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과 오해
E, Crystal 지음 / 시코(C Co.)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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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이 없어도 오해가 생긴다. 비밀이 있다면 오해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그저 어떤 비밀과 어떤 오해가 있는지가 궁금했을 뿐.

세 자매의 이야기다. 첫째 딸 세주. 약혼자가 결혼식 당일에 투신자살했다. 같은 학교 선생님이었던 약혼자의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소문을 끌어안은 채 학교를 그만두고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친다. 학원 건물 맞은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승현에게 거의 일방적이다 싶은 애정공세를 받는다. 둘째 딸 유주. 출판사에서 근무한다. 출판사 사장의 후배인 남자_진우와 만나 2년을 동거했다. 어느 날 진우의 오피스텔을 나와 그에 대한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하며 언니네 집에 잠시 머문다. 셋째 딸 비주. 예쁜 얼굴, 가녀린 몸, 젊은 나이. 쇼핑몰을 운영하며 언니들이 다 떠나버린 집에 혼자 머문다. 같은 연립주택에 사는 13살 연상의 남자_동욱에게 의지한다.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동욱에게 천진난만한 척, 모르는 척 매달리고 애정을 갈구한다.

소설의 굵직한 사건은 세주의 약혼자, 형석의 자살이다. 형석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던 그 순간 세 자매는 모두 그곳에 있었다. 세 자매는 서로에게 묻지 못한 채, 묻지 않으니 답하지 못한 채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숨기며 멀어져 갔다. 본인이 본 것을 말하지 못하고(상대방에게 확인하지 못하고), 짐작하고, 의심하고, 단정 짓고, 아파하고, 견뎌낸다. 그만큼 멀어지고. 하지만 결국 세 자매의 비밀은 폭발하고(읽으면서 속이 다 시원했다. 형석 어머니 등장으로 세주에게 이입해 왜 저러냐며 분통이 터졌었는데, 이러려고 등장하셨구나 싶었다는) 그렇게 세 자매의 거리는 좁혀지는 듯하다. 그렇게 편안해진 듯하다.

어떤 비밀이 있는지, 어떤 오해가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배려라는 명목하에 혹은 마주할 용기가 부족해 삼키고 감추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이 쌓여 얼마나 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그 오해 때문에 우리는 또 얼마나 고립되고 외로워지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그동안 내가 배려라며 확인하지 않고 묻지 않았던 것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상대방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지레 짐작하고 넘겨짚었던 것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본 것들이 전부 확실한 진실은 아니고, 내가 들은 것들이 전부가 아님에도 진실이라 믿고 전부라 생각하며 끝맺은 몇몇 인연들이 떠올랐다.

책 곳곳에 작가님이 직접 그린 삽화가 삽입되어 있다. 그녀들이 처한 상황들이 잘 표현돼 있는 삽화들. 덕분에 세 자매가 더욱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형석이 안고 있는 비밀 또한 나름 충격적이었다. 읽으면서 절대 상상하지 못했던 전개. 감각적인 문체 덕분에 페이지는 빠르게 넘어갔고, 눈길을 끄는 묵직한 몇몇 대화들에선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약혼자의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인간 관계의 속성을 깊이 들여다보게 해 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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