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백사혜 지음 / 허블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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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백사혜 작가의 연작 소설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머나먼 미래를 배경으로, 자신만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마치 별자리처럼 조밀하게 엮어낸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한국SF어워드 단편 대상을 수상하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기존 작품의 세계관을 확장시킨 연작 소설의 형태로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추천의 말 중 김초엽 작가님의 문장이 이 책의 메세지를 참 전달하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이토록 비참한 세계에서도 왜 어떤 존재들은 끝까지 빛을 안고 죽는가.


이 책에 수록되어 있는 6개의 단편 소설은 디스토피아적인 우주라는 배경 속에서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등장인물 중 누군가는 빛을 내기도 하고, 빛을 동경하기도 하며 빛을 안고 죽고자 하죠. 이 이야기들 속에서 저 또한 자연스럽게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에서의 의미,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개인의 강인함에 대해 탐구하며 깊은 사유를 하게 됩니다. 책장을 넘겨가며 사유하고, 제 생각을 메모지에 적어 붙이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서평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마른 꽃잎과도 같다>


✺ 가짜는 잃지 않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79p


작중 주인공 얀의 동경과 사랑의 대상인 쟝은 자신의 버팀목으로 가짜 가족 이야기를 지어내 그에 의지합니다. 그에 반해 적군의 커플인 쉬런과 에이브는 서로 진짜의 사랑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얀은 쟝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하다가 어떤 계기에 의해 깨닫습니다. 가짜 이야기는 잃지 않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진짜로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반면의 진짜 이야기는 '진짜'이기 때문에 의지와 상관없이 잃을 수 있는 것이고요.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던 쟝과 또 그 이유들이 납득이 가는 장면이었습니다. 가짜 이야기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 허구의 것이라 여길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이 또한 누군가에겐 의지할 수 있는, 꼭 필요한 것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2. <황금 천국의 증언>


✺ 하인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숨을 삼켰는데, 그 소리가 웃겨서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을 뻔 했죠. 단역을 맡은 희극 배우가 된 기분이었어요.

(중략)

모모, 모모예요. 그 즉시 모두가 모모를 보았습니다. 하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모모를 향해 정확히 고개를 돌렸어요. (중략)

목만 비틀어 모모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은 꼭 모모가 숨겨진 주연임을 드러내는 연출 같았죠.

(중략)

그들은 모모가 어디 있는지 몰랐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모를 무시하기 위해 끝없이 모모를 의식하고 있었던 거예요. -127p


이 부분은 희극을 보는 듯한 연출이 돋보였던 장면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재앙을 시각적으로 표헌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이후 다른 이야기에서도 짧게 짧게 언급이 되어서 연작 소설을 이어주는 역할도 했답니다.



3.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


✺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요소가 이제 '이야기'뿐이란 의미예요. 마음을 동하게 만드는 사연, 범인은 경험할 수 없는 서사! 말 그대로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무형의 장식이죠." 


✺ 인사, 이만치 살아오고 나서야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어.

그러니 더는 죽듯이 살지 않을 거야. 살아가듯 죽을게.


6편의 연작 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제목의 의미가 뭘까 궁금했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 밤이 아름답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한 결론은 아직 내리지 못하고,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딱히 삶에 대해 큰 미련이 없었던 주인공은 형벌로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결국 사랑이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가치임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인데요.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는 인간 본질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그들은 밤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할 것이고, 삶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된 이는 밤과 같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운이 남는 '아름다운' 이야기였고, 계속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네요.


4. <왕관을 불태우는 자>, <쥬뱅씨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


✺ '스눈의 도서관' 안에 가득한 '책'은 아름다웠다. 쥬뱅 씨는 살면서 이런 아름다움을 접한 적이 없었다.


<왕관을 불태우는 자>는 엄청난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누가 범일일까 유추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고, <쥬뱅씨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는 쥬뱅씨의 필사에 대한 열정은 굉장하지만 세상을 읽어내는 무지함을 보는 재미가 있었지요. 

저는 <쥬뱅씨의 완벽하지 못한 하루>를 읽으면서 이 연작 소설에 공통적으로 계속해 드러나는 가치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너무 뒤늦게 알아차렸을까요?)

바로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인데, 매 이야기마다 아름다움은 매우 중요한 가치 또는 기준으로 등장을 합니다. 제목에도 또한 '아름다워'라고 드러나있죠. 이 아름다움이라는 장치는 보통 지배 계층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로 나오는데 결국 그들은 집착적으로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그 가치를 얻지 못한다는 것에서 이 소설의 중요한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얻게 되는 사람은 누구이냐, 무슨 의미인지를 찾아보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묘미가 될 것 같네요. 



종합적으로 볼 때, 『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은 세상의 주류나 강자들이 보지 못하는 곳, 즉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삶 속에서 피어나는 진정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그들이 겪는 밤 같은 시간 속에서도 희망과 온기를 잃지 않는 존재의 숭고함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SF라는 장르를 통해서 6개의 연작소설에 아울러 전달하고 있고요. SF 장르를 좋아하시고, 철학적인 의미를 찾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 또는 같은 배경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께『그들이 보지 못할 밤은 아름다워』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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