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클라스 루만으로의 초대 카이로스총서 10
게오르그 크네어.아민 낫세이 지음, 정성훈 옮김 / 갈무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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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는 좌파에게는 너무 많은 규범과 너무 적은 이론을 학인하기 때문이다. (32면)




2. 나는 우리 사회가 이전의 모든 사회보다 더 긍정적인 속성과 더 부정적인 속성을 함께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33면)




3. 루만에 대한 수용 양상은 1970년대 후반에 그리고 1980년대에 더욱 급격하게 바뀐다. ... 주체철학에 대한 비판, 인식론에 있어 구성주의적 고찰의 수용, 탈중심화라는 모티브, 자연과학과의 병행 발전, 특히 생물학과의 병행 발전 등을 떠올려볼 수 있다. (33, 34면)




4. 사회학은 일차 시선의 학설이 아니라 이차 시선의 학설이다. (35면)




5. 특정한 환경의 자극이 체계에서 가능한 단 한가지 반작용만 허락한다는 뜻에서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47면)




6. 하지만 우리는 그 체계가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어떻게 조작하는지 볼 수 없다. (47면)




7. ‘제어되는’ 것(이런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동시에 ‘제어하는’ 것(이런 역할을 부여받은 것)을 제어한다. (Glanville, 49면)




8. 기능 개념은 사회적 체계의 동역학적 면모, 즉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체계구조의 유지와 안정을 보장해야 하는 사회적 과정을 가리킨다. (56면)




9. 루만은 다면적으로 분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가치 지향의 그러한 통일적 구조가 쉽게 형성될 수 없다고 본다. (67면)




10. 사회적 체계들은 없어져버린 수행 기여를 다른 대안적 수행을 통해 대체할 수 있다. ... 이러한 변경은 변화된 조건에서 그 체계가 계속 존속할 수 있게 하며... (67면)




11. 사회적 체계들은 가능성들을 배제함으로써 세계복잡성을 감축한다. .. 환경은 항상 체계보다 더 복잡하다. (70면)




12. 그에 반해 살아있지 않은 기제들은 자기생산적 체계들이 아니라, 타자생산적으로 조직된다. (79면)




13. 자기생산적 체계들은 그 폐쇄성에 근거해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는다. 그런 한에서 자기생산적 체계들은 자기관계적으로 혹은 자기지시적으로 작동한다. 생명 체계들의 이러한 자기관계성은 재귀성 개념을 통해 더 구체화된다. (80면)




14. 자기생산 조직의 폐쇄성은 그 개방성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82면)




15. 신경체계는 그 활동에 있어 자기 자신과만 재귀적으로 관련을 맺는 작동상 닫힌 체계이다. (83면)




16. 신경체제의 폐쇄성에 관한 마뚜라나와 바렐라의 테제와 관련해 보면, 이런 결과는 인식이론과 지각이론에서 더 풍부한 성과를 낳는다. 그 성과에 따르면 지각은 외부세계를 적합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없고 오히려 지각이 뜻하는 바는 외부의 세계를 체계 내부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84, 85면)




17. 모든 소통은 매순간 자신의 후속 소통을 산출한다. (101면)




18. 의미를 구성하는 것은 현행성과 가능성의 구별이다. (108면)




19. 의미의 사용을 통해 복잡성이 계속 생성된다... 각각의 의미는 모든 복잡성 속에 함축되어 있는 선택의 강제를 재정식화하며... (111면)




20. 루만은 소통을 정보, 통지, 이해를 함께 조합하는 3항의 선택 과정으로 기술한다. 선택은 여러 가능성들로부터 골라내는 것이다. (114면)




21. 이해는 소통 사건의 구성요소이지 의식의 사건이 아니다. (118면)




22. 그에 반해 자기생산적 체계 이론에서 출발점이 되는 문제는 안정된 체계 구조의 재생산이 아니라 체계 요소들의 계속되는 재생산이다. 자기생산의 진전은 통일적이고 불변하는 체계 구조의 유지에 긴박되어 있지 않다. 체계의 요소를 토한 체계 요소들의 계속되는 재생산은 사정에 따라서는 광범한 -혁명적일 수도 있다- 구조 변동을 통해서야 가능해진다. (125면)




