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소송론
이상돈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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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각을 정치사상적으로 돌려보면 공익소송은 개인주의적 성격이 강한 근대 자유주의 이념에 공동체주의적 관념을 많은 부분 가미하는 경향을 보여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미국에서의 공익소송 논의도 자유주의-공동체주의 논쟁의 전개와 밀접하게 관련지어 전개되었다. 공익소송은 좀더 공동체주의적 경향을 띤다. (9면)




2. 사실 공익소송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때때로 손해전보가 아닌 제도개선에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 즉 승패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와 광범위한 사회적 관심의 유도에 방점을 놓는 것이다. 소송에서 지더라도 그 문제에 대해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제도개선에 영향을 미친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9면)




3.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공익소송에 대한 분쟁해결이 소송 ‘내’의 분쟁해결이 아니라, 소송을 오히려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그 이슈에 대한 여론의 조성과 공론의 형성을 통해 소송의 결과를 ‘의사소통적으로’ 조종하는 매커니즘이 공익소송의 기획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10면)




4. 사회운동으로서의 공익소송은 매우 투쟁적인 성격을 띤다. 대개 공익소송은 잘게 쪼개어지고 흩어진 개인들, 특히 억압받고 소외된 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고, 그 투쟁이 현재의 소송법체계에서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개된다. ... 바로 그런 이유로 공익소송은 새로운 권리화, 즉 새로운 권리유형으로서 ‘말하여지는’ 섬약한 목소리들을 포착해내어 권리‘화’하는 기획을 수행하는 실천이자 사회운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11면)




5. 즉 사적 개인이 소를 제기하면 이를 확인하고 구제해주는 수동적 법원의 상을 넘어서, 소외되었거나 아직 권리화되지 않았던 인권을 캐내어내고 표제화하는 능동적인 법원상으로의 확장을 요구한다. (11, 12면)




6. 이 정의에서 공통된 공익소송의 개념을 구성하는 요소는 1) 주체(공익법운동단체, 공익변호사), 2) 확산이익, 3) 제도의 개선이나 법의 개정 및 판례의 변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18면)




7. 그런데 이 중에서 공익소송 개념은 공익소송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조직에 의해 공익성이 판정되는 신분(또는 주체)편향적 구조를 갖고 있음이 눈에 띤다. 이 편향이 커질수록 공익소송은 사법을 정치화할 위험도 수반한다. 다시 말해 시민성을 가장한 ‘공동선’(common good)에의 상징을 정치(예: 낙천낙선운동)의 영역에서 사법(공익소송)의 영역에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시민단체의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한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18면)




8.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개인이익의 표출방식이 공개화되고 다양해짐에 따라, 실정법보다는 더욱 동태적이고 유동적인 공익결정방식이 요청되게 되었다. 국가의 전통적인 통치기구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언론, 사회단체, 시민운동주체들까지 개별적으로 혹은 연합하여 공론경쟁 속에서 공익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정당성은 법다원주의(legal pluralism)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22면)




9. 이처럼 법이 다양한 영역들에서 다양한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과 관점의 교환절차 속에 머물면, 합법성은 언제나 상호적인 형태로서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22면)




10. 기본적으로 자유주의는 주체가 목적에 우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권리(the right)가 선(the good)에 우선한다는 사고에 기초한다. (24면)




11. 이처럼 합리적 개인에 의한 중첩적 합의를 전제로 하는 자유주의의 난점은 죄수의 딜레마(the prisoner's dilemma)와 무임승차의 문제(the free-rider problem)를 통해 잘 나타난다. 여기서 전자, 즉 죄수의 딜레마는 각자의 행동이 지극히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고립된 채 이루어진 개인들의 결정의 결과는 최적이지 못한, 집단적 비합리성으로 전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5면)




12. 자유주의가 상정하는 합리적 개인은 만일 공동체가 산출될 정도로 타인들의 기여가 이미 충분하다면 자기가 기여하지 않아도 공공재에 대한 자신의 향유가 감소되지 않을 걸로 생각된다. (26면)




13. 그렇기에 공동체주의자들은 개인주의적 전제조건들로부터 출발한 자유주의가 결과적으로 자유 실현의 가능조건들마저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간이 이미 주어진 가치체계 속에서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오류라는 것이다. 즉 우리는 ‘언제나 이미’ 존재했던 비자발적인 공동체에 들어가 있다. 그렇기에 정체성은 문화적이고 언어적이며 종교적인 공동체들에 의해 규정된다. (26, 27면)




14. 이들은 공동선의 가치를 개인의 자유와 권리와 동등한 비중으로 고려할 것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개개이익에 종속되지 않는 공익의 독자성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 때 문제는 공동체에 뿌리내린 인간의 사고와 행위의 복합적 결정체로서의 ‘덕’을 실현하는 기제이다. 덕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중심체는 국가이다. 그처럼 ‘공적인 것’을 ‘국가적인 것’과 동일시한다면, 공동체적 덕의 논거가 전제적인 국가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위험을 지닌다. 즉 공동체주의자들은 오늘날의 거의 모든 공동체가 근대국가라는 강력한 정치체제 내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27면)




