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바람의 기억
최인호 지음 / 마인드큐브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 우리 집 화장실은 실외에 있었다. 집에서 30m정도 떨어져 있다고나 할까. 한밤중에 오줌이 매려우면 집에 있는 요강으로 처리했지만, 똥이 마려우면 어쩔 수 없이 화장실로 가야 했다. 솔직히 무서웠다. 일주일 혹은 한달 전에 내가 봤던 모든 무서운 것들이 머릿속에서 생생이 그려지며 화장실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아나콘다>라는 영화를 봤을 때는 10m짜리 뱀이 마당 위에서 또아리를 틀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고, <강시>라는 영화를 봤을 때는 대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강시가 문을 부스고 드러오는 것 같았다. 또한 화장실로 가는 길에 혹시라도 뒤를 쳐다봤다간 어떤 귀신이 나타나서 나를 잡아갈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분명히 귀신 느낌은 있는데 눈을 마주치기 싫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화장실을 갈 때면 언제나 닭살이 돋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내 곁에는 동생이 있었다. 벌써 20년도 전의 일이다. 비가 왔을 때 동생은 나와 함께 화장실에 가 주었고, 내가 똥 마렵다고 하면 마당 위에서 나를 기다려 주기도 했다. 물론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나는 동생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동생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항상 동생이 갖고있는 뭔가 맛있는 것을 요구했고, 동생들은 그때마다 이를 들어주었다. 나는 동생들을 속였고, 동생들은 언제나 속아넘어갔다. 그때는 참 그게 내가 머리가 좋고 동생들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됐으나, 지금은 그러한 기억들이 하나하나 날아와 비수로 가슴에 꽂혀 눈에 물이 맺히게 한다.

<비와 바람의 기억>을 읽으며 저자가 한자한자 써내려간 과거의 회상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저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살았지만, 저자가 써내려간 하나하나의 추억들을 나의 잊혀진 기억들과 비교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과거 또한 회상하게 되었다.

솔직히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도 떠오르고, 그랬다. 하지만 어찌 좋은일만으로 과거가 꽉 찰 수 있었겠나. 어쨌든 이 책을 읽는 내내 나 또한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생생한 기억을 체험할 수 있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