23. 하나의 구조는 어떤 선택을 미리 취하는 것이다. (126면)




24. 구조는 배제를 통해 사전-선택을 하는 반면, 과정은 연결을 시도하면서 사전-선택을 수행한다. (128면)




25. 분명한 점은 관찰이라는 작동이 구별과 지칭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구성요소들의 조합이라는 것이다. (131면)




26. 저편으로 넘어감(스펜서 브라운의 crossing)은 물론 가능하지만, 구별의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건너가는 것은 언제나 더 나아간 작동을 요구하며 따라서 시간을 필요로 한다. (132면)




27. 관찰은 언제나 한 체계의 구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체계에 의해 작동적으로 산출되는 구성이다. (133면)




28. 관찰은 특정한 구별을 사용하지만, 그 구별을 동일한 순간에 관찰할 수는 없다. (135면)




29. 이차 등급 관찰, 즉 관찰의 관찰은 특권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이차 등급 관찰과 일차 등급 관찰 사이에는 어떤 위계적 질서도 성립하지 않는다. (136면)




30. 하지만 관찰의 관찰은 자신의 관찰에 대한 반성적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136면)




31. 이차 등급 관찰자는 관찰된 체계가 그것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없다는 점을 관찰할 수 있다. (137면)




32. 이런 식으로 우리는 이차 등급 관찰의 차원에서 다맥락적 세계에 이르게 된다. 다맥락성이 뜻하는 것은 다수의 구별들이 있고 다수의 서로 다른 맥락들이 있으며, 이들 맥락들은 하나의 아르키메데스적 관찰지점에 의해 서로 옮겨지면서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138면)




33. 역설적 진술의 특징은 두 값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이 값과 저 값 중 어느 한편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141면)




34. 역설에 대한 사례들은 오랫동안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하는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 이야기가 고전적이다. ... 이 사례를 통해 역설을 정의하는 두 가지 징표를 얻을 수 있다. 1) 역설적 진술은 하나의 전칭 기술(“모든 크레타인”)과 관련되며, 이런 전체성은 진술이 자기 자신을 포괄함을 통해서만 달성된다. 역설적 진술은 자기지시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 진술이 진술하는 것은 그 진술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2) 역설적 진술은 대립쌍(거짓말쟁이/거짓말 안하는 사람)을 포함하며, 그 결과 하나의 구별을 갖고 작동한다. 따라서 역설적 진술은 두 가지 조건, 자기지시의 조건과 하나의 구별을 이용한다는 조건에 근거한다. 두 가지 조건을 올바르게 조합한다면,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141면)




35. 전부 다를 보고자 의도하는 모든 관찰은 자신을 자기지시적으로 포함하자마자 하나의 역설에 연루된다. (141면)




36. 루만의 말에 따르면, “모든 관찰은 그 관찰 나름의 구별을 이용하며 그래서 구별된 것들의 동일성이라는 역설을 관찰의 맹점으로 이용하며, 그 맹점의 도움으로 관찰할 수 있다.”(Luhmann 1990, 123) (142면)




37. 그런데 이는 역설의 등장이 “규정가능성의 상실, 즉 그 다음 작동을 위한 연결능력의 상실(sosy, 59)과 결부된다는 걸 뜻한다. 근저에 놓여있는 역설이 해소되거나 보이지 않게 될 때만 연결능력은 보장될 수 있다. 이것이 뜻하는 바가 바로 탈역설화 개념이다. 루만은 이런 식으로 규정 불가능한 복잡성(두 관찰값 사이에서의 탈출구가 없는 진동)이 규정 가능한 복잡성(연결능력의 보장)으로 옮겨진다고 말한다. 관찰자는 관찰의 근저에 놓여있는 역설을 점차 없어지게 함으로써 자신의 관찰 진동들을 진전시킨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일어나는가이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답변은 없다. 탈역설화의 모든 형식은 우연적인 결정에 근거하며, 이런 결정은 다르게도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건 관찰자가 그의 관찰 진동을 진전시키고자 한다면, 관찰자는 반드시 근저에 놓여있는 자신의 관찰을 다루어야 한다. (142면)




