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민은행 이야기 - 착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다
데이비드 본스타인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1. 소액신용대출 ‘산업’은 결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도 돈을 갚을 수 있는 능력과 신용을 모두 갖추고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얼마 전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과 금융거래를 하는 일은 매우 급진적인 사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매우 좋은 사업 모델이 됐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남의 도움에만 의존하는 사람에서 유능한 고객으로)는 소액신용대출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소액신용대출은 이제 막 세상을 향해 그 가능성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6면)




2. 소액신용대출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주류 경제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나중에 시장을 지배할 많은 사회적 기업들에게 첫 경험을 제공할 겁니다. (10면)




3. 물론 이러한 금융제도의 상업화에는 분명히 위험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위험이 가난한 사람들과 여성들을 지원한다는 초심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11면)




4. 이 사업의 목적은 가난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들의 꿈을 맘껏 펼치며 살 수 있도록 사회,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는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바로 소액신용대출의 목적이다. (12면)




5. 합리적인 인간은 스스로 세상에 잘 적응하지만 비합리적인 인간은 세상을 자기에게 적응시키려 애쓴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합리적인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조지 버나드 쇼)




6. ‘그라민’은 벵골어 ‘그람gram'에서 온 단어로 ’마을‘을 뜻하고, 따라서 그라민은행은 농촌 마을에만 있다. 이것은 은행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말하자면 기존의 통념을 뒤흔드는 방식이다. 이 은행의 또 다른 특징은 주로 여성들에게 소액으로 단기 대출을 한다는 것이다. (28면)




7. 그라민은행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유누스는 말한다. “신용이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있는 특권이라는 잘못된 신화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과 그 마을에 사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매우 능력있고 총명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바꿔갈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29면)




8. 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를 지원하고, 큰 규모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조금씩, 도시가 아니라 농촌 마을을, 남성이 아니라 여성을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말이다. (34면)




9. 유누스는 저명한 성장주의 경제학자인 조지프 슘페터의 학풍 아래서 공부했다. 슘페터는, 기업가는 경제의 동력으로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미지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도록 ‘창조적 파괴의 광풍’을 일으키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34면)




10. 지금 같은 인터넷 시대에 사람들이 왜 농촌을 떠나 도시로 향할까? 그것은 일거리가 있는 공장이 도시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들이 자본가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농촌 사람들에게 오도록 만들자. 그것이 바로 유누스의 생각이었다. (35면)







11. 1980년대 말, 그라민은행은 마을 사람들이 농업과 어업에서 중간 기술을 적용할 수 있도록 돕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그라민은행은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옷감을 짜, 미국과 프랑스에 셔츠를 파는 제조업자들에게 수백만 야드의 옷을 공급할 수 있도록 도왔다. 1995년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에서 돈을 빌린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방글라데시의 무선통신망을 이용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해달라고 제안서를 제출했다(그라민이동통신). 그리고 마을에서 태양력을 일으켜 사람들에 팔 수 있는지 사업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그라민에너지). (35, 36면)




12. 방글라데시의 부자들은 흔히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도망하지만 그라민은행의 고객들은 단 한 번의 분할 상환도 거르지 못한다. 빌린 돈을 제때 상환해야만 다음에 다시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38면)




13. 그라민은행은 또한 정치색이 없고,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 모두에게 확고한 지지를 받는다. 우파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기업체로 보이고, 좌파의 입장에서는 정부 개입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계몽된 사회복지 사업처럼 보인다. (38면)




14. 결국 그라민은행은 자신을 이념 문제로 축소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한다. 그라민은행은 역사에서 선례가 없는 기관이다. 그라민은행은 비용을 철저하게 관리하고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 동시에 가난과 배고픔을 퇴치하기 위한 사회적 기업이다. (38면)




15. “사람들은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을 알아요. 우리가 하는 일은 전국 어디에서도 절대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라민은행은 맥도날드가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팔 듯 소액신용대출을 팔았다. 그리고 수백만 명이 그 서비스를 받았다. (40면)




16. 유누스는 그 기근을 겪고서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의 추상성에 완전히 흥미를 잃고 말았다. 밖에서 마을 사람들이 굶주리는데 치타공대학 건물 안에서는 강의와 시험이 계획대로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유누스는 강의 교재를 보다가 “아래가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자신을 떠올리면서 사람들은 오직 자신이 “상상하는” 세상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45면)




17.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하는 일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애썼습니다. (45면)




