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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락워크 도깨비 - 경성, 무한 역동 도깨비불 고블 씬 북 시리즈
황모과 지음 / 고블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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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로 남지 않기

 

소설 <클락워크 도깨비>는 도깨비불이라는 설화적 요소와 클락워크, 인조노동자(로봇의 첫 번역어) 등 스팀펑크요소에 기대어 조선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살아가는 이들을 비춘다. 주인공 연화는 아버지와 산속에 살며 산 밑 세상과 단절하며 살아간다. 대장장이 아버지 덕에 불을 가까이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몰래 밤에 엄마 무덤을 찾다 만난 도깨비 불 갑이와도 거리낌없이 잘 지낸다. 어느 날 연화 눈에 이상하게 복장을 한 이들이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가고 집이 불로 뒤덮자 연화는 아버지의 유품인 원진을 하나 챙겨 들고 산을 내려가기로 결심한다. 갑이는 말없이 연화를 따라나서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소설은 태엽기계, 인조노동자(로봇) 등을 등장시키지만, 이보다 더 집중하는 요소는 따로 있다. 바로, 불이다. 증기기관, 태엽기계 등 기계가 고철덩어리, 껍데기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힘인 원료가 필요하다. 과연 기계만이 불이 필요한 것일까? 인간도 불이 필요하다. 불은 욕망, 희망, 소망 등 따위로 다르게 불릴 수 있다. 염원을 담고 살지 않으면 인간도 기계와 다를 바 없이 껍데기에 불가하다. 동시에 불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불은 주의를 따뜻하며 보호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변하게 하는 파괴의 힘도 가진다. 소설은 끊임없이 불의 양면성을 계속 대비시키며 질문을 던진다. 소설은 내면의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렇다면 어떤 불을 속에 담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집중한다.

 

보호의 불이 파괴로 바뀌는 갈림길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는가에 달려있다. 호랑이처럼 빠르게 달리고 싶은 마음에 만든 연화의 번개, 인간이 되겠다는 욕망의 불로 클락워크가 되어버린 도깨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성장의 불을 지피며 산미증산계획을 내세우는 일본인... 이들의 욕망은 오롯이 자신의 염원만을 담고 있다. 과한 욕망은 껍데기로 전략하거나 타인을 착취하거나 쉽게 부서지고 만다. 그에 반해 밤길이 어두워 행여나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 할까봐 켜둔 불은 타인을 염두한 염원이며 희망이다. 작가는 대비를 통해 불을 다스리는 법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스팀펑크에 도깨비불이라는 설화적 요소를 더하며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힘을 실어주었다. 도깨비불은 사람들이 기억해주지 않으면 힘을 잃고, 기계는 원료가 없으면 녹이 슨다. 사람도 혼자서 거뜬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바람과 소망, 열망은 중요한 연료가 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서로 다른 결과를 낳기 마련이다. 한국 개화기 시대를 무조건적인 성장과 발전에 대한 경계와 동시에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스팀펑크 요소로 표현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거 같다. 요소의 메시지와 소설의 메시지가 적절하게 어울어져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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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 -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 앳(at) 시리즈 1
캐시 박 홍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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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소개가 너무 어렵다. 으레 자신을 설명할 때, 하고 있는 일로써 설명할 때가 많은데, 내가 직업을 말하면 사람들은 갑자기 나에게 관련하여 억울했던 자신의 경험을 갑자기 쏟아 내거나, 뜬금없이 어느 정부 부처를 폐지해야한다고 울분을 토해낸다. 어느 순간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이미지와 단어 몇 개만이 남는 경우를 마주하게 된다. 나를 소개할 때, 몇몇 정체성을 일부러 숨기기도 하는데, 출신지가 그 중 하나다. 사람들은 고담 도시’, ‘보수꼴통등 출신지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 나를 인식한다.

사람이 상대를 만났을 때, 첫인상과 몇 개의 정보로 상대를 단편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음에도 나는 여전히 나를 소개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 무엇이 문제인지 <마이너 필링스>를 읽으면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 감정들은 사소하지 않다부제를 달고 있는 <마이너 필링스>는 쉽게 지워지는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여성 한국계 미국인으로 이민 2, 아시아인, 여성, 시인 등의 다채로운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푼다.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와 함께 사회적 이슈를 배치한다. 동시에 사회와 제도가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악용하는지 알려준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신화를 퍼뜨려 자본주의를 선전하고 흑인 민권 운동을 깎아내렸다. 우리 아시아인은 뭘 유구하지도 않고, 근면하고, 절대로 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는 착한사람들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 차별은 없다며, 저들은 우리를 안심시켰다.(p.34)”

 

권력을 쥐고 있는 어떤 주체에 의해서 소수자의 정체성은 부자연스럽게 부각되거나 혹은 손쉽게 지워지기 쉽다. 작가는 그렇기에 어떨 때는 혜택을 입기도 했다고 말한다. 어찌보면, 작가의 정체성이 특별하기에 겪는 일이 아닐까 싶지만, 일상에서 우리도 쉽게 겪는 일들이다. 여성이어서, 장애인이어서, 비수도권출신이어서, 퀴어라서... 특히 소수자의 정체성은 사람들에 의해 단정되고, 특정 모습을 요구받거나 왜곡되고, 이용당한다. 하나의 정체성만이 도드라져서 공격을 받기도 하고, 납작하게 읽히기도 한다. 작가는 우리의 정체성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정된 모습으로 요구받는 것에 의문을 던진다.