38. 복잡성과 체계분화 사이에 어떤 단선적 관계도 없다는 점은 ... (152면)




39. 사회체계의 분화는 각 부분체계에 대해 세 가지 관계 형성 가능성을 창출한다. (1) 그 부분체계가 속하며 함께 실행하는 전체체계인 사회와의 관계, (2) 다른 부분체계들과의 관계, (3) 자기 자신과의 관계. (WdG, 635). 사회의 부분체계들의 분화형식과 관계 형성 가능성으로부터 한 사회체계의 구조를 읽어낼 수 있다. (154면)




40. 루만은 경직된 구조 개념을 역동적 관점으로 대체하며, 자기생산적 체계들의 경우에 ‘역동적 안정성’이라고 말한다. (156면)




41. 확실성을 부여했던 우주론적 세계상의 힘은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함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170면)




42. 사회의 복잡성은 말하자면 새롭게 다루도록 강제를 받는다는 것이다. (171면)




43. 사회의 상이한 영역들은 의미론적으로 자율화됨으로써 주된 사회 분화의 새로운 형식이 성립한다. 그 부분체계의 경계는 더 이상 분절적으로 분화된 사회처럼 함께 사는 지역을 기준으로 그어지거나 계층화된 사회처럼 상대적으로 넘어서기 어려운 계층을 기준으로 그어지지 않는다. 그 경계는 이제 배타적이며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사회적 기능들에 의해 그어진다. 사회의 기능적 분화가 바로 현대 사회의 주된 분화형식이다. (172면)




44. 경제적 소통은 정치적 및 법적 환경 변화에 오직 경제적으로만, 즉 지불/비지불의 구별을 다루면서 반응할 수 있다. 정치와 법은 경제적 작동에 의해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다. 정치와 법은 지불에 대한 정치적 및 법적 환경 조건들을 수립하는 한에서만 지불을 조절할 수 있다. 어떤 체계의 개입은 -예를 들어, 국가 환경 프로그램을 위한 생산관련 세금을 인상하는 정치적 결정은- 다른 체계에서는 그 정치적 의도를 좌절시킬 수도 있는 체계고유의 작동을 -예를 들어, 생산입지를 외국으로 옮기는 걸 통해- 낳을 수도 있다. 체계/환경 패러다임은 이런 식의 전개를 정치적 체계가 아직 완벽하게 형성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체계들 사이의 극복할 수 없는 작동적 차이라고 설명한다. ...(각주 13) 그럼에도 기능적 분화 이론의 주요 이론가들은 전체의 한 부분을 통해 전체를 조절할 수 있다고 보는 정식화들을 그간 선택해왔다. 예를 들어 군터 토이브너(Gunther Teubner)는 “성찰적 법을 통한 사회조절”이라는 테제를 내놓았다(Teubner 1989, 81ff). (175면)




45. 기능적 분화 이론의 루만식 변형태가 흔히 비판받는 내용은 상이한 부분체계들의 자율성을 이론적으로 너무 엄격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다. ... 뮌히는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종교적, 학문적 행위 담당자들과 조직들의 노력 속에서 그들이 서로 행위를 조율하며 최소한 잠재적인 공동의 관점을 요구한다고 보며, 이것이 기능체계들이 작동상 자율적이라고 주장하는 루만에 대한 반증이라고 본다. (180면)




46. 한 체계는 그 체계의 작동 속에서 언제나 자기 자신과 동시에 타자, 즉 환경을 함께 지시한다. (187면)




