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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시험기간에 카페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다닌다.
물론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절대 달가울 리 없는 말이지만, 직장인이 된 이후로 카페에 가는 건 점심시간에 길어야 15분 정도 앉아 있다 일어나는 게 전부가 됐기 때문이다. 근데 공부를 하기 위해서 혹은 과제를 하기 위해서, 아니면 취준 등등을 하기 위해 스타벅스에 간다? 출근 말고 할 일이 있어서 카페에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부러워진다. 오로지 카페에 앉아 있기 위해, 카페에서의 시간을 '음미'하기 위해서 할 일을 잔뜩 리스트업하고 비장하게 노트북을 들고 가보기도 했지만, 일이 있어서 스타벅스에 가는 것과, 스타벅스에 가기 위해 할 일을 만드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누구보다 부럽다. 공부도 과제도 취준도 아닌 무려 '일'을 스타벅스에서 할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은 돈 쓰러 가는 곳에서 돈을 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부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에세이를 읽다 보니 스타벅스와 얽힌 내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샷이 들어간 음료는 일절 먹지 못했던 내가 시애틀로 교환학생을 가서 라떼 맛을 처음 알게되고, 그렇게 라떼에서부터 지금의 '얼죽아'가 되기까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커피의 역사는 스타벅스에서, 스타벅스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벅스 카드 발급하는 법을 몰라서 친구를 앞세워 들어갔던 여의도 스타벅스, 항상 친구랑 2인용 바 테이블에 마주앉아 발을 달랑거리며 공부했던 학교 스타벅스, 얼떨결에 오픈런한게 되서 어리둥절 벚꽃MD를 샀던 인천공항 스타벅스… 지점이 많으니 여기저기 추억이 있는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시즌 종료된 한정메뉴의 이름도 잠시 생각해보면 다 떠오르는걸 보니 스타벅스는 역시 내게 그냥 프랜차이즈 이상의 의미인가보다.
그리고 거의 300미터 마다 스타벅스가 하나씩 보이는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카페에 앉아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옆 테이블의 이야기에 정신이 팔리거나, 수없이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을 주게 되는 것처럼 작가의 에세이는 더없이 친밀하고 또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런 면에서 사실 에세이보다는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따옴표도 없이 쓰인 '대혼파망'이 내가 모르는 사자성어인줄 알고 검색해봤다가 아연실색했다..) 스타벅스 컵 사진 밑에 있을법한 짧은 메모랄까. 그 덕에 또 작가의 글 위로 내 추억이 겹쳐보였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어쩄든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어 내린 뒤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가 진짜로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건 스타벅스가 아니라, 과제를 해야 하니 스벅이나 갈까, 하던 그때와 그때의 나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바리바리 할 일을 싸 들고 가서 꾸역꾸역 스타벅스에 앉아있는 건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그 장소라도 가서 나와 시간을 뺀 모든 것들을 불러오는 일이고. 익숙한 자리, 익숙한 메뉴같이 모든 것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으려고.
이 에세이를 참고해서 내년엔 나도 주제를 잡아 일 년 내내 일관적인 일기를 써볼까 한다. 내 '스타벅스 일기'는 어떤 일기가 될지, 벌써부터 기분 좋은 고민이다.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지원 받아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