18. 하지만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다수이며 그들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어느 경우든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말만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누군가 실제로 그 일을 해야 했다. (50면)




19. 유누스는 세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빌린 돈은 제 날짜에 꼭 갚게 한다. 둘째, 땅이 없는 사람에게만 돈을 빌려준다. 셋째, 될 수 있으면 여성들과 함께 일한다. (60면)




20. 가난한 사람들은 경찰, 군대, 법원 같은 기관들을 경계하는데, 이 기관들은 부자들이 자신들을 착취하고 땅을 빼앗도록 도와주기 때문이었다. (60면)




21. 유누스는 은행을 “가난한 사람, 땅이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 여성들을 인정하지 않는 기관”이라고 보았다. (60면)




22. 모든 금융거래는 마을 안에서 일어나고 최대한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했다. 규칙은 “보는 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였다. (61면)




23. 방글라데시 마음의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압력이다. 이 힘을 이용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를 위해 모임의 구성원들이 서로 시차를 두어 대출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번에 두 사람씩만 대출을 받고, 그 두 사람이 제 날짜에 돈을 못 갚으면 다음 두 사람은 돈을 빌릴 수 없다. 다음 해에 모임 구성원 모두가 신용을 유지하고 있어야만 다시 돈을 빌릴 수 있다. 돈을 빌린 사람이 일을 게을리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좋지 않은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모임의 구성원들이 첫 번째 경고로 그 사람이 혼자가 아님을 일깨워준다. (61, 62면)




24. 유누스는 다른 규칙을 덧붙였다. 돈을 빌린 사람은 누구나 일주일에 적어도 1타카씩 저축해야 한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였다. “주마다 하는 회의, 1타카 저축, 사후 점검 방문처럼 우리가 만든 모든 규칙을 종교 계율처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62면)




25. 유누스가 말하는 핵심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게으름과 어리석음 때문에 끔찍하고 불필요한 고통을 겪었다는 점이다. (67면)




26. 유누스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 한 모임을 5명으로 정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일하는 손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있다. 이슬람교에는 다섯 개의 신앙 기둥(고백, 예배, 헌금, 라마단 금식, 성지순례 - 옮긴이)이 있다. 그리고 날마다 다섯 차례 기도를 한다. (71면)




27. 유누스는 조브라 마을에서 사람들이 가난해지는 첫 번째 단계가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리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임기금은 마을 사람들에게 싼 이자로 단기 자금을 빌려줌으로써 이런 과정을 끊었고 ... (73면)




28. 그리고 테네시 주 내시빌로 떠났다. “그 곳에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나는 미국에서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정말 환상적인 발견이었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가 느끼는 대로 말할 수 있었어요. 방글라데시에서는 사람들을 계획된 테두리 안에 맞추려고만 합니다.” 그가 회상했다. (90면)




29.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방글라데시 문화 가운데 중요한 요소이다. 따라서 그라민은행도 당연히 손님들을 최고로 배려했다. 유누스는 또한 미디어의 영향력, 특히 서양의 미디어가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대의를 외부에 잘 홍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술논문과 신문기사가 기부금 모금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잘 안다. 유누스가 방문객의 일정을 신입사원의 일정처럼 관리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방문객이 여행으로 생긴 시차에 한숨 자며 적응하고, 사무실에서 며칠 보내며 환경에 익숙해진 다음 마을을 보러 가게 하는 것이다. (99면)




30.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이 회원들에게 무료 자선 사업으로 생각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방글라데시는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한다. (127면)




31. “우리들의 결심 16가지” 1. 우리는 훈련, 단합, 용기, 근면이라는 그라민은행의 4가지 원칙을 따르고 이를 우리 삶 속에서 발전시킨다. (128면)




32. 애덤 스미스는 ‘도덕적 감성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열등한 이류 인생에서” 어떤 개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언제나 이웃과 동료들의 ... 호의와 좋은 평판에 기댄다. 그리고 이것들은 웬만큼 지속적으로 인내하며 행동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 ... 사회가 훌륭한 도덕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호의와 좋은 평판들이 인간의 훨씬 더 큰 부분을 구성해야 한다.”고 썼다. (131면)




33. 가장 지키기 어려운 것은 결혼 지참금을 주거나 받지 않기로 한 11번 항목이었다. 딸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좋은 생각이었지만 아들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 (141면)