15. 하지만 공동체와 공동선의 강조는 자칫 개별적 자유와 자율성을 부정하는, 그리하여 또다시 차이를 억누르는 동질적인 사회구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소수자의 은폐된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힘과 정당화근거로서 공동체와 공동선은, 현대사회의 다층적인 차이의 문제를 단순화 내지 획일화할 위험성을 지닌다. (28면)




16. 이런 공익개념은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절차적인 것이다. 이렇게 절차적인 개념으로서 공익은 물론 합의의 변화에 따라 그 실제 내용이 변화할 수 있다. (29면)




17. 이처럼 흩어져 있는 이익은 흩어져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외받을 수 밖에 없고, 제도를 통해 구제받으려 해도 비용 때문에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결국 공익이란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30면)




18.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공익소송위원회운영규정 제2조도 ‘공익소송’에 대한 개념 정의에서 “공익소송이라 함은, 다중의 확산이익이 있는 소송으로서 ...”라고 규정함으로써, ‘확산이익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30면)




19. 사회적 약자의 권리는 잘게 쪼개져 있는 권리는 아니지만 사회적 약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권리이며, 이와 같은 의미에서 강한 사회적 힘으로 뭉쳐져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흩어져 있는 권리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공익을 ‘소수자, 약자, 피해자의 권리’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30, 31면)




20. “의뢰자가 빈곤한지 여부를 떠나 비용면에서 부담이 되고, 따라서 변호사의 측에서 보면 채산이 맞지 않는 사건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인 당사자의 권리옹호에 그치지 않고 다수의 시민의 공통된 권리를 수호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37면)




21. 우리나라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그 사명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38면)




22. 이와 같이 변호사의 공익활동 의무가 변호사단체의 내부 규칙 등에 맡겨져 있지 않고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는 경우로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다. (40면)




23. 또한 많은 변호사들도 민주노총,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하면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타 영역의 전문성과 결합하여 운동 차원의 공익소송을 제기해가고 있다. (41면)




24. 공익‘소송’은 소송을 통해 사회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며 제도개선을 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무자력자를 도와 소송을 진행하는 무료변론 형태의 변호사공익활동과는 구별된다. 즉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잘게 쪼개져서 사회구성원들 개개인에 게 흩어져 있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라는 사회적 인식이 미흡하며, 그렇기에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권리를 캐어내고 보호해줌으로써 사회여론을 촉진시키고 판례를 축적해가는 걸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42면)




25. 공익소송은 단지 정당한 이익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정당한 이익을 구성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43면)




26. 민주적 의사형성의 보완적 기능은 이제까지는 주로 인권운동과 시민불복종운동에 의해 수행되어 왔다. 그런데 인권운동에서나 시민불복종운동에서나 그 운동주체들이 갖는 정의(또는 자연법적 인권)에 관한 주관적 확신과 그것을 실현하려는 정치적 투쟁이 정작 그 운동이나 투쟁의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복잡성과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이런 점은 현대사회의 법사회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일반적인 통찰이 되었다. (46, 47면)




27. 공익소송은 그것이 주장하는 인권사상에 대한 시민들의 동의가 광범위해질수록, 즉 공론경쟁에서 더 타당한 것으로 승인될수록, 그 주장내용을 실정법으로 제도화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47면)




28. 먼저 공익소송이 되려면 인권을 실현하는 기능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는 공익소송에 의해 보호되는 권리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49면)




29. 공익소송의 정당성은 새로운 인권을 주장하는 목소리들이 시민사회에서 더욱 광범위한 동의와 공감을 얻어냄으로써 형성되고, 그러할 때 실정법으로 제도화하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50면)




30. 공익소송은 ‘법적으로 제대로 보호되지 않았던 이익’, ‘약자 및 소수자의 권익, 시민권, 국가권력으로부터 침해된 시민의 권리’, ‘그동안 제대로 인식되지 못한 권리’의 보호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50면)




31. 새로운 권리를 발견해내는 건 ‘인권을 말함(말하는 행위)’이 갖는 수사학적 호소력에서 비롯된다. (53면)




32. 즉 인권이 한편으로는 자연법적 절대서으로 회귀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한편 단순히 국가가 법으로 ‘이미’ 보장해 주는 경우에만 존재하는 실정법적 권리로 남지 않을 제3의 가능성은 언어 속에, 다시 말해 ‘말함’ 속에 존재한다. 즉 태초부터 어떠한 권리가 절대불가침한 형태로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권리’를 호소하는 행위가 있고, 그 행위가 어떤 사태의 규범적 의미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합의된 의사를 이끌어낼 때 그 사회에서 ‘인권’으로 인식될 수 있다. 이처럼 인권을 말하고, 듣고, 다시 말하는 행위, 즉 인권에 관한 거시적 대화는 ‘인권담론’을 형성한다. (53면)




