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의 자전거는 네 발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만 떼어낸 자전거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두 발 자전거도 새로 사서 지원이를 '유치한 자전거를 타는 유치원'이라고 놀린다. 지원이는 엄마 아빠에게 두 발 자전거를 사달라고 하지만, 엄마 아빠는 이미 두 발 자전거가 있다고 사주지 않는다. 그러던 중 지원이는 학교에서 '도하'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의 네 발 자전거가 어느 날 갑자기 새 두 발 자전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요정이 바꿔준 것이라고! 도하 말은 들은 지원이는 자전거 요정이 있으면 바지 요정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실험에 나선다. 짧은 바지를 침대 위에 올려놓고 바지 요정한테 짧은 바지를 가져가고 긴 바지를 달라고 빌었는데, 결과는 아무 변화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엄마가 바지를 갖다주셨는데 바지가 긴 바지였고, 그래서 바지 요정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바지 요정이 바지를 새로 가져다준 것이 아니었다. 누나의 바지와 지원이의 바지가 바뀐 것이었다. 지원이는 도하에게 가 따졌다. 하지만 도하는 계속해서 본인의 자전거는 요정에 의해 새것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도하의 말을 한 번 더 믿기로 한 지원이는 수풀 속으로 자전거를 가지고 가 다시 한번 빌었다. 새 자전거로 바꿔달라고 말이다. 며칠 뒤 그 자리엔 새 두 발 자전거가 놓여있었다. 지원이가 타던 네 발 자전거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새 자전거. 누가 자전거를 가져다 놓았을까? 정말 자전거 요정이 있는 걸까?
어른이 되어도 새 물건은 언제나 설레고 즐거운 마음을 안겨 준다. 익숙한 물건, 즉 헌 물건이 주는 편안함과 다르게 새 물건은 기분을 붕 뜨게 만든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살림을 아끼고 자원 순환 차원에서 중고 거래가 일반화되었지만, 아이도 나도 중고 물품보다 새 물건이 더 좋은 건 사실이다. 아직 누구의 손도 닿지 않은 새 물건이 주는 깨끗한 느낌. 내 것이라는 충족감을 주는 새 물건. 하지만 항상 모든 것을 새로 장만할 수는 없다. 이미 물질의 풍요 속에 환경이 파괴되어 가는 요즘, 잠깐의 충족감을 위해 모든 물건을 새로 구매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급적 물건을 오래 사용하고, 쓸모를 다 할 때까지 사용해야 함을 알고 있다. 적당한 타협이 필요한 부분이다.
경제력이 있는 어른들에게는 새 물건에 대한 욕구나 바람이 아이와 조금 다르게 작동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고,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다. 모두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이유와 부모가 사줘야 할 이유가 갖지 않아도 가질 수 없고, 아이가 바라는 수준과 부모가 사 줄 수 있는 수준이 비슷하지 않아도 가질 수 없다.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기도해 보는 것 아닐까? 산타 할아버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에 게임기 주세요, 이렇게 말이다. 기도하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미소 짓게 담겨 있는 책이다. 원하는 물건을 선물하는 요정이 이렇게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는 존재였다니!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