34. 유누스는 그라민은행을 ‘대항문화’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유누스가 내게 말했다. “우리는 거슬러 흐르는 물이예요. 다른 은행들은 위를 보지만 우리는 아래를 봐요. 다른 은행들은 당신보고 자기들에게 오라고 하지요. 우리는 직접 채무자들에게 갑니다. 다른 은행들은 당신에게 소유권을 요구해요. ...” (144면)




35. “나는 날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내 눈으로 보았어요. 가난을 직접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어요. 때로 우리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애를 태우지요. 그러나 나는 아예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고 행복할 수 있었어요. 나는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사실 앞에서 나와 그들을 비교해보곤 했어요. 나 자신의 고통과 모든 좌절, 실패는 그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내가 진짜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살레하가 회상했다. “나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그랬다면 세상사에 대한 진실을 배우지 못했을 거예요.” (150면)




36. 가난하지만 서로 생활수준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임을 만들었고, 거기서 더 가난한 사람들은 무시를 당했다. ... 이제 모임은 “비슷한 경제 조건‘과 ”서로 믿고 신용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한 가족은 같은 모임에 가입할 수 없었다. (154, 155면)




37. 그(무잠엘)의 외향적 성격은 유누스에게 도움이 되었다. (166면)




38. 다카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나스린 쿤드케르가 말했다. “그라민은행은 급진주의자들이 만족할 정도로 근본적이지 않아요. 그리고 보수주의자들이 좋아할 만큼 보수적이지도 않지요. 중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69면)




39. “당신 집에 창문이 여러 개 있어요. 어느 날 창문 하나가 쓸모가 없어지면 그저 계속 닫아놓으면 되겠죠. 우리는 그런 창문이기를 바라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이 되길 바랍니다.” 유누스가 답했다. (170면)




40. “나는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그게 힘이었나봐요. 잘 모르겠네요. 내가 다른 조직에서 일해봤다면 그 조직을 모방하려 했을 테고 그러면 모든 일이 꼬였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일을 임기웅변으로 대응해야 했지요. 나는 그것을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유누스가 말했다. (181면)




41. 결국 유누스는 땅 없는 여성보다 불안정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성은 국가와 종교의 권위에 지배당할 뿐더러 가족과 남편에게도 종속된다. (189면)




42. 이자를 받지 말라는 이슬람교의 명령은 실제 현실에서는 환상이었다. 마을에서 매우 독실한 신앙심을 보이는 부자들이 사실은 고리대금업자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192면)




43. 이슬람교 율법에 따르면 여자는 남자가 물려받은 재산의 절반만 물려받도록 되어 있다. 실제로 여성들은 자신이 물려받은 토지를 얼마 안 되는 돈으로 받거나 공짜로 남자 형제들에게 넘긴다. (205면)




44. 그러나 무엇보다 이 주택대출사업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는 더 건조하고 따뜻한 집이 질병 발생률을 줄였다는 사실이었다. 질병은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따라서 주택대출사업은 건강보험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208면)




45. 마이클 해링턴은 35년 전 “또 다른 미국The Other America'에서 가난한 미국인들에 대해 쓰면서 유누스와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해링턴은 가난을 단순히 물질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가난은 한 사회가 실제로 대다수 국민들에게 무엇을 제공할 수 있는가와 관련지어서 보아야 한다. (212면)




46. ... 나는 이럴 때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이 이렇듯 즐겁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자들이 밤에 이런 곳에서 함께 웃거나 이야기하고 떠들 수 없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까왔다. (217, 218면)




47.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예요. 부패한 사람이 언제나 더 행복하지는 않죠. 그들은 5타카를 뇌물로 받으면 3타카를 다시 뇌물로 써야합니다. ...” 사히둘 알룸이 설명했다. (221, 222면)




48. 은행은 “오직 감시체계가 은행의 멀고 어두운 구석까지 모두 도달할 수 있고 그것들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을 때만” 그 우수성을 지킬 수 있다. (226면)




49. 유누스는 워싱턴에서 지낸 경험은 정부와 자선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안목을 갖게 해주었다. 유누스는 구호단체의 관리들이 경력을 관리하기 위해 대규모 지원 사업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사항을 맞추기 위해 자신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알았다. “자선단체 사람들은 적은 돈보다는 큰 돈을 주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해요. 1만 달러나 2만 달러를 요청하면 그들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몇백만 달러를 요구하면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하지요.” (232면)




50. 순수 경험에 만족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다. (괴테)




