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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하다 앤솔러지 5
김경욱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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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고 묵묵한 포옹같은 소설이 다섯 편 담겼다. 어머니의 비밀을 알면서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 막내아들. 연경의 아픔을 함께 조용히 다독여주는 직원들과 곁을 주지 않는 1년 차 직원의 심란한 고백을 삭히며 마음을 달래는 연경. 동행함으로써 장의 두렵고 허전한 마음을 지탱해주는 승호/지영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절과 관계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지영을 안아주는 승호. 스스로의 모자람에 자괴감을 느끼는 용기, 속에 있는 걸 다 토해버리라며 등을 토닥여준 미경. 언젠가는 이야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없는 이야기가 있듯이, 어떤 관계 또한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영서와 윤선배까지.

  따뜻하기도 슬프기도 했고, 내 얘긴가 싶을 정도로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우울한 감정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어 놀랍기도 했다. 결국 이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이해해 준다는 면에서 아주 어른스럽고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슬퍼할 줄 알고, 자주 상처받는 사람들이 예민하지만 그만큼 사려 깊고 마음이 넓은 것은 아닐까. 5권은 특히 추운 겨울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표지에서 책배까지 이어지는 인쇄가 특히나 아름답다. 모두 『안다―열린책들 하다 앤솔러지5』 읽으며 겨울을 나셨으면 좋겠다.


*출판사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우리는 파란 케이크를 나누어 먹듯이, 슬픔과 상실을 꼭꼭 씹어 삼켰다. 자꾸 호흡이 흐트러지는 슬픔과 피식피식 입가를 비집고 나오는 웃음이 교차하는 이상한 순간이었다. - P65

여기 안개는 이부자리까지 적시지. 여기서는 꿈길도 젖어. 어머니는 밤안개가 중공군처럼 몰려온다고 말하시곤 했지. 전쟁 때 얘기야. 다시 보니 장관이네. 안개가 오만 가지 마음을 다 끌어오는군. - P111

기도를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무언가를 비는 일이라면 자신 있었지만, 나 같은 인간까지 돌보기엔 신이 너무 바쁘다는 것도 이해한다. 용기는 드디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찾았다는 듯, 양손을 맞잡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기원하는 내용을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너무 힘들지 않게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 P148

우정은 서로의 삶에 어쩔 수 없이 지문을 묻혀 가듯 어떤 것은 지워지지 않는 걸까. -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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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라는 돌
김유원 지음 / 한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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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았으며,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프로야구 심판 홍식은 1군에는 등록돼 본 적 없지만 프로 야구 선수 출신이이다. 실력보다 성실함을 먼저 인정받은 그는 은퇴 후, 가족과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심판이 되기로 한다. 심판이 되어서도 정확한 판정을 위해 매일 아침 규칙서를 읽고 몸 관리를 철저히 하며 성실하게 임한다. 평소에는 경기 운영에 집중하지만, 동료 심판을 향해 모욕적인 말을 뱉은 선수의 멱살을 잡아챌 정도로 신념이 강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홍식이 경기 중 공에 정강이를 맞으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딱딱한 야구공을 맞고 아파 뒹구는 사람이 있는데도 경기는 아무렇지 않게 진행됐다. 심판은 경기 진행 중엔 기물로 취급되니까. 그 공을 친 타자 역시 홍식에게 괜찮냐는 말조차 건네지 않고, 홍식의 정강이를 맞고 튕겨 나간 공 때문에 중요한 경기의 결과가 바뀌고 만다. 시합이 끝난 뒤, 공에 맞던 순간의 영상을 돌려보며 엉엉 울며 눈물의 원인을 짚어보지만 큰 진척은 없다. 얼마 뒤, 은퇴한 포수 준호가 홍식에게 제안을 한다. ABS와 판정 대결을 펼쳐보자고. ABS 로봇 심판 도입 이후로 선수들이 심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들었다면서, 기계가 사람을 너무 빨리 대체하는 것 아니냐면서. 홍식은 준호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될까?



* 책에서 던지는 질문


- 야구란 무엇인가?

- 우리가 너무 쉽게 인간을 기계로 대처한 것 아닌가?

- 인간적인 야구란 무엇인가?

- 기계의 도입으로 규칙이 점차 바뀐다면 야구 경기 해석의 여지가 축소될 텐데, 그것에 지금의 “야구”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 읽으며 더 생각해 볼만한 것들


-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권위란 무엇일까?