33. 이처럼 공익소송은 이제껏 인식되지 못하였던 혹은 저평가되었던 권리를 호소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지닌다. 거기서 이끌어내어진 새로운 판결이 ‘규범적 의미에 대한 사회적 설득과 합의의 산물’이라 전제한다면, 공익소송운동이 소송이라는 도구를 갖고 인권담론에 참여하는, 하나의 ‘강력한 실천’이 될 것이다. (55면)




34. 즉 사회적으로 가시화된 요구를 받아 끌어안는 게 아니라, 요구 자체를 능동적으로 찾아내며, ‘조직화’한다. (56면)




35. 더 나아가 집단적 사익이 공익소송이라는 우산 아래서 모조리 인권의 옷을 덧입을 때, 인권개념이 갖는 상징성과 선언적 의미가 희석될 위험이 있다. 새로운 인권실현이라는 ‘미사어구’를 앞에 내세워 공익소송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장시킨다면 인권은 단지 언어적 ‘수사’ 차원에 머물고 만다. (57면)




36. 그러나 가치판단의 주체가 일부 시민단체나 이익집단에 국한된다면, 이 역시 정치화될 위험이 다분하다. (58면)




37. 이렇게 작게 보이는 이유는 그런 권리를 관철하는 힘이 강력한 사회적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뭉쳐 있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60면)




38. 요구 자체를 능동적으로 찾아내며 또 조직화한다. (65면)




39. 어떤 단체든 간에 시민성의 원천은 그 조직의 활동에 기반이 되는 재정이 국가(행정, 정치)로부터 또는 산업(경제, 시장)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민들이 그 조직의 시민운동 모습을 보고 자발적으로 내는 작은 기부금들에 의해 마련되어야 한다. (67면)




40. 이와 함께, 조직의 핵심 구성원들이 관료가 되거나 정치인이 되는 권력과의 유착이 없어야 한다. (67, 68면)




41. 공익소송제도를 설립하려면 인권실현과 확산이익보호라는 요소 이외에 소송주체의 공익성과 시민성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71면)




42. 선정당사자제도(민사소송법 제53조)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는 다수자가 그들 중 1인 또는 수인의 대표자인 선정당사자로 뽑아서, 그의 이름으로 소송을 수행하고 판결을 받으면 효력이 다수인 전원에게 미치도록 하는 제도이다. (77면)




43. 부권소송은 주정부가 피해자들을 대신해서 소를 제기하는 소송형태이다. (96면)




44. 부권소송은 분명 집단소송보다 공익소송의 윤곽을 훨씬 더 많이 갖추고 있다. 그러나 부권소송이 공익소송으로 기능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한계가 남아 있다. 그것은 소송의 주체가 갖추어야 할 공익성이 ‘시민성’과 절연된 채 관료들의 엘리트주의적 결정능력에 의해 그 내용이 좌우된다는 점에 있다. (100면)




45. 집단소송보다 좀더 공익소송화된 부권소송, 이보다 좀더 공익소송화된 모델로 단체소송을 들 수 있다. 단체소송은 공익소송이 거의 완성된 형태를 띤다. (103면)




46. 단체소송은 일정한 자격을 가진 단체가 일정한 분쟁에 있어서 불이익을 입은 자를 대신해서 소송을 제기함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103면)




47. 즉 단체소송에 의한 권리확인은 인권형성적 측면을 매우 강하게 가진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단체소송은 공익소송의 ‘인권실현’이라는 요소를 집단소송에 비해 좀더 많이 충족한다고 볼 수 있다. (108면)




48. 독일의 단체소송자격을 개관하고 종합해 보면, 한편으로는 1) 공익목적의 정관, 공익목적의 (인적, 물적) 수행능력과 그것을 입증하는 활동업적,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2) 비영리성과 시민의 자유참여로 요약할 수 있다. 전자는 단체소송주체의 ‘공익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시민성’을 요구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공익성과 시민성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시민성의 토대 위에서 공익 개념을 지속적으로 반성되고, 변화/발전해 나갈 수 있고, 시민성 또한 공익성에 지향되지 않고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0, 111면)




49. 왜냐하면 공익소송은 확산이익의 표지를 충족해야 하고, 이는 개별피해는 작아도 피해자집단은 커야 하므로, 공익에 대한 상호주관적 확신 아래서 원고가 됨을 수락할 수 있는 피해자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3면)




50. 더욱이 그 경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른바 ‘무임승차’의 문제, 즉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 공익은 함께 누리려는 경향은, 사익이 안정되게 추구될 수 있는 토대마저 붕괴시킬 위험을 지닌다. (128면)




51. 실제로 공익법운동을 전개하는 단체들은 법원의 권리구제기능보다도 정책형성기능에 더 중점을 둔다. 그런 경향은 입법, 행정영역에서 나오는 해결책에서 만족을 얻지 못한 사안들을 법원에 가져와서 실현해 달라는 주장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법원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로 나타난다. (129, 1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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