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근처에는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작은 토스트 가판대가 있다. 주인 아주머니는 처음 갔던 날부터 꼭 내가 단골인 것처럼 스스럼 없이 스몰 톡을 시도하셨고, 응원을 담은 잘 가라는 인사는 살갑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너무 바쁘고 정신 없는 하루를 앞두고 있을 때만 아껴 먹던 소중한 토스트였는데, 최근 나누었던 대화 때문에 이제 차마 선뜻 갈 수 없게 됐다.
항상 여유롭게 출근하는 편이라 나보다 앞서 온 손님과 정겨운 대화를 나누는 아주머니를 느긋하게 기다린 날이었다. 아주머니는 꽤 긴 시간을 기다린 내게 미안하셨는지 유독 그날따라 ‘내 편’에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를 향한 아주머니의 상냥함은 한 쪽 끝으로는 다른 사람을 거세게 할퀴었다. 지하철로 출근하는 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장연의 출퇴근 시위를 비난한 것이다.
무척 당황한 내가 여유롭게 나오는 편이라 괜찮다고, 내가 ‘그 쪽’이 아니라고 에둘러 말했는데도, 아주머니는 토스트 굽기에 열중하느라 내 암시를 알아차리지 못하신 건지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라는 말로 비난을 이어갔다.
한번도 ‘이 쪽’이 아녔던 날이 없었던 나는 매번 그렇듯 토스트와 함께 다정한 인사를 받고도 얼얼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 날은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당연히 모두가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같은 도시에 살면서,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너무나 다른 곳을 향해있다는 감각은 더없이 날 외롭게 만들었다. 그분의 따스함을 이미 느꼈기에 더 시리게 다가온 감각이었다.
그런데 그 날 느낀 외로움이, 그렇게 응어리져서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면서 차츰 녹는 기분이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것에 대해서만 생각하지 않고, 나와 같은 것에만내 편에게만 마음을 쓰지 않는 글이 다시 내게 온기를 불어넣었다.
경험을 넘어 겪어보지 않은 시공간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건져 올리며2부 공단과 구디에서 일하고 살아가고, 다시 들여다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기꺼이 품을 들여 어여삐 보는3부 회색 도시를 넘어 모자이크 도시로 글이 오랜만에 참 따스했다. 저자와 나란히 서서 바라보니 공단과 조선족이라는 납작한 이미지로만 재현됐던 구로가 더없이 풍성해졌고, 이런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가 한층 더 살만한 곳으로 보였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참고문헌 페이지가 따로 있지 않은 것. 이미 읽어본 책들의 이름은 반가웠고, 처음 접한 책의 제목들은 꼼꼼히 기록했다. 어쩌면 그 책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녹이다 보면 다시 토스트를 먹으러 갈 수도 있겠다. 그리고 아주머니처럼 해사하게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할 수 있을지도. 저는 전장연의 출퇴근길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