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시간 1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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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출판사의 제공으로 실제 독서 후 남기는 서평입니다


최근에 접한 존 그리샴의 『자비의 시간』은 단순한 법정 스릴러 장르를 넘어서는, 윤리와 정의의 근본을 묻는 무게감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단순히 법적 절차의 전개에 집중하기보다는,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법과 도덕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얼마나 불완전한 기준 위에 서 있는지를 날카롭게 조명합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큰 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하나의 비극적 사건을 중심으로, 후반부는 그 사건을 둘러싼 법정 공방과 그 안에 내재된 인간의 고뇌를 따라갑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은, 법과 윤리, 개인의 생존 본능 사이의 미묘한 간극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촘촘하게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정의’라고 믿어온 개념이 얼마나 취약하고 상대적인 것인지, 냉정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깊이 생각하게 된 지점은, 우리 사회가 더는 감정적 고통이나 심리적 학대를 방관해서는 안 되며, 법률 제도 또한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신적 폭압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 간의 ‘다름’에 대한 법적 수용과 존중이 제도화되지 않는 한, 법은 본래의 목적을 다할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는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잘못된 법적 구조를 근본부터 재설계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권과 법이 따로 노는 현실 속에서는, 법이 실질적인 도덕성과 정당성을 회복하기 위한 장기적인 고민과 실천이 필수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이야기의 도입부는 독자에게 충격을 주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16세 소년 드루와 그의 여동생 키이는, 지속적인 학대와 폭력을 일삼아온 의붓아버지 코퍼로부터 도망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코퍼는 아이들의 어머니를 심각하게 폭행했고, 드루는 그녀가 사망했다고 믿으며 극한의 공포와 분노 속에서 총을 쏘게 됩니다. 반복된 신체적·성적 학대와 탈출구 없는 삶 속에서, 그는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그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회는 살인이라는 행위를 절대악으로 규정합니다. 특히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용서받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하죠. 그러나 만약 그 살인이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해야만 하는 걸까요? 드루는 단지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또다시 반복될 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 극단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역 사회로부터 ‘살인자’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소도시의 변호사인 제이크는 어떠한 보상도 없이 드루의 법적 대변을 맡겠다고 나섭니다. 그는 이 사건을 단순한 ‘청소년 범죄’로 보지 않고, ‘가정폭력 피해자의 자기방어’라는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그리고 이 시각은 어쩌면 지금껏 우리가 외면해왔던 또 다른 형태의 정의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킵니다.


법률은 엄연히 살인을 금지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희생자인 코퍼가 경찰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드루에게 적용되는 혐의는 사형 가능성까지 수반되는 중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이크는 법의 조항이 인간의 모든 선택을 포괄할 수 없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사건의 맥락과 드루가 처했던 극한 상황을 끈질기게 호소합니다. 그는 법이 도덕적 진실을 외면할 때, 그 자체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려 합니다.

『자비의 시간』은 단순한 법정극으로 읽기에는 무게감이 상당한 작품입니다. 법 제도의 허점, 그 안에 숨겨진 윤리적 모순, 그리고 무엇보다 피해자의 절박한 감정과 선택이 법의 이름 아래 어떻게 평가받는지를 진지하게 되짚어보게 만듭니다. 이 책은 단지 한 명의 소년을 둘러싼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문학적 성찰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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