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좋아하는 장화 그림책봄 11
김난지 지음, 조은비후 그림 / 봄개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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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비를 좋아한다. 비가 오면 우비를 꺼내고, 신발장에서 장화를 꺼낸다. 알록달록 귀여운 우산도 챙긴다. (우비 입으면 우산 안 써도 되지 않나요?) 기분이 좋은지 신이 나서 물웅덩이를 찾아 첨벙거리고, 우산 밖으로 손을 내밀어 비를 받는다. 비 자체로 기분이 좋고 신나는 모양이다. 반면 나는 비가 올 거란 예보를 보면 젖을 양말과 신발, 축축하고 눅눅한 공기, 번거롭게 챙겨야 하는 우산으로 기분이 가라앉곤 했다. 우산 하나 늘어나는 게 아닌, 아이의 우산도 챙겨야 하고 아이의 우비도 챙겨야 하니 말이다. 돌아보면 나도 어렸을 땐 비 오는 날이 좋았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변해버렸나.

 

 

여기 비를 좋아하는 또 다른 친구가 있다. 바로 장화! 비가 와야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있는 장화가 비를 좋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아무런 무늬가 없어서인지 다른 장화들보다 늦은 선택을 받아야 했던 '초록 장화'라면 더더욱 비가 좋았을 테다. 비를 좋아하는 아이와 비를 좋아하는 장화가 만나 시원하게 비 내리는 날 웃으며 외출을 한다. 장화의 표정 자체로 행복이 느껴진다. 하지만 비는 매일 오지 않고(그래서 아이에게 넉넉한 사이즈로 사 준 장화여도 채 열 번도 신지 못한다.) 아이의 발은 금세 자라고 만다. 아이 발에 작아진 장화는 모두의 기억 속에 잊혀셔 애물단지가 되지만 어느 날 다시 나타나 새로운 모습을, 새로운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새로운 역할은 장화의 마음에도 아이의 마음에도 엄마의 마음에도, 글을 읽는 내 마음에도 모두 쏙 든다.

 

 

 

 

풍요롭고 풍족한 조건 속에서 더 악화되는 환경을 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낀다. 아이가 좋아하기 때문에 장만하지만, 몇 번 신지 못하고 재활용함에 넣어야 하는 장화를 볼 때 그랬다. 재질도 고무라 어찌나 튼튼한지 한두 번 신은 걸로 망가지거나 해질 리가 없었다. 새것 같은 멀쩡한 장화를 두고 새 장화를 살 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론 장화의 다른 용도를 알았으니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아이도 좋고 나도 좋은 일석이조라고 해야 하나. 내 마음이 조금 가볍고 상쾌해진 것처럼, 보면 싱그럽고 상쾌한 그림 덕분에 비 오는 날이 기다려지는 그런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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