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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들에게도 재수 없는 날이 있다 ㅣ I LOVE 그림책
셸리 베커 지음, 에다 카반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 제목을 보고 순간 양가감정이 든 게 사실이다. 아이에게 신선한 책을 노출하고, 뜻깊은 책을 안겨줘야 하는 엄마이기에 '히어로'라는 주제는 외면하기 힘든 부분이면서도 그 뒤에 따라붙는 '재수 없는'이란 표현이 조금 꺼려졌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캡틴 아메리카 등 마블의 여러 영웅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능력을 동경하는 아이라 히어로 라는 소재는 아이의 구미를 당길 것이 틀림없었다. (영웅 안 좋아하는 아이 어디 있나요? 영웅 싫어하는 어른 어디 있나요?) 하지만 긍정적이고 밝은 것만 보여줘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이 발동해 '재수 없다'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부터가 문제 아니었을까? 당연하게도 인간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이 있고, 그중 부정적인 감정들 예를 들어 슬프거나 짜증 나거나 무기력한 것들도 모두 긍정되어야 할 감정들인데 나는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차단하려 했던 건 아닐까? 아이가 항상 기쁘고 즐겁게 바랐던 것은 아닐까?
누구나 '재수 없는' 하루를 겪는다. ('재수 없는' 인간도 겪는다.) 연필은 부러지고, 아는 문제는 틀리고, 그네에서 떨어지고, 엘리베이터 문은 눈앞에서 닫히는 그런 날 말이다.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 본인이 느끼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고, 무엇인지 모르니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른 채 시간이 흘러 그냥 넘어가 버린다. 이런 순간들을 조금 더 긍정하면서 혹은 다독이면서 넘어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그 방법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책엔 8명의 히어로가 등장한다. 각각의 능력을 보여주는 귀여운 이름을 가진 8명의 용사들. 아이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캐릭터 자체를 좋아했다. "엄마는 이 중에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묻고, 자기는 레이저맨이 가장 좋다며 자기도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면 마시멜로우는 구워 먹을 수 있을 거라며 웃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소리질러가 가장 좋았다. 나도 저렇게 소리 지르고 나면 답답한 마음, 부정적인 감정 모두 털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부정적인 감정을 대하는 방법이 서툰 엄마기에, 이 책은 아이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도움이 됐다. 부정적인 감정은 무언가 해를 끼치고자 한다. 그런 감정이 든 마음에 상처를 내기도 하고, 다른 곳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앗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런 충동과 싸워야 한다. 슬픔, 분노, 고통을 잘 인식하고 그런 들뜬 감정들이 수그러들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