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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인류의 흑역사 - 세상에서 가장 불가사의하고 매혹적인 폐허 40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흑역사와 폐허의 공통점이 뭘까. 당사자는 잊어버리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지만, 타인에 의해 다시 꺼내지고 조명을 받는다는 점? 떠올릴 때마다 수치스럽고, 후회되어 부끄럽고 슬퍼서 완벽히 쓸모없다는 점? 그러다가도 다신 그러지 말아야지,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이렇게 대처해야지, 생각하며 교훈을 얻는다는 점?
책 제목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내용일 것 같아 냉큼 신청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옛날이야기(특히 폐허 모티프와 이미지), 지도, 세계 곳곳에 대한 것들을 좋아했는데, 여기에는 그게 모두 담겼다. 사진 자료가 많아서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씩 상상해 보기도 했다. 저 건물에서 사람들이 지내던 호시절, 인적이 뜸해져서 스산한 분위기, 누군가의 사랑이 끝나가는 모습,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분위기 같은 것들을 말이다. 읽으면서 내 어린시절 책 취향이 어디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삼스레 반가웠다.
제목과 부제목, 뒤표지의 카피들이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모든 버려진 장소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메인 카피가 마음에 들었다. 표지와 내지에 지도와 사진이 많아 좋았다. 줄 간격이 좁지 않고 서체도 너무 작거나 두껍지 않아 눈이 피로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사에 대해 얕게나마 접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읽은 뒤 역사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지리, 미스터리에 관련된 책과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라면 말이다(내가 그랬다).
나는 노르웨이의 피라미덴, 서인도제도의 플리머스, 오스트리아의 될러스하임, 그리스의 헬리니콘 올림픽 단지, 우간다의 아캄펜섬에 관련된 내용들을 읽으며 재미있기도, 안타깝고 쓸쓸하기도 했다. 다만 관련된 내용을 더 읽고 싶은데 원고가 금방 끝나 아쉬운 면도 있었다. 세계사와 불가사의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 해당 서평은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6기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잊는다는 것은 기억하는 힘을 잃는다는 뜻이다. - P10
시인 폴 발레리가 했다는 "시는 결코 끝나지 않으며, 다만 버려질 뿐이다."라는 말처럼, ‘버림‘은 ‘되찾음‘이나 ‘돌이킴‘의 가능성을 분명히 안고 있다. 끝난다는 것은 죽는 것, 마무리되어 더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버려진 것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쉽게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 버려진 물건은 다시 주울 수 있고, 버려진 땅은 다시 사람들로 가득 찰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한다. - P10
이 책은 버림받고, 소외되고, 사람이 살지 않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장소들의 지명 사전이다. - P11
잊혀서 완전히 사라진 대상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치는 희망을 모두 포기해야 할 근거가 아니라 그 반대다. 버려진 장소는 다가올 세상을, 잔해에서 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더 오래 더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격려한다. - P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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