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대기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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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독서 후 남기는 리얼 서평입니다



리는 삶을 살아가며 자주 이런 말을 듣곤 합니다.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내면의 왜곡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이 말에, 깊은 진정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내면의 뒤틀림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초기에 마주친 충격적인 사건들, 특히 지워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경험들이 마음 깊숙이 상흔을 남기며, 그 상처를 방어하려는 몸부림 속에서 비틀린 심리적 구조가 생겨난다고 생각합니다.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정서적으로 건강한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은 비교적 단단한 심리적 기반을 갖고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반복되는 학대나 방임, 트라우마를 경험한 부모의 자녀는 또 다른 고통과 상처를 물려받을 확률이 높죠. 『물의 연대기』는 바로 이와 같은 심리적 유산을 온몸으로 감당해낸 저자의 삶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리디아 유크나비치. 그녀는 단순히 ‘불행한 환경’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극단적인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력, 어머니의 우울과 무관심이 공존하는 그곳은, 말 그대로 안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죠. 어쩌면 부모가 아이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참혹한 형태의 상처들이 한데 얽혀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절망 속에서 ‘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자신을 재구성해 나갑니다. 『물의 연대기』는 자전적인 서사와 문학적 상상력이 교차하는 형식 속에서, 그녀의 삶을 섬세하면서도 단단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실한 직업인처럼 보였던 아버지는 실상 매우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수영이라는 활동조차도 그녀에게는 강요된 선택이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혹하게 비난받았던 경험, 자전거를 배우는 순간마저도 위협적인 방식으로 지배되었던 기억은, 독자들에게 강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자라난 중장년층 독자들에게는, 비슷한 맥락의 억압과 훈육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춘기 시절, 저자는 부모의 냉혹한 양육 방식을 견디기 위해 약물과 알코올에 의지하게 됩니다. 도파민에 지배된 쾌락 추구는 잠시나마 고통을 덮어주는 도피처였지만, 결국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죠. 연인 필립과의 관계에서도, 그녀의 상처는 성적 취향이라는 형태로 드러납니다. 그녀의 삶은 언제나 상처와 쾌락 사이에서 팽팽하게 흔들리며 위태롭게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를 구원한 것은 물, 정확히 말하면 수영이었습니다. 물속에서 느끼는 무중력의 감각, 숨을 멈추고 자신과 마주하는 고요한 순간들, 그리고 부력에 몸을 맡긴 채 존재 자체를 느끼는 경험은 그녀에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수영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그녀에게는 감정의 해방이자 자아의 회복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바로 '글쓰기의 힘'이었습니다.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글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파편화된 삶을 다시 엮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해 갑니다. 그녀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과거를 직면하고 해석하며 다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었습니다.

『물의 연대기』는 단순한 고백록을 넘어, 상처의 기록이며 동시에 회복의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독자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대물림하며 살아가는가. 우리는 그 고통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세상을 물려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가 품고 살아가는 내면의 왜곡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들여다보며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성을 환기시켜줍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심리적 상흔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고 돌볼 것인지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의 연대기』는 그 여정을 진지하게 탐색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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