51. 마셜 플랜은 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유럽을 성공적으로 재건했지만 1960년대 말 이러한 개발 모델은 놀라운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모든 제3세계에 만연한 가난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경제학자들로부터 공격받았다. ‘경제적 도약’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먼 제3세계 국가에서 시행된 성장 중심의 정책은 불균등 개발을 가져왔다. 도시의 엘리트층은 엄청난 부를 차지한 반면 수백만 명의 농촌 사람들은 더욱 깊은 가난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287면)




52. 데소토는 유누스처럼 자본주의가 가난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좌파들을 비판하면서 부의 불균형은 자유시장경제 체제 때문이 아니라 ‘법과 제도의 빈곤’이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경제 체제를 가장 잘 이용할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정식 구성원으로서, 경제 성장을 통해 떨어지는 과실을 조금씩 받아먹는 수혜자가 아니라 성장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289면)




53. ... 유누스는 오직 한 가지 대안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자영업이었다. 유누스는 자영업이 가지고 있는 한 가지 특별히 중요한 장점은 “여성들로 하여금 임금 고용 상황에서 요구되는 희생을 치르지 않고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290면)




54. 슈마허는 ‘성장 모델’이 가장 심하게 공격을 받았던 시기에 세계는 이제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고 썼다. “오늘날 우리가 경제학에서 배우는 전통적인 지혜는 개발이 진정으로 필요한 바로 그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한다. 거대화와 자동화를 맹종하는 경제학은 19세기 사고의 전제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하나도 해결할 수 없다. 완전히 새로운 사상체계가 필요하며 그 체계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상품은 스스로 알아서 돌본다!)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들에 의한 생산’이라는 문구가 그 뜻을 잘 요약한다.” (291면)




55. 슈마허의 비판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아인슈타인이 한 말과 뜻을 같이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문제점들은 그 문제를 만들어낸 사고 수준으로는 풀 수 없다.” (292면)




56. 1986년 ‘이코노미스트’는 “방글라데시에서 우량 채무자를 가진 은행은 오직 그라민은행뿐이다.”라고 선언했다. 그 다음 해 유누스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292면)




57. 그해(1987년) 가을, MIT에서 발행하는 전략과 국제문제 비평지 ‘워싱턴쿼털리’는 유누스가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을 “인간의 기본 권리”로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을 다시 실었다. 유누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하지 말라는 법은 본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금융기관을 가까지 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해 왔다. 가난한 사람들은 담보가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한다. 담보가 금융업의 유일한 근거라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은행들을, 부자는 더 부유하게 만들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들어 경제, 사회, 정치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해로운 동력으로 낙인찍어야 한다.”라고 썼다. (293면)




58. 엄격한 원칙이 없는 대출은 자선에 불과하다. 더욱이 대출이라는 이름으로 베푸는 자선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망가뜨리는 일이다. 따라서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관들은 어떤 대출도 반드시 제때 전액을 회수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93, 294면)




59. 유누스는 유엔이 1948년에 제정한 세계인권선언문 가운데 “모든 사람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여기에는 먹을거리, 옷, 주택, 의료, 필요한 사회 서비스가 포함되며, 직장을 잃거나 병에 걸리거나 장애를 앓거나 남편을 잃거나 나이가 들어서 자기 힘으로 살아가기 힘들 때 안전하게 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제25조 1항에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이 포함되었으면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은 인간의 기본 권리로 공식 인정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모든 인권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인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294면)




60. ... 하지만 갈수록 그것을 점점 더 강하게 느껴요. 그리고 세상은 그것이 중요한 문제임을 보여주었지요. 그라민은행이 계속 회자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죠.“라고 대답했다. (294면)




61. 지난 30년 동안 ‘성장 모델’은 ‘균등 성장 모델’로 바뀌었다가 다시 ‘구조조정’ 모델로 대체되었다. 총체적인 영양 상태를 기준으로 볼 때 세계의 많은 지역(특히 농촌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졌다. (296면)




62. 한 해에 600억 달러를 쓰는 산업이 되어버린 해외원조는 제3세계에 “낙하산을 타고 투하된 상류층 고문”들로 북적였다. (296면)




