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경제학 - 시장을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힘
노영우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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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후 실제 독서 후 남기는 서평입니다


부모 세대가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함께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비슷한 삶의 궤도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고단했던 만큼 그 고단함은 공통된 감정이었고, 그러한 동일성은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유대를 낳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구 하나 특별히 뒤처지거나 앞서 있다는 감각 없이 모두가 ‘함께’ 버티고 있다는 확신 덕분이었죠.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는 그와는 전혀 다른 풍경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중산층에 속한 이들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가치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정작 현실은 이념과 동떨어진 양상을 보입니다. 성장 배경부터 자산 규모, 교육 기회에 이르기까지 출발선 자체가 극명하게 나뉘며, 비교할 수 없는 조건의 사람들과 동일한 경주에 나서야 한다는 압박은 일종의 구조적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불안의 근원을 치밀하게 들여다봅니다. 단순히 중산층이라는 하나의 계급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곧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정서와 세계관을 설명하는 핵심어라는 인식을 제시합니다. 책장을 넘기며 가장 깊이 공감했던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중산층’은 더 이상 단순한 소득 구간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현재 좌표를 가장 정교하게 설명해주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요.


이 책은 총 6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서로 독립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한국 사회의 흐름에 맞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서울올림픽 이후 탄생한 중산층의 태동, 자영업과 부동산을 중심으로 재편된 경제 구조, 그리고 이 계층이 만들어낸 평등주의적 시민 감각 등은 사회사적 흐름과 맞물려 면밀히 분석됩니다.

또한 ‘욕망’, ‘회색’, ‘공정’, ‘지대’ 등 여러 개념을 통해 중산층의 정치·경제적 성향을 해부하며,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글로벌 경제 변수 속에서 중산층이 취해야 할 전략적 태도를 안내합니다. 투자와 환율, 노후 준비 등 현실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꽤나 실용적으로 정리되어 있어 단순한 이론서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마지막 장에서는 인공지능,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인구 감소 등의 구조적 변화가 중산층의 존속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합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중산층의 욕망’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대체로 합리성을 중시하고, 정치적으로도 극단보다는 중도를 선호하는 이들이 왜 결정적 순간에 정치판을 좌우하는 세력으로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회색지대의 선택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움직이는지를 이 책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회색 중산층의 마음’을 읽어낸 점을 지목한 대목은 정치와 경제가 결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파트는 후반부, 거시경제의 흐름과 투자 전략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중산층은 본능적으로 ‘정보’를 신뢰하지만, 이미 대중에 퍼진 정보는 때때로 시장에서는 무의미하거나 늦은 판단일 수 있다는 경고는 날카로웠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는 감각, 금리와 환율에 대한 기본적인 해석력, 정보의 진위를 가리는 통찰력 등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생존 조건임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강조합니다. 단순한 재테크 팁이 아닌, 장기적인 경제 감수성과 문해력(financial literacy)을 요청하는 그 지점이야말로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매일같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바쁜 이들에게, 책 한 권을 집어 들기조차 쉽지 않은 현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이 책은 존재합니다. 정보 과잉의 시대, 거짓과 왜곡이 뒤섞인 세계 속에서 스스로의 균형을 지키고 싶다면, 결국 텍스트와 통찰로 싸워야 합니다. 이 책은 그 싸움에서 확실한 무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자신 있게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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