- ABS 도입 후 장단점은?

-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에는 고의성 판단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 오심도 야구의 일부인가?


선수, 동료 심판, 가족과의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쌓여 홍식이라는 인물이 또렷하게 보이는 해상도 높은 소설이었다. 작가가 야구에 대해 공부와 취재도 깊게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세했다.


야구팬으로서 심판진이 늘 고생한다고는 생각하지만, 판정에 공감하지 못할 때가 꽤 있었다. 판정 대상이 다르더라도 문제되는 것은 늘 일관성이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심판진이 평소에 들이고 있을 노력에, 기계에 대체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인간적인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스토브리그(비시즌)라서 컨텐츠가 적은데, 야구팬 친구와 교환독서하며 토론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말 그대로예요. 선수들처럼 심판도 판정을 받는 거죠. 심판별로 정확도나 선호하는 스트라이크존이 분석되고, 판정이 경기에 끼친 영향 같은 게 수치로 나오면 야구를 보는 또 다른 재미가 생기지 않을까요? 심판도 일종의 플레이어가 되어서 로봇과 대결하는 또 하나의 게임이 만들어지는 거죠. (…) 오심을 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야구가 더 재밌지 않을까요?" - P27

실패하면 너무 많은 걸 잃어. 심판이 공 30개도 제대로 판정하지 못하면 누가 지금까지의 기록을 신뢰하겠어? 다들 거봐라, 내 저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모든 기록을 의심할 거야. 이제는 ABS가 판정하니까 당장은 별 영향 없을지 몰라도 사람들 마음에 실금 하나는 그어지게 될 거고. 그런 게 쌓이면 야구가 무너져. 영원히 인기 있는 스포츠는 없어. 우리 야구인들은 그걸 항상 명심해야 해.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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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시 2026 - 소음 속에서 정보를 걸러 내는 해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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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 정치인들이 언급하는 교통, 재건축, 기관 및 시설 이전과 관련해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한 적 있는 분에게 추천합니다. 건조하지만 중립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더 신뢰가 느껴집니다. 단순히 경제적인 면, 부동산의 화폐적 가치만을 다뤘다면 절대 재밌게 읽지 못했을 거예요. 인문학적이고, 도시학적인 측면도 갖추면서 경제학적인 면도 충족하는 책입니다. 근시안적이거나 단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각 도시의 이력, 현재 상황, 거주하는 시민들의 갈등까지 파악하고 미래에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이야기하더라고요. 직접 도시를 방문하고 들여다본 게 티가 나는 또 한 가지 사항은 직접 찍은 사진. 저는 사진을 보면서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책 살 것 같습니다. 매년 구매해 읽다 보면 국내 및 국제 정세, 국토가 어떤 방향으로 개발되고 정체되어 있는지 더 큰 흐름도 읽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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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음악 - 날마다 춤추는 한반도 날씨 이야기
이우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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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이 땅은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다. 게다가 산도 많고 그만큼 강도 많은데, 섬도 많아서 날씨를 예측하기 무척 힘들다. 기상청에서 예측한 바와 실제 날씨가 달라서 사람들이 불평할 때마다 듣는 내용이다. 어린 시절에는 별생각 없이 지내다가, 고등학교 2학년 사회탐구 선택과목으로 지리를 선택하면서 지리와 기후에 대한 내용을 배웠다. 그 이후부터는 날씨에 대한 이해도가 생겼다. 이 책은 한국 지리 수업 시간에 배웠던 내용을 다시 한번 쉽게 읽는 기분이었다. 날씨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날씨에 따라 생기는 무지개 같은 현상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날씨를 음악과 리듬에 비유하기도 한다. 잔잔하게 읽을 수 있어 좋았지만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이 책이 에세이이긴 하지만 시각적인 자료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지리와 대기, 날씨는 어쨌든 과학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글로만 설명한다면 독자가 이해하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책이 청소년 독자를 타겟으로 하였다면 더더욱 시각적인 자료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과학적 현상을 설명하다가 음악적/문학적 비유가 나오니 약간 정신이 없었다.