63. 지난 반세기 동안 개발원조 사업을 특징지었던 시류와 기호, ‘신기술’, ‘새로운 방향’, 끊임없는 ‘정책 제고’와 이 사업을 위해 들어간 수천억 달러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핸콕은 또 “그러나 이 원조기관들은 해마다 직원들에게 두둑한 봉급을 지급하고 원조 사업과 관련된 전 세계의 공무원들과 ‘개발 전문가’, 자문관, 기타 다양하게 놀고먹는 사람들이 특권층 생활을 하는 비용을 부담한다.‘고 썼다. 자원해서 제3세계에 2년 동안 가서 일하는 개발구호단체 직원들은 그들의 ’노고‘를 인정받아 수많은 특혜를 받았다. 중간 관리자금 직원의 경우 주거 수당, 자녀의 사립학교 교육비, 유급휴가 확대, 전근 수당, 술집과 수영장, 테니스장이 딸린 클럽 회원권을 받았다.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꿨을 특혜이다. (297면)




64. 개발구호단체에서 파견된 직원들은 실제로 자기 손에 흙을 묻힐 시간이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은 한 마을에 며칠 또는 몇 시간 이상 머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장에 꼭 가야 할 때면 냉방기가 설치된 도요타 랜드크루저를 타고 간다. 그렇지 않는 날에는 다카에서 냉방기가 돌아가는 집에 있거나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한다. 다카에 있는 1만 명의 외국인들은 마치 점령군처럼 행동한다. 그들은 문에 개발구호단체의 로고를 자랑스럽게 단 깨끗한 승용차를 타고 거리를 달린다. 그들은 현지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클럽에서 사람들을 만나 대부분 굴산, 바나나, 단몬디 같은 호화로운 동네에 모여 산다. (298면)




65. 실제로 개발구호단체가 하는 일에는 가장 은밀한 비밀은 지역 문화에 거의 투자하지 않으면서 그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누린다는 사실이다. (298면)




66. 개발도상국에서는 생활비가 매우 낮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매우 큰 아파트를 임차하고 가정부, 요리사, 보모를 고용할 수 있다. 그리고 어디든 여행할 수 있고, 봉급의 절반 이상을 저축할 수 있다. 구호단체 직원인 부부가 방글라데시로 파견되어 2년이 지나면 고국으로 돌아갈 때 교외에 있는 집의 계약금을 지불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돈을 모을 수 있다. (299면)




67. 그들은 대부분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제3세계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일에 대한 열정을 잃고 마는 것이다. (299면)




68. “그건 우리의 95퍼센트가 돈 때문에 이곳에 오기 때문이죠.” (299면)




69. 자문 일을 하는 서양인은 그라민은행 직원이 여덟 달 일해서 버는 돈을 하루 만에 벌 수 있다. (하루에 500달러 대 2달러) (300면)




70. 세계은행에서 돈을 빌린 가난한 나라들은 모두 오늘날 세계의 개발 모델인 ‘구조조정’

을 고수해야 한다. (302면)




71. 유누스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실험이나 직접 경험을 통해 서서히 발전하는 방식을 좋아했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동유럽의 나라들이 각자 다양한 경제 문제들을 미리 예단된 정책들로 해결하려 하는 것이 오만하고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유누스는 심지어 은행의 지역 책임자들이 하는 일에 개입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303면)




72. ... 더욱이 그는 정부 관리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지. 그러나 서른 살 먹은 사람은 그 반대야. 그는 똑같은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러저러한 것을 바꾼다면 정말 뭔가 이룰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지. (311면)

 

73. 원조금을 수령하기 위해서는 뇌물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런 관행 때문에 원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원조를 “부자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야 할 돈이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에게 이전”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누스는 서양의 일반 시민들이 자신들의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면 매우 분노할 것이라고 했다. (315면)




74. 원조금을 보낼 때 ‘방글라데시’ 라고만 쓰면 안 돼요. 반드시 ‘방글라데시 밑바닥 50퍼센트 사람’이라고 쓰세요. (316면)




75. 그라민은행의 분산 경영과 정보체계는 다른 개발도상국의 은행보다도 소니나 맥도날드 같은 세계적인 기업들과 더 닮았다. (325면)




76. 그러나 이제 그 힘은 다른 곳에서 옵니다. 경험에서 배우는 ‘액션리서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333면)




77. “회원들은 폭풍 피해를 입은 뒤에 오히려 더 단결을 잘했어요.” (348면)