47. 개인은 자신 또한 이차 등급의 관찰에 노출시켜야 한다. 이는 우리 시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개인은 그가 어떻게 관찰하는지, 그리고 타자를 어떻게 관찰하는지 관찰해야 한다. (204면)




48. 관찰자에게 그의 입지점이 상대적이라는 점과 자기관찰이란 역설에 빠질 수밖에 없는 점을 보여주는 루만의 이차 등급 관찰 이론은 사회가 본래 어떠하며 심지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해 가르쳐주는 시대 진단에 대한 정식화를 배제한다. 더구나 이차 등급 관찰 이론을 일관되게 적용할 경우 또 다른 물음이 제기된다. 그 물음은 사회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관찰하는가 그리고 자기관찰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가이다. (213면)




49. 미국의 조직사회학자 찰스 페로우Charles Perrow는 연구위원회가 “이런 상황에서 무엇이 틀렸고 그 대신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규정하며 진술하는 것은 사후에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215면)




50. 위험부담은 시간의 문제이며, 미래의 문제이다. (216면)




51. 미래의 잠재적 손상을 줄이기 위해 현재의 결정 자체가 미래를 선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통찰을 통해 위험부담 연구는 위험부담이란 피할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217면)




52. 위험부담에 대한 연구나 실천적으로 위험부담을 다루는 것은 취상급에서 비교급으로 바꾸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217면)




53. 시간 차원에서는 아직 알 수 없는 미래의 문제가 은폐되며, 사회적 차원에서는 결정자의 문제가 은폐된다. (218면)




53. 어떤 손상이 결정의 결과라고 보인다면, 즉 결정에 책임이 귀속된다면, 우리는 위험감수이고, 결정에 의한 위험감수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고 어떤 손상이 외부에서 유발된 것으로 보인다면, 즉 환경에 책임이 귀속된다면, 우리는 위해라고 부른다. (Soziologie des Risikos, 30f) (219면)




54. 과거와 미래의 불연속성이 거의 모든 현재 속에서 어떤 결정을 요구하는 현대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결정에 귀속시키게 된다. (220면)




55. 위험부담/위해의 구별이 특히 겨냥하는 것은 위험감수 행동의 사회적 측면이다. 누가 결정자이고 누가 해당자인가, 즉 결정이 누구에게 위험감수이고 누구에게 위해인가? (221면)




56. 위험사회의 저항운동은 더 이상 경제적 분배정의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며 저항의 새로운 유형, 즉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위험한 행동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거부”에 초점을 맞춘다(Soziologie des Risikos, 146). 사회 운동은 결국 위험부담/위해 형식을 위해의 측면으로부터 보고 이를 통해 결정의 책임귀속 문제를 가시화시키는 사회의 관찰자이다. (222면)




57. 윤리는 도덕에 대한 반성이론... (228면)




58. 루만은 철학적 윤리 구상들이 지금까지 눈감아왔던 문제인 도덕의 주요한 문제점 중 하나가 도덕적 소통이 매우 자주 갈등을 만들어 내거나 갈등을 첨예화게 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230면)




59. 이 진술은 기능적으로 분화된 현대 사회가 도덕 소통을 통해 통합될 수 없다는 점을 가리킨다. (232, 233면)




60. ‘비판적 합리주의’, ‘비판이론’ 등은 언제나 더 나은 앎이라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 이론들은 흠잡을 데 없는 도덕적 충동과 더 나은 통찰을 갖고 경합하고 있는 기술자라고 자신을 내세운다. (239면)




61. 이데올로기 비판자는 언제나 동시에 또한 이데올로기이다. (240면)




62. 사회적 체계 이론은 대안적 가능성들을 밝히려는 시도도 포기할 필요가 없다. 다른 가능성을 찾아내고 가능한 대안들을 서로 비교하는 것, 즉 기능적으로 등가적인 문제해결 가능성들을 대립시키는 것이 루만이 구상한 등가적 기능주의의 방법론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이 지점에서도 비판적 사회학과 사회적 체계이론이 나란히 갈 수 있는 지점이 보인다. (24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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