 

<마이너 필링스>는 자신의 정체성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어떤 면에서 자기소개 글이다. 관심이 가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 갈수록 매력을 느끼듯이 입체적인 자기소개 이야기에 나는 매료되어 버렸다. 좋아하는 연장자가 하는 것은 뭐든 좋아보여서 따라하는 동생마냥 작가가 인용하는 작품이나 좋아했다는 작품 등을 따로 소중히 기록하는 나를 발견했다. 우리는 납작한 인물보다 입체적인 인물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다.

 

첫인상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정말 나쁜 것은 다채롭게 상대를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태도이며, 특정 정체성에서 사회와 문화가 규정해버린 편견과 차별에 문제제기하지 않고 배제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 <마이너 필링스>를 읽으면서 나는 어쩐지 위로가 되었다. 정체성과 관련하여 쉽게 지워지거나 역할을 요구받는 사회에서 자유로운 곳에서 상대를 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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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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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실 거 같아서요.”

한 협동조합에서 진행했던 독서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독서모임의 운영자가 조합회원 가입을 권하면서 던진 말이 나에게 꽤나 오랫동안 힘이 됐다. 나의 쓸모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초조해하던 시절이라 더 크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운영자가 나를 정말 좋게 평가해서 나온 말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저 회원모집을 위해 영업을 위한 미사여구에 그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렇다한들, 설령 그럴지라도. 나는 덕분에 이리저리 흔들려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절 그 문장에 매달려 버틸 수 있었다. 이럴때보면 나도 참 읽기 쉬운 사람이네 싶다. 우리는 수많은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이것이 내가 비록 손해를 보더라도 피곤하더라도 최대한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별것 아닌 선의>는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사소한 순간에 내보인 선의와 그 힘에 대해 말하는 책이다. 작가 이소영 교수는 사소했지만 삶을 위로받았던 에피소드를 풀어내면서 선의를 가지는 태도의 의미와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잊고 있었던 삶 속의 타인들의 사소했던 친절과 행동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점점 기대보단 실망하는 일이 많다 보니, 타인과의 관계에 지쳐, 친절과 경청보다는 경계하고, 긴장하는 경우가 더 익숙한 요즘이다. 작가의 글은 다시 선의의 힘을 일깨워주는 좋은 기회가 됐다. 그러나 작가는 선한 의도를 강조하지 않는다. 또한 선의의 행동과 닮아있는 연민의 감정에 기이한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지 않는다.


문제의 원인을 치열하게 파고들어 투쟁해야 할 사안에서 약자를 동정하는 데 그치게 만드는 분노 없는 연민, 문제의 원인으로 악인을 지목하고 그에게 분노를 터뜨림으로써 손쉽게 정의감을 얻는 연민 없는 분노와 동전의 양면을 이룰 것이다.”

 

작가는 연민 없는 분노가 본질을 호도할 수도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연민이 가진 힘이 얼마나 약한지에 대한 지적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책은 세상은 아름다우니 착하게 살아야합니다.’와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작가가 매 순간 선한의도를 내포한 정의로운 행위만을 요구하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라고 답하고 싶다. 작가는 선의가 하나 더해진 세상이 그것마저 제하여진 세상에 비해 그 크기만큼은 나을 거라 생각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나아가 위선이어도 외면하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고까지 주장한다. 설령 그것이 위선이었더라도 분노 없는 연민이나 연민 없는 분노라 할지라도 이를 통해 발현된 행동은 누군가에겐 버팀목이 될 수 있음에. 나아가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 충분히 필요한 감정임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순간에 집중한다. 순간은 길지 않은 시간을 의미한다. 순간순간. 타인에게 적절한 순간. 타인에게 선의를 발휘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선의로 해석되는 단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평소에 끊임없이 타인에게 관심이 있어야 하며, 배려하는 마음을 더불어 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사소한 순간이라 말하지만 순간이 액션이 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염두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결국 작가는 사회가 냉소보다는 연민을 이내 곧 선의를 적절한 순간마다 더욱 자주 드러내주기를 바라며 글을 쓴 것으로 여겨진다. 작가는 별것 아닌 선의는 사실 굉장히 별것인 개인의 순간순간이 모여야지 발현될 수 있는 가치이며 이는 우리의 끊임없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관심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다정하고 따뜻한 에피소드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

글을 읽고 나면 괜스레 별것 아닌 선의를 내보일 순간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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