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실제 독서 후 남기는 서평입니다


최근 5년간 읽었던 수많은 문학 작품들 가운데, 단연코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 책 한 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이 작품을 이야기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바로 미치 앨봄의 『살로니카의 아이들』입니다.

평소 전쟁을 소재로 한 서사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저에게 이 소설은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는 수준을 넘어, ‘진실’이라는 개념을 철학적으로 천착하며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이야기 결을 선보였습니다. 전쟁의 외형적 잔혹성뿐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 작품은 기존의 전쟁 문학과는 분명히 다른 방향성을 지닌 서사였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작품이 채택한 독특한 화자 설정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소설이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의 시선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끌어가는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진실(Truth)’이라는 존재가 직접 서술자로 등장합니다. 그것도 인간이 아닌, 신에 의해 인간의 창조에 의문을 품었다가 지상으로 추방당한 천사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이 설정 자체가 이미 이 작품이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라 존재론적 탐구를 담은 철학적 우화임을 암시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 축을 이루는 인물은 ‘니코’라는 유대인 소년입니다. 그는 그리스 북부의 작은 항구 도시, 테살로니키에서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가던 중, 나치의 유대인 탄압이 그들의 삶을 무참히 침범하게 됩니다. 독일이나 폴란드 등 북부 유럽의 학살 사건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와 같은 남유럽 지역에서도 동일한 비극이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개인적으로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더군다나 지역 주민들이 대다수 순응적으로 침묵하거나, 헝가리에서는 아예 파시스트 조직이 적극적으로 학살에 협조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인간 사회의 취약성과 도덕적 붕괴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극중에서 악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인 나치 장교 ‘우도 그라프’는 전형적인 악당으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저지르는 행동에 스스로 확신을 갖고 철학적으로 정당화를 시도하는 인물로, 단순한 폭력성과 권위주의를 넘는 차원의 복합성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특히 그가 정직한 성품의 소년 니코에게 접근해, 눈처럼 순수한 아이를 거짓과 조작으로 유대인 공동체를 배신하게 만드는 장면은, 인간 본성이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습니다.


니코는 결국 자신의 실수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이 학살의 열차에 태워진 사실을 깨닫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들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기차를 쫓아 철로를 전력질주하다가 넘어지는 장면은 말 그대로 절규에 가까웠고, 이후 신분을 숨기고 여러 국경을 넘나들며 언어를 익히고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며 아우슈비츠로 향하는 그의 여정은 하나의 장대한 서사로 완성됩니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그의 행보는 단순한 탈출기나 복수극이 아닌, 존재의 진실을 향한 처절한 도전 그 자체였습니다.

작품 속 모든 인물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전쟁의 흔적을 안고 살아갑니다. 세바스티안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지우려 애쓰지만, 결국 기억은 그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전쟁 범죄자를 추적하며 복수를 꾀하지만, 반대로 파니는 과거를 묻고 현재를 살아가길 원하며 둘 사이의 간극은 점점 깊어져 갑니다. 그리고 니코는 자신이 겪은 비극을 잊기 위해 ‘거짓’을 진실인 양 포장하고 살아가는 인물이 되어버립니다. 마치 병적 수준의 허위 현실에 빠진 채로요. 그는 결국 자신도 속이며 존재의 진실을 회피하는 괴물로 점차 변해갑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진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진실은 때때로 외면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잔혹하지만, 그것을 외면한 채 살아가는 삶이 과연 인간다운 삶일 수 있는가? 작품은 마지막까지 독자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진실과 마주하는 일은 상처를 동반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인간은 진정한 성숙에 이른다고요. 그리고 그 용기 있는 직면만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경로일지도 모른다고요.

어쩌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진실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만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가 결국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은 곧 내면의 평화를 찾고, 더 나은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시작점이 됩니다. 『살로니카의 아이들』은 그 진실의 무게를 직시하게 만드는, 깊고도 묵직한 울림을 품은 작품입니다.



#살로니카의아이들, #미치앨봄, #윌북,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