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생애와 사상 에버그린북스 13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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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그(베만 박사)의 수업을 받는 동안 그가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언제나 세심한 준비를 해가지고 온다는 사실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그는 내게 의무 완수의 본보기가 되었다. (11면)




2. 특히 나는 학문적 성과에 대한 그(카를 부데 신학교수)의 간결하고 빈틈없는 설명을 좋아했다. 그의 강의가 나에게는 하나의 예술적 즐거움이었다. (19면)




3. 그때 나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탄호이저’를 들었다. 나는 이 음악에 너무나 압도되어 며칠 동안 학교 수업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 없을 정도였다. (20면)




4 빈델반트의 강점은 고대 철학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그의 세미나는 실로 나의 대학 시절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24면)




5 1899년 여름 나는 베를린에서 주로 철학 서적을 읽으며 지냈다. 나는 고대 철학과 근대 철학의 주요 저작들을 읽어두고 싶었다. (30면)




6. 그러나 설교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이제 내적인 욕구였다. 주일마다 모여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생존의 궁극적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34면)




7. 나는 예수의 생애에 관한 문제의 영역에서 바로 원시 기독교에 관한 문제로 들어갔던 것이다. (41면)




8.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사도 바울의 “우리는 진리를 거슬러서는 아무것도 행할 힘이 없습니다. 다만 진리를 위해서만 힘이 있습니다”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64면)




9. 결정적인 것은 처음부터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정신적, 윤리적 진리가 인간에게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67면)




10. 기독교의 본질은 세계 부정을 거쳐온 세계 긍정이다. 예수는 세계 부정의 종말론적 세계관 속에 활동적 사랑의 윤리를 제시하고 있다. (69면)




11. 1903년과 1904년은 모든 자유 시간을 바흐에 바쳤다. (75면)




12. 그랜드 피아노는 이 부자연스러운 풍부한 음감을 얻는 대신 피아노 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잃었다. (98면)




13. 지금 실행하기로 한 이 계획을 품은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그 근원은 학생 시절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근심에 시달리고 있는데 나만 행복한 생활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 1896년 어느 청명한 여름날 아침....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조용히 생각해본 끝에 서른 살까지는 학문과 예술을 위해 살고, 그 이후부터는 인류에 직접 봉사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102면)




14. 무슨 일에나 가치를 발견하고 완전한 책임감을 갖고 헌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자연적으로 주어진 일 대신 비상한 일을 목표로 삼을 수 있다. (108면)




15. 활동하는 시간이 찾고 기다리는 시간보다 더 긴 사람들은 행복하다. 자신을 완전히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이러한 행운아들은 겸손해야만 한다. 시련이 오더라도 흥분하지 말고 “당연히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09면)




16. 내가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별로 말을 하지 않고도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년간 나는 말에도 정력을 쏟았다. 신학 교수직과 목사직에 기꺼이 종사했다. 그러므로 나의 새로운 활동은 사랑의 종교에 대한 설교가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111면)




17. 그러나 이렇게 다니면서 경험한 사랑에 비한다면 내가 겪은 굴욕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132면)




18. 그 이후부터 나는 줄곧 어떤 문제의 본질을 그 자체로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는 방법에 관해서도 파악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껴왔다. (137면)




19. 나는 아프리카에서의 활동이 곧 예술가로서의 나의 생애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생각에 익숙해 있었고, 그래서 손가락과 발을 사용하지 않고 녹슬게 하면 단념하기가 더 쉬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녁 우울한 마음으로 바흐의 파이프오르간 푸가를 치고 있었을 때 아프리카에서의 자유 시간을 내 연주 솜씨를 보완하고 심화하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동시에 나는 단 하나의 곡에 수주일, 또는 수개월씩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바흐, 멘델스존, 위도르, 세자르 프랑크, 막스 레거의 작품을 하나씩 붙들고 가능한 대로 상세하게 연구하여 모두 암기해 버리기로 결심했다. (165면)




20. “사실이지 우리는 뭐니뭐니해도 모두 아류에 지나지 않네.” (166면)




21. 문화의 파국이 세계관의 파국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된 문화의 이상은 그것이 뿌리박고 있는 이상주의적 세계관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무력해지고 말았다. (169면)




22. 사랑의 윤리는 행동의 윤리로서 그 본래의 바탕이었던 세계 및 인생 부정의 세계관에서 뛰쳐나와 세계 및 인생 긍정과 결합함으로써 정신적 윤리적 세계의 구현이라는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172면)




23. 문화와 세계관에 대한 명상을 통하여 내가 도달한 철학의 중심지대가 실제에 있어서는 아직 탐험되지 않은 땅임을 알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76면)




24. “나는 살려고 하는, 생명에 둘러싸여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178면)




25. 아무런 사상도 없는 현대의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이 지식과 능력과 권력의 이상 속에서 비틀거리고 있는 데 반해 사고하는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은 인간의 정신적 윤리적 완성을 다른 모든 진보 이상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최고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181면)




26. 남들은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렇게 생명을 구해주며 다가올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기 위하여 일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날마다 커다란 은총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182면)




27.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성껏 요리하는 것이지요” (190면)




28. 이 몇 해 동안 나는 얼마나 훌륭한 경험을 했던가! 아프리카로 떠날 때 나는 세가지 희생을 각오했었다. 즉, 파이프오르간 예술을 단념하고, 그렇게도 애지중지하던 대학 교직을 버리고, 물질적 독립을 상실하게 되어 앞으로의 생활을 친구들의 도움에 의존할 각오를 했었다. 나는 이 세가지 희생을 치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까운 친구들만이 알고 있었다. ... 이미 바친 세가지 희생이 면제되었다는 것은 나에게는 고무적인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나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비참한 전쟁 기간에 겪어야 했던 온갖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고 여하한 어려움이나 체험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221면)




29.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인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이다. (227면)




30. 나의 삶에는 두가지 체험이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세계가 말할 수 없이 신비스럽고 또 고뇌에 차 있다는 인식이고, 다른 하나는 인류의 정신적 쇠퇴기에 내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에 대한 외경심이라는 윤리적 세계 긍정과 인생 긍정으로 나를 인도해준 사고를 통하여 이 두가지 체험을 극복할 수 있었다. 나의 삶은 이러한 원칙 속에 의지할 곳과 방향을 발견했다. (245면)




31. 근본적인 사상이란 세계에 대한 인간 관계와 삶의 의미와 선의 본질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하는 사상을 말한다. ... 그와 같은 근본적인 사상은 스토아 철학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나는 스토아 철학을 위대하다고 생각했다. (251면)




32. 생에 대한 외경심의 윤리는 보편적인 것으로 확대된 사랑의 윤리이다. (259면)




33. 내가 비관적이냐 낙관적이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 나는 나의 인식은 비관적이나 내 의욕과 희망은 낙관적이라고 대답한다. (2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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