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시간 2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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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시간 소설 내용의 중심축에는 16세의 소년 드루가 있습니다

이 소년은 분명히 누군가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살인’이라는 범주로 사건을 규정하기에는, 그가 처했던 극단적 상황, 즉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오해와 분노 속에서 촉발된 행위였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는 단순한 형사사건이 아니라, 윤리적·사회적 맥락이 교차하는 복합적 딜레마라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법은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드루와 같은 취약한 위치에 놓인 이들에게조차 법이 공정한 잣대로 기능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작가 존 그리샴은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허점과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지를 예리하게 짚어냅니다.

특히 ‘소년법’의 적용 여부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은 법이 반드시 정의의 도구로만 작동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특정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는 권력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판단이 법의 적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소설은 고통스럽게도 독자에게 인식시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배심원단을 선정하는 절차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이 무작위적이고 공정한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믿기 쉽지만, 실제로는 특정 기준과 전략에 의해 배심원이 선별된다는 점이 소설에서 중대한 이슈로 제기됩니다. 이처럼 구조적 편향이 내포된 제도는, 결국 사회적 약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심원 제도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 제도가 존재했기에 드루의 사건에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졌으며, 보다 인간적인 시선에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 제이크는 이 재판에서 법리적 논증을 넘어서, 배심원의 감정과 인간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택합니다. 키아라가 겪은 성폭력 피해, 그리고 드루가 경험한 절망의 순간을 감정적으로 진실되게 전달함으로써, 그는 법정이라는 공간에 인간성을 복원해냅니다. 이는 법이 단지 조문에 따라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공감이라는 층위 속에서 해석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이 소설이 단순히 범죄를 다룬 픽션으로 머물지 않는 이유는, 제이크와 그의 아내 카라의 존재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희망이라는 불씨를 지키려 노력합니다. 제이크는 금전적 보상 없이 사건을 맡고, 오히려 빚을 지는 상황에서도 드루의 교육을 책임지며, 키아라의 아이를 입양하겠다는 의지까지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적 선의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이라는 보다 깊은 가치로 읽힙니다. 이러한 인물상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에 필요한 윤리적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드루는 법적으로는 ‘가해자’지만,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회색지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정의를 말할 수 있을까요? 법이란 인간이 설계한 제도입니다. 절대적일 수 없고, 완전하지도 않으며, 때로는 그 자체가 불완전한 현실의 반영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제이크와 같은 존재가 그 경직된 틀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자비의 시간』은 단지 법정 스릴러로만 소비되기엔 너무나도 묵직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습니다. 법이 정말 정의로운가, 법정은 진실을 온전히 반영하는 공간인가,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이 사회는 과연 공정한가 — 이러한 물음들이 작품 전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제기됩니다. 책을 덮은 이후에도 이 질문들은 독자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며, 쉽게 지워지지 않는 울림을 남깁니다.

존 그리샴은 이 작품을 통해 사법 시스템이 반드시 인간 중심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약자에 대한 보다 따뜻한 시선을 통해 진정한 정의에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결국 법은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존중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메시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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