트럼프 가문이 주도한 고급 부동산 붐의 전조로 작용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외국 자본이 도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 사례가, 현재 서울의 주요 재개발 구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투자 확대 흐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뉴욕의 과거를 서울이 시간차를 두고 되풀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책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다룹니다.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흔들리던 그 시기, 자본은 신뢰할 수 있는 실물 자산을 찾아 움직였고, 뉴욕은 그들의 ‘안전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 신뢰는 단기간에 구축된 것이 아니며,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도시 인프라, 정치적 안정성, 문화적 상징성의 총합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자본은 결국 ‘스토리’를 따르고, 뉴욕은 그 누구보다 강력한 내러티브를 가진 도시였던 거죠.
하지만 모든 상승에는 그림자가 뒤따르듯, 무분별한 개발과 과잉 공급이 결국 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립니다. 수많은 초고층 콘도가 들어섰고, 이들 중 일부는 수요 부족과 관리 비용 증가, 그리고 공실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기대와는 달리 가격 상승은 제한적이었으며, 투자자들은 수익 대신 리스크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 결과, 여러 프로젝트는 자금 유동성 문제로 중단되거나, 법적 분쟁으로 번지며 건설이 지연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냉소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산시장의 조정 이후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하며, 혁신은 늘 기존의 자본이 집중된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다시 피어난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이는 단순한 순환이 아닌, 경제·사회적 구조의 반복된 진화 과정이라는 점에서 깊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