 

읽으면서 우리는 날씨도 우리에게 맞추어 생각하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특히 산 정상에서의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느꼈다.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가기 직전까지는 바람이 그리 세지 않은데, 대청봉에 오르고 나면 바람이 무섭도록 분다. 시원하긴 하지만 약 1,700m 높이의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맞는 바람은 약간 아찔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그저 매서운 바람을 맞은 것이 아니라, 대기의 본모습을 마주한 점이라는 걸 알고 나자 새삼스럽게도 어릴 적 올랐던 설악산에 다시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로 장을 나누어 각 계절의 날씨에 대해 쉽게 풀어주고 있으므로 날씨에 대한 상식을 가볍게 쌓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할 듯한 책이다.

 

* 해당 서평은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6기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정상에 다가서면 춥고 바람이 강한 이유가 뭘까? 이 질문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적절한 질문은 동전의 다른 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평지로 다가설수록 기온이 따뜻해지고 바람이 약해지는 이유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온도가 낮고 바람이 세찬 것이 대기의 본모습이고, 평지에서 느끼는 대기는 땅의 영향으로 변형된 것이다. 우리는 산에서 대기의 순전한 본래 모습을 재확인하는 것뿐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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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 마들렌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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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작가의 이름을 여기저기서 꽤 많이 들어보았다. 어떤 작품을 썼는지 궁금했던 참에 6월 하니포터 신청 도서에 신작이 있길래 골라보았다.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젤로의 변성기, 세네갈식 부고를 재미있게 읽었고, , , 마들렌도 재미있었다.

 

아포칼립스 장르 중에서 좀비물을 가장 좋아해서 재미있었다. 죽음의 속도와 아직은 남아 있는 인간성을 생각하며 읽었다. 괴질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에 의해 천천히 굴러가는 남은 이들의 삶. 잠깐이라도 방심했다간 죽음으로 곤두박질치게 되는 위기. 그럼에도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동행인으로 삼는 주인공. 나는 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의 결말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이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다.

 

젤로의 변성기는 어느 성우의 이야기다. 아역의 목소리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것이 큰 고충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해서 새로웠다. 성대에만 무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경우 호르몬 영향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살았다. 그래서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젊은 여성에 대한 중년 여성의 욕망이 새로우면서도 낯설었는데, 이 욕망이 20대 여성-50대 여성의 욕망인지, 10대 남성(의 자아)-20대 여성의 서사인지, 약간 혼란스러웠다.

 

, , 마들렌에서는 마들렌과 마들렌을 성추행한 작가에 대한 양가감정,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걱정과 스트레스로 ''는 그만 분열되어 버리고 만다. 특이한 설정에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 ''는 그 칼로 ''''를 어떻게 할 작정인 걸까.

 

뒤표지에 적힌 김초엽 작가의 말처럼, 소설 속 인물로 한참 살아본 것 같은 내면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뭐라고 단언하기 힘든 인물과 소설들에 대해 여전히 곱씹게 된다. 여성의 서사, 모성 이데올로기, 아포칼립스 좀비물, 여성의 욕망, 신 등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의식을 잃어가는 상태에서 운전대를 쥐었으니 음주 운전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그렇게 되면서까지, 목숨을 앗아갈 만큼 심한 1기의 통증과 고열을 견디면서까지 다들 어디로 가려 했을까. 곧 인간성이 만료된다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끝내 가야 했던 곳은 대체 어디였을까. 뭘 하고 싶었을까. 누구를 만나려는 거였을까. - P36

그러니까, 영원히 열여섯 살 소년이기 위해 여자로서의 노화를 최대한 유예해야 했고 실제로 그러려고 노력해왔으니까, 이런 말을 한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테고 이해받기를 기대하지도 않으니까 아무에게도 이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누군가는 이해하리라고 믿지만 그건 내게 직접 들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알아차려서야 한다. - P63

어머니가 이미 폐경을 맞았기 때문에.
대단한 망신을 당한 듯해 수진은 인사도 건성으로 하고 병원을 뛰쳐나왔다. 뒤늦게 따라 나온 엄마를 보자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 P171

그 순간 무겁고 날 선 도끼가 정수리 한가운데를 빡 하고 내리치는 듯한 격통이 있었고 나는 따뜻한 피자가 치즈를 늘어뜨리며 갈라지듯 찌익, 쩌억 하고 둘로 나뉘었다. 마들렌의 눈앞에서. 아, 이런 식이었군.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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