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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가 있었다 - 헌법 정신과 문화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다
김석현.정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 그것은 곧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시행하는 것과 다를바 없는 것이다. 눈이 먼 장님은 더듬더듬 거리며 코끼리의 몸통과 다리 이곳저것을 만진다. 거칠면서 부드러운 코끼리의 피부. 넓은 코끼리의 귀. 굵은 다리. 뭔지 모를 기다란 것. 그나마 동물에 대한 인식이 있는 사람은 코끼리의 몸이 어떤 것이고, 머리는 어떤 것이며, 꼬리는 이것 정도를 생각하며 코끼리란 동물을 하나하나 알아 갈 것이다. 만약 이 장님이 일반적인 동물. 만약 외계의 코끼리와 조우했다면 이런 생각을 처음부터 다시 세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리 부분이 코끼리의 얼굴이 될지도 모르고, 몸통 부분은 머리, 코끼리의 꼬리가 코일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는 그렇다. 가장 원론적인 선언.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개입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떤 가정도 여기에는 없다. 사람들이 차근차근 자신들만의 방식에 따라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뿐이다. 인류가 만든 그 어떤 것보다도 각 나라의 민주주의만큼 다른 것은 없을 것이다.
나는 한 나라의 민주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그 나라의 문화라고 생각을 한다. 물론 과거의 문화는 중요하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떠한 약식을 갖고 있는 것. 사람들의 생각의 틀을 만드는 것이 문화고 그 문화를 제도화 한 것이 그 나라의 정치며 민주주의다. 그렇다면 문화는 계속해서 정착되어 있는 것인가? 문화의 발전이란 어디서부터 오고, 어디로 향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문화의 발현은 어디에서부터 시작 되는가?
나는 미래의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문화인이라고 생각을 한다. 가장 배고픈 자리. 한 나라가 미래의 방향을 나아가는 과정의 최전방에서 가장 배고프며 새로운 것을 머리에서 자내려는 사람들. 그것이 문화인들이다. 물론, 단순히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든데 궁국적임 삶의 목적을 둔 사람들이긴 하지만,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래에 쓰레기통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단순히 눈요기 거리도 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오래도록 남아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주고 정치에도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가 방해하고 막은 것은 인간의 자율성에 기반을 둔 이런 표현이다. 박근혜의 블랙리스트는 단순히 자신들을 비판하는 문화인들의 목소리를 막은 게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가치들이 생산되는 일을 막은 것 이었다. 9473명의 목소리를 막았다는 것은 9473 X N개의 생각들을 막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막겠다는 1차원 적인 생각이 다가올 우리 미래에 영향을 미칠 해악은 그래서 상당했다.
<블랙리스트가 있었다>라는 책을 읽으며 한가지 마음에 남는 구절이 있었다. 그건 백범 김구 선생이 이야기한 문화 강국에서 였다. 옛날에는 문화강국이라는 말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슨 말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의미도 잘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내 머릿속을 떠돌아 다니던 문화강국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필요한지를 나는 천천히 느끼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