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이 책은 우치노 겐지가 만든 두 번째 시집으로 1924년부터 1930년 조선과 일본, 중국에서 지은 시들로 구성이 되어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아름다운 서정적인 시와 사실적이면서 우울한 무산계급의 모습들이 담긴 반제국주의적인 시가 주로 담겨있다.
“모두 나와라
준비하라!
항아리 늘어놔라, 씻어라
볕에 말려라
그리고 무며, 배추며
꾹꾹 담아라 꾹꾹 담아, 꾹꾹 눌러 담아”
어느 시골 김장 풍경의 모습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그의 시가 한 문장이 선들이 되고, 또 한 문장이 선이 되어 겹쳐 지면서 추워지는 겨울의 길목에서의 그림이 조금씩 채워져 간다.
삶의 힘든 모습은 전혀 담지 않았다. 생동감이 넘치는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담은 그는 생전 보지 못한 풍경에 홀린듯 하다.
“거뭇거뭇 모여든 머리머리머리·····가
위를 보고 있다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건장한 팔
기와처럼 푸르스름해진 얼굴-
때가 낀 셔츠에 각반을 찬 인부 아닌가
전신주에 한 사내가 늘어져 있지 않은가”
아주 사실적인 표현이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힘든 여정들이 마치 시에 녹여져 있는 것 같다. 시골에서 상경한 노동자의 죽음이 담담하게 쓴 글에서 사상적인 문제로 인하여 수시로 경찰서로 잡혀가서 고초를 심하게 겪어야만 하였던 그의 고단함이 표현되었는지도 모른다. 경찰서에서는 그를 재제하는 일이 많았지만 오뚝이처럼 그는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무엇이 그의 가슴속에 크게 자리 잡았는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기를 반복하였지만 그의 마음을 다 이해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한 글들이다. 그에 관한 다른 시집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랜 병고에도
기죽지 않는 아내는
어서, 실컷 일하고 싶다며
봄을 기원하는구나
하물며 사내가 되어 가지고
오늘을 고민하고 내일을 괴로워해 봤자
옷은 단벌이 되고
죽 한 그릇만 홀짝여 봤자-
아아, 무엇이 이다지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는가?”
아내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글에 가득하다. 그녀도 함께 있는 하루하루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지만 가난은 그림자처럼 그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고, 벗어나기에는 힘겨웠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였다.
넉넉하지 못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하여 40대의 우치노 겐지는 결핵에 잠식 당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연속하여 불행이 닥쳤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두 자식을 건사하기 위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으나 그녀는 곧고, 넓은 길을 걸었다. 60이 넘은 나이인 1965년 그녀와 그의 시를 묶어 시집을 발표한다. 그리고 남편의 모든 문필 작업을 정리한 「아라이 데쓰의 모든 작업」을 내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를 사랑했던 만큼이나 그의 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데 생을 바쳤다. 사랑과 그리움의 힘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