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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하는 소녀 엘라 메이 ㅣ 빨간콩 그림책 3
믹 잭슨 지음, 안드레아 스테그메이어 그림, 브론테살롱 옮김 / 빨간콩 / 2020년 4월
평점 :

어쩌면 아이들은 가지고 태어나는 게 아닐까? 어른들이 하는 것, 하라는 것과 무조건 반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천천히 가라고 하면 뛰어가고, 시간 없으니 좀 빨리 걷자고 하면 느림보가 되고. 날씨 좋으니 밖에 나가자고 하면 집에서 놀겠다고 하고, 비 오니 집에 있자고 하면 나가서 놀고 싶다고 하고.
많은 아이들의 이런 공통점 덕분에 '청개구리 이야기'도 탄생한 걸 테다. 반대로 하고 싶어 '굴개굴개' 울었다던 그 청개구리 말이다. 반대로 할 걸 안 엄마가 강가에 묻어달라고 말하고 숨지자 그제서야 청개구리 아들은 엄마 말씀대로 강가에 무덤을 만든 후, 비만 오면 개굴개굴 슬프게 울었다는 그 이야기. 청개구리 이야기는 반대로 하는 아이의 후회(?)를 담고 있지만, 「거꾸로 하는 소녀 엘라 메이」는 다르다.
거꾸로 한다는 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다.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행동하는 건 창의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조금 불편하고 특이할 수는 있지만 거꾸로 해 보는 것 자체가 아이를 성장시킨다. 허나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과 조금만 달라도 튄다고 나무라고, 같아지라고 강요한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는 계집애 같다고 하고, 흙에서 뛰어놀기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선머슴 같다고 한다. 아이는 그냥 아이일 뿐, 어떤 색도 입혀서 바라보면 안 되는데 이미 규정해 놓은 틀로 바라보고 재단한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는 본인의 창의성이나 개성을 잃고 평균화될 뿐이다. 남과 같아질 뿐이다. 이런 환경에선 반대로, 거꾸로 하는 게 더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무언의 강요는 더 강해진다.
하지만 엘라 메이는 아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지지하는 엄마가 있고, 그걸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는 심지어 같이 해보는 동네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엘라 메이는 자유롭게 도전하고 성실하게 실천한다. 엄마가 걱정할 정도로까지 말이다. 하지만 끝까지 성실하게 도전해 보면 알게 된다. 끝내야 할 때와 또 다른 도전이 앞에 있다는 것을.
아이는 본능적으로 안 것 같다. 본인과 엘라 메이가 통한다는 것을. 책이 도착하자마자 읽고, 읽고 나자마자 그때부터 "엄마, 이제 내 이름은 거꾸로 하는 소녀 엘라 메이 크리스틴이야." (크리스틴 무엇?)라고 말하더니 집안을 거꾸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뒤로도 잊을만하면 자기는 거꾸로 하는 소녀 엘라 메이,라면서 앞으로 자기를 엘라 메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아이가 거꾸로 걷겠다고 한다면, 한 시간도 아니고 하루도 아니고 며칠을 거꾸로 걷고 거꾸로 자고 거꾸로 움직이겠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그만하라고 하겠지. 다친다고 넘어진다고 정신 사납다고 그만두라고 할 것이다. 엄마의 이런 반응은 아이의 새로운 도전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다르게 행동할 나 자신을 돌아봤다. 언제나 아이의 선택과 상상과 행동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같은 마음으로 엘라 메이를, 엘라 메이가 된 내 아이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