78. 오이라시와 노니는 아침에 폭풍이 남기고 간 흔적을 보았다. “우리는 배 안에 죽어있는 시신들을 보았어요. 아직 살아 있음을 신께 감사했죠.” 오이라시는 회상했다. 집과 재산 손실은 적어도 5년 동안 노니의 결혼을 늦추게 했다. (353면)




79. 그러나 우리는 그라민은행이 그냥 은행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은행이라고 부르는 다른 모든 기관들이 은행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합니다. (375면)




80. “왕은 그때까지 방글라데시의 먼 농촌에서 온 여인, 자기 아들이 죽기 전에 아이스트림을 사 먹으라고 1타카도 줄 수 없었던 가난한 여인과 말해본 적이 없었어요. 만지라는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왕은 충격을 받았지요.” 유누스가 말했다. (395면)




81. 이제 우리는 아침과 저녁 두 끼는 먹어요. 가끔 세 끼를 다 먹을 때도 있고요. 자주는 아니지만요. (404, 405면)




82. 회원들이 외치는 구호인 훈련, 단합, 용기, 근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426면)




83. 그가 강조하는 다섯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금융대출은 인간의 기본 권리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둘째, 자영업은 가난을 이겨내는 빠르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임금 고용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셋째, 개발 노력에서 여성을 가장 우선 고려해야 한다. 여성은 가난의 영향을 가장 심각하게 받으며 아이들을 주로 돌보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넷째, ‘개발’의 개념은 전 인구의 50퍼센트에 해당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확실하게 긍정적으로 바꾸는 행위로 재정립해야 한다. 다섯째, 개발 이론가들의 ‘개념적 모호성’은 가난을 향한 신속하고 즉각적인 공격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427면)




84.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생산의 분산과 지방화”가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공장에서 가정으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예언했다. “모든 개인들이 전자 단말기와 장비들을 소유하고 신용 구매를 하게 된다면 그들은 전통적인 고용 노동자가 아니라 독립된 개인 사업가가 될 것이다.” (430면)




85. 불경기가 거듭되었다. 기업들은 규모를 줄이고 조직을 혁신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설비를 자동화했다. 따라서 일자리는 날마다 점점 줄었다. 브리지스는 그것이 정치인들의 잘못도 아니고 세계 시장의 경쟁 때문도 아니라고 썼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훨씬 더 곤혹스럽다. 현재 사라지고 있는 것은 단순히 일자리의 수가 아니라 바로 일자리 자체이기 때문이다.” (432면)




86. 제인 제이콥스는 ‘생존체계Systems of Survival'에서 소액신용대출 프로그램에 대해 “이단자들이 그것을 생각해냈다. ...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보다 지친 이단자들이.”라고 썼다. (436, 437면)




87. 그라민은행은 절대로 ‘뛰어난 사람들’을 쓰지 않았다. 어려운 조건 아래서도 기꺼이 일할 수 있고 얼마 안 되는 봉급에도 불평하지 않는 지방 출신의 믿을 만한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라민은행은 그 대신 그들에게 안정된 일자리와 다른 사람들을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443면)




88. 양립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목적들을 동시에 성취하는 것이 “사회적인 책임의식이 있는 자본가 기업‘의 특징이다. (444면)




89. 그라민은행은 사업이다. 방글라데시의 땅 없는 여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그라민은행의 사업이다. 그러한 목표 안에서 그라민은행은 이익을 최대로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전통적인 영리기업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그라민은행의 사업은 단기에 이익을 낼 수 없고, 곁에서 볼 때는 장기적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는 것과, 둘째, 경영진이 더 이익이 되는 사업을 발견해도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다. (445면)




90. “이 지구 위에는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10억 명이나 있습니다. 매순간 그 수가 늘어나고 있어요. 오늘날 세계 구조는 가난한 사람들을 만들어낼 뿐 그 숫자를 줄이려는 노력은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여기서 그것을 멈출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수를 10억 명에서 그보다 낮게 그리고 또다시 100 만명 보다 더 낮게, 점점 줄여나가야 합니다.‘ (445면)




91. ‘기회는 우리가 보는 곳 어디에나 있어요.’ (457면)




92. 올해(1997년) 초 137개 나라의 2,6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워싱턴에 모여 세계 최초의 ‘국제 소액신용대출 정상회의’를 열었다. ... 전 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과 전망을 가지고 이 자리를 채우기 위해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는 유누스가 지난 20년 동안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힘들께 싸워온 일에 대해 생각했다. 유누스에게 이보다 감격적인 날이 있을까 하고 상상했다. (45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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