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양심의 자유
이정훈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완전함을 상상하고 나중엔 이 완전함이 실존하는 것으로 믿는다면 오히려 당해 문제를 벗어나게 된다. 차라리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곳에서 대안을 발견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19면)

 

2. 넓게 보면 필자의 '상대주의 양심론'은 주관주의 양심론에 포함된다. 그러나 '상대주의 양심론'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객관주의 양심론을 비판하는 핵심은 양심의 내용을 객관적 도덕기준으로 심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즉, 특정 거부행위가 양심적 거부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그 양심의 내용이 사회다수의 정의관 내지 도덕관에 부합하는가 여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의관이나 도덕관을 객관적 기준으로 설정하고 양심의 내용심사를 하고 이를 근거로 '양심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 것을 비판한다. 둘째는 칸트철학에 근거하여 주관주의 양심론을 취하고 있지만 '보편화가능성'을 통해 양심론을 설명하는 이재승 교수의 입장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다. 뒤에 자세히 다루었지만 이러한 이재승 교수의 논리구조는 특정 양심의 내용이 '보편화가능한가'를 심사하게 되므로, 결과적으로는 객관주의 양심론과 내용심사를 허용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없게 된다. 또한 칸트철학을 근거로 양심논의를 하면서 '양심의 착오' 문제를 주장하는 임미원 교수의 입장과도 구별하기 위해 '상대주의 양심론'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밝혀 둔다. '양심인가, 아닌가'의 문제에서 내용심사를 배제하고, '양심의 착오' 문제에 반대하는 입장이 상대주의적 양심론이다. (20, 21면)

 

3. 전술한 바와 같이 개념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유기체처럼 관계적으로 존재하며 생, 멸 변화를 갖는다. (36면)

 

4. 법준수의무에 대한 학설에서도 법을 준수할 도덕적 의무를 절대적인 의무로 보는 학설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략 법철학자들은 이 의무는 일응(prima facie)의 의무라고 본다. 일응의 준수의무란 '특단의 사정이 없다면 준수해야 한다' 혹은 '달리 도덕적으로 더 강한 이유가 없다면 준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7면)

 

5. 가치판단의 영역에서는 켈젠이 주장하듯이, 어떤 가치체계가 우월한가에 대해 판단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즉 도덕체계의 다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궁극적인 도덕이 명확하지 않는 한, 도덕적인 문제에 최선을 다해 임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각자 최선을 다해 선택하며, 타인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을 힘으로 말살하려 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논쟁의 장으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53, 54면)

 

6. 양심의 착오론은 아퀴나스에게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양심은 두 가지 차원을 가진다. 첫째의 차원은 synderesis이며 둘째의 차원은 conscientia이다. 전자는 최상의 자연법명제를 인식하는 능력으로 절대적으로 오류에 빠지지 않는다. 후자는 synderesis가 파악한 것을 구체적인 사례에 적응하는 능력으로 이는 착오에 빠질 수가 있다고 한다. 즉 syderesis는 예를 들어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와 같은 추상적인 명제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일을 행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착오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양심의 착오론은 양심의 착오가 발생한 경우 다시 말해 conscientia가 착오를 일으킨 경우 관대하게 처리해야 함을 주장한다. (5면)

 

7. 아퀴나스의 주장과는 반대로, 칸트는 양심의 판단은 착오를 일으킬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 이러한 칸트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 존재할 수 있다. 이 비판의 예로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낸 아이히만을 들어 용납할 수 없는 양심적 판단, 즉 착오에 의한 양심적 판단을 설명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재승 교수는 양심적 판단의 정당화 근거로서 주체의 사적 판단을 넘어서는 보편화가능성을 주장한다. 모든 양심에 따른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래서 무언가 그 양심의 내용을 평가할 준거가 있어야 하고 이 준거에 부합하는 양심만이 정당화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56면)

 

8. 임미원 교수가 말했듯이 양심적 판단의 여부는 진리와의 부합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성에 의해 결정된다. (61면)

 

9. 그러나 보편화가능성은 너무도 추상적이다. 또한 '보편화가능성은 무엇인가'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으므로 보편화가능성 여부의 심사자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게 된다. ... (88면)

 

10. 신이 존재하고 이 신의 뜻에 부합하는 객관적, 초월적 양심이 존재한다면 필자 역시 너무나 기쁠 것이다. 그러나 이 객관성은 언제나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변인이 되었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것은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살육과 불합리와 폭압의 정당화 근거가 되었으며 지금도 이것은 권력의 또 다른 이름으로 대중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116, 117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