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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달리는 소년 ㅣ 블루문고
정명섭 지음, 신진호 그림 / 그린북 / 2025년 11월
평점 :

<기억을 달리는 소년>은 조선 전기의 혼란한 시기, 단종 복위 운동이라는 굵직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노비 소년 사훈이다. 아이는 책을 읽는 동안 자연스레 내가 사훈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책의 첫 부분에서 사훈이는 아버지 철식과의 관계 때문에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신분의 벽이 너무 높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현실 속에서 삶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도 감수하는 아버지의 방식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 나온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철식의 행동이 비겁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아버지의 선택은 그 나름의 절박함이 만든 결과였고, 사훈이 역시 그 마음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 뭉클하게 다가왔던 부분이다.
사훈이가 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그런 사훈이에게 스승 유훈창은 삶을 바꿔 놓는 사람이다. 글을 읽는 능력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 주는 인물이 바로 스승 유훈창이다. 유훈창이 마지막 장면에서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는 누군가의 마음을 기억한다는 것이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단종과 수양 대군, 사육신과 생육신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은 분명 아이에게 큰 흥미 요소였다. 워낙에 유명한 역사 키워드니까. 하지만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은 그런 유명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의 큰 장면 한가운데 어린 노비 소년이 있고, 그 소년의 선택과 감정이 더 핵심적인 중심을 이룬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점이 바로 역사 동화의 장점이라고 느껴지는데,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역사 지식이나 상식으로 배울 수 없는 삶에 대한 고민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전개에는 추리적 요소도 잘 녹아 있다. 정명섭 작가 특유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이 많아 아이가 집중해서 읽었다.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사건의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특별한 역사적 지식이 없어도 읽는 재미가 충분하다. 특히 쫓고 쫓기는 장면과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들은 동화라기보다 추리 소설, 모험 소설에 가까운 흡입력이 있다고 본다.
사훈이는 거창한 일을 해내는 영웅이 아니지만 그 시대를 살아가며 겪은 감정과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인물이다. 이 부분은 지금을 사는 아이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기억해야 할지, 어떤 경험이 앞으로 나를 움직이게 할지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단순히 과거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 남긴 삶의 흔적을 나의 삶과 연결하는 일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고 해야 할까.
<기억을 달리는 소년>은 초등 중·고학년에게 꼭 맞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 맥락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며 삶에 대한 생각도 확장할 수 있다. 사훈이의 성장은 결국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아이가 단순한 사건 설명이 아니라 감정과 고민을 이해하며 읽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 번쯤 함께 이야기 나누며 읽어 보기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이야기지만 어렵지 않고, 추리 요소가 있어 재미있고, 무엇보다 주인공의 흔들리는 마음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아이가 자기만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고,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줄 수 있는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