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양심 - 일본 헌병 쓰치야 요시오(土屋芳雄)의 참회록
하나이카 야스시게 지음, 강천신 옮김 / 지문당(JIMOONDANG)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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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해 이 책은 한 무기력한 사람의 회고록이다. 한 명의 인간은 국가란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에 무력하다. 하지만 국가와 같은 엄청난 존재가 굳이 강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을 중심으로한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으면 이내 저항하기보다 타협하고 적응한다. 인간들이 모여 만든 커뮤니티에서 정서적으로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충동 혹은 본능은 국가라는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없더라도 사람의 생각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유도할 수 있다. <인간의 양심>의 저자 하나이카 야스시게 또한 그런 작은 인간에 불과했다.

그는 순박한 청년이었으나 일본 헌병에 입대하여 자신의 말마따라 살인기계가 됐다. 숨쉬 듯 자연스럽게 사람을 죽였고, 발에 걸리는 돌맹이를 가볍게 차듯 사람을 죽였다. 거칠게 울부 짓는 사람의 목구멍에 차가운 금속 쇠를 꽂았으며, 동물을 사냥하듯 웃으며 사람들을 사냥했다. 사람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살해하는 광경은 미쳤다라는 단순함으로 표기하기에는 너무나 어폐가 있는 듯 하다. 나는 이 사람들이 광기가 차고 넘치는 공간에 완벽히 적응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평화와 자유가 보장하는 환경에서는 생각조차 못하는 광기의 공간에만 있는 유희를 알게 된 것이고, 그 안에서의 합리성에 입각한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광기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은 그 광기에 몸을 싣는 방법밖에 없다. 만약 야스시세가 광기에 몸을 싣지 않았다면 그는 밖으로는 적군, 안으로는 아군의 따돌림이라는 상황에 직면했을 것이다. 또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에 대한 존엄이 보장되는 환경에서 야스시게는 산 적이 없다. 일본은 근대화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겼다. 가장 위인 군부에서부터 광기에 휩싸였는데, 그 아래에 있는 소시민인 사람이 인간의 존엄이 지키기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 아닐까. 게다가 야스시게가 살았던 세월은 광기 이후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인류 최악의 시기 중 하나였다.

그래도 야스시게는 광기의 늪에서 빠져나와 정상 사회로 돌아왔다. 야스시게의 이런 행동은 과거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시키거나 잘못을 부정하는 겁쟁이들과 완전히 대비되는 태도이며 행동이다. 야스시게는 전쟁의 광기를 경험한 수많은 겁쟁이들이 취했던 후자의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류사에서 자발적으로 어떻게 용기를 내서 반성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한 인격체가 자신의 과거 정체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다시피 야스시게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몇 안된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어떠한 결과도 예사항 수 없는 것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용기를 구해야하는 사람이 마주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용서를 해주는 사람이 하는 앙갚음을 넘어, 자신의 미래가 과거에 의해 짓밟히는 것이다. 잘못을 저질러 미래에 자신의 권리를 빼앗기고, 입지가 작아지는 것. 용서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현재 미투 운동을 불러일으킨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이 민간인을 살해한 것, 위안부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군인들 등. 작은 잘못이건, 큰 잘못이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그래서 자신을 비판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은 그 